그 남자의 6. 25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보문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박기태
채수연
독자기고
EduExperts
이주연
Richard Matson
수필기행

그 남자의 6. 25

0 개 3,537 NZ코리아포스트
시니어클럽 ‘무지개’에 나오시는 분들 가운데 남자 세 분이 참전용사였음을 이번에 알게 되면서 그 타고나신 천운(天運)이 새삼스럽게 놀랍고 부러웠다.

6. 25가 회갑을 맞는 금년. 그 분들이 조국행사에 초청을 받아 귀국준비에 바쁜 모습을 보면서 문득 아득히 먼 옛날일로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한 남자의 얼굴이 떠 올랐다.

꽃봉오리처럼 한참 꿈에 부풀 사춘기 소녀의 여린 가슴에 진한 얼룩을 남기고 아픈 추억으로 기억되는 외눈박이 외삼촌. 나보다는 다섯살이 많고 오빠와는 불과 두 살이 위여서 그들은 친구로서 늘 붙어다녔고 그들 뒤를 졸졸 귀찮게 따라다녔던 나는 그래서 정도 유난히 많이 들어었나보다. 그가 피끓는 청년 열아홉이던 해. 6. 25가 발발했다. 그 때부터 그는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빗나간 궤도를 달리는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야 했다. 아주 아주 거칠고도 짧게....

그가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밖에 나갔다가 행방불명으로 소식이 없을 때. 누군가가 인민군 총에 맞아 죽었다고 알려줘 집안은 깊은 슬픔속에 잠겨버렸다. 위로 딸만 셋을 두고 늦게 아들 둘을 보신 중에 막둥이로 애지중지하던 막내 아들을 잃고 죽음처럼 사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참 처절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죽었다던 사람이 마치 망령처럼 살아 돌아왔다. 인민군에 붙잡혀서 북으로 끌려가다가 9. 28 수복즈음 불행중 다행으로 국군의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있다가 풀려났다고 했다.

하지만 반가움은 잠시. 젊은이를 기다리는 전선으로 다시 가야만 했으니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청년의 의무였기에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가족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멋지고 당당하게 떠났다.

1. 4 후퇴때.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던 피난 행렬속 길에 버려진 바구니에 담긴 아기들과 이불에 싸여 발길에 채이던 무엇인가는 귀찮아 버리고 간 힘없는 노인들이었다. 소나기 퍼붓듯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느라 아비규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폭격에 맞지 않았더라도 매몰찬 추위에 빳빳하게 동태처럼 얼어죽었을 것이다. 비정하고 모진세월. 전쟁은 그렇게 참혹했다.

막바지 휴전무렵에 최전방이었던 ‘백마고지’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 악명높은 최후의 보루였다고 한다. 기적이었을까? 불사조처럼 살아서 돌아 온 그는 그러나 한쪽 눈을 실명하고 상이군인으로였다.

살아 돌아 온 것만 다행이라고 반가워 했지만 그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빗발치는 포화속 사람을 파리처럼 죽이고 죽어가는 잔인한 전쟁에서 그는 눈만 잃은게 아니라 인간의 감성마져 송두리째 잃어버린 허구의 실체일뿐. 사람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듯. 갈기를 세운 한마리 사나운 짐승처럼 이성을 잃고 마냥 추락 해 가고 있었다.

종전이 되면서. 피난지에서 귀경한 사람들의 혼란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폭격에 집을 잃은 사람들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방황이 무질서로 넘쳐났고. 고아가 된 아이들은 길로 뛰쳐나와 더럽혀진 손으로 행인들에게 달려들어 돈을 뜯곤해서 길에 나서기가 겁이났다. 하지만 그보다 제일 두려운 것은 ‘상이군인’들의 횡포로 “당신들이 누구때문에 이렇게 살아 남은줄 아느냐?”며 거친 쇠갈고리 손이나 목발을 휘두르면 누구든 고양이 앞의 쥐꼴이 될 수밖에.... 내 식구들이 한 때 굶더라도 그들 손에 쥐어 주어야만 무사하던 괴로운 시절이었다.

임시 의안(義眼)으로 살아가는 그는 누나들 집을 차례로 휘저어 놓고 다녀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술만 마시면 의안을 빼서 아무데나 탕탕 두드리며“내 눈 내 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허물어져 가는 아들을 그냥 볼 수 없던 할머니가 병을 얻어 돌아가시고 집안의 골칫거리로 지겨운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집에 나타난 그를 모질게 등을 밀어 밖으로 내몰면서 함께 울기도했던 어린 조카. (도대체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언제 끝날지? 희망없는 그런 삶이 귀찮고 짜증스러웠다. 그리고 많이 슬퍼서 밤이면 혼자 이불속에서 훌쩍이기도 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동년배이신 세 분들.‘참전용사’라는 당당한 이름으로 모처럼 가슴에 달고나온 작은 ‘태극뱃지’가 유난히 햇볕에 반짝인다. 가보처럼 깊숙히 묻어두었던 것이리라. 그 작은 태극마크 안에서 갑자기 삼촌의 얼굴이 웃고 있질 않은가. 외짝 눈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닌 맑고 발랄했던 훤칠한 키의 미남 청년 그가....

아득한 옛날에 한줌 흙으로 돌아 간 그는 전쟁이 흘리고 간 작은 티끌일뿐. 이제 기억조차 녹이 슬어 잊혀져 가고 있다.

한번쯤 생각하고 추모 해 주는 것도 같은 시대를 함께했던 살아 남은자의 정중한 예의이리라....

‘조국을 위해 몸바친 호국의 영령들을 위하여’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유럽 여행기(노르웨이) 1편

댓글 0 | 조회 2,224 | 2013.03.27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밤새 북쪽으로 올라 간 페리(D. F. D. S WAYS)에서 아침을 먹고 …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덴마크) 편

댓글 0 | 조회 1,983 | 2013.02.27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 나라가 서로 자신의 나라가 …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스웨덴)편

댓글 0 | 조회 2,809 | 2013.01.31
실야라인(silja line) 크루즈의 선상 뷔페식사 분위기가 더 없이 푸근하고 즐거워 피곤한 여정에 달콤한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낯선 음식을 맘껏 두루 맛보는…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핀란드)편

댓글 0 | 조회 2,127 | 2012.12.21
‘러시아’를 떠난 고속철이 질펀히 깔린 밀밭 사이를 힘차게 달린다. 어디쯤 국경이 있었을텐데 친구와 밀린 수다 좀 떨다보니 벌써 &lsquo…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러시아(상트 페테르 부르크)편

댓글 0 | 조회 2,278 | 2012.11.27
모스크바에서 항공편으로 한 시간 반쯤. ‘상트 페테르 부르크’에 도착했다. 170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지어진 이…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러시아(모스크바) 편

댓글 0 | 조회 2,144 | 2012.10.25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감은 없어지고 의욕이 있어도 매사에 겁부터 앞서는걸 깨닫는다. 여행계획을 세운지 삼년만의 긴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어느날. 인천공항에서 … 더보기

미나리, 미나리 강회

댓글 1 | 조회 2,678 | 2012.09.25
지겹도록 비가 내려 지루하기만 하던 한 겨울. 그래도 그 비 덕분일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원 줄기에 마냥 나긋하게 자란 미나리를 만나니 반갑다. 그 것을 보는 … 더보기

여자는 예뻐지고 싶다

댓글 0 | 조회 2,872 | 2012.08.28
몸에 탄력을 잃으니 윤끼도 사라지고. 머리카락도 변변찮아 매만져봐야 그렇고 그런 모양새. 미용실 가야할 의욕도 잃은지 오래되었다. 어느날 오래 벼르던 끝에 찾아간… 더보기

마지막 건배

댓글 0 | 조회 2,475 | 2012.06.27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하루 600만명이 맥주, 소주 1800만병을 마신다는 한국의 요즘. 삶이 고달퍼 마시고 취해서 잊… 더보기

어느 이민 남자의 비애

댓글 0 | 조회 4,142 | 2012.05.22
불황의 수렁은 하염없이 깊어만 가는가? 주변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교민들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신천지를 찾아 보따리를 끌고 꿈에 부풀어왔던 사람들의 돌아가… 더보기

그러시면 안돼죠

댓글 0 | 조회 2,575 | 2012.04.26
“엄마, 이모한테 전화 좀 드려보세요.” 언제나 장난끼 넘치는 응석조로 전화 해 오던 한국의 딸아이 목소리가 오늘은 영 아니었다. (무슨일이… 더보기

그날, 버니(Burnie)에서

댓글 0 | 조회 2,700 | 2012.03.28
크루즈 중에 배에서 내리는 날은 언제나 바쁘다. ‘타스마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땅이긴 하지만 육지 밑으로 외떨어진 … 더보기

‘시드니’ 그리고 ‘다이아나’

댓글 1 | 조회 2,925 | 2012.02.29
잠에서 깨일 때마다 이층침대 머리맡 창밖을 내다보면 시커먼 바다. 그 검푸른 물결을 가르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속을 달리기만 하는 배. 항상 늦잠이 달아 잠뽀인 … 더보기

Happy new year

댓글 0 | 조회 2,758 | 2012.01.31
2012년. 첫날 새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happy new year_” 언제나처… 더보기

12월의 노래

댓글 0 | 조회 2,987 | 2011.12.23
‘하늘을 쳐다보며 사-뿐 귀에다 손을 대보라 구름이 방긋 웃는 소리 고요하게 들린다.’ 밝고 맑은 꿈을 꾸던 어린시절. 푸른풀밭에 누워 드넓… 더보기

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댓글 1 | 조회 3,105 | 2011.11.23
얼마 전 점심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 갔었다. 한식에 맞는 깔끔한 기본반찬 서너가지와 작은 뚝배기에 걸죽한 강된장이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웬 강된장? 그것을 보… 더보기

그 벗꽃 길, 그리움이 있다

댓글 0 | 조회 3,073 | 2011.10.27
엊그제만 해도 죽은듯이 다소곳하던 헐벗은 벗 나무에 뽀오얀 꽃봉오리들이 툭툭 터져 화사한 꽃을 피워 웃고 있다. 아직은 어려 가녀린 몸매지만 버겁도록 무겁게 꽃짐… 더보기

아름다운 고별

댓글 1 | 조회 3,608 | 2011.09.27
옆집 할머니 ‘엘리자벳’이 갑자기 돌아가셨다."일년 중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우리들의 추석날. 명절다운 분위기로 조촐하게 잔치가 벌어진 작은… 더보기

‘포우투카와’ 꽃잎 날리던 교정

댓글 0 | 조회 3,090 | 2011.08.24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난 일들 가운데 보람있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자기 하는 일에 성취감이 곧 보람이겠지만 무엇보다 순… 더보기

차 사랑 할아버지

댓글 0 | 조회 3,066 | 2011.07.26
‘허버트’ 노인이 또 차를 바꿨다. 방궤같이 앙징스럽고 예쁜 신 차다. 그는 언제나 같은 스타일의 차들만 타는 취향임이 틀림없다. 주인을 닮은듯한 아담한 모양이 … 더보기

현재 그 남자의 6. 25

댓글 0 | 조회 3,538 | 2011.06.28
시니어클럽 ‘무지개’에 나오시는 분들 가운데 남자 세 분이 참전용사였음을 이번에 알게 되면서 그 타고나신 천운(天運)이 새삼스럽게 놀랍고 부러웠다. 6. 25가 … 더보기

오월의 그 열기처럼

댓글 0 | 조회 2,951 | 2011.05.25
뜨겁게 달아 오르던 ‘제11대 한인회장’ 후보 세 사람의 열기도 이제 가라 앉았다.그 분들을 지켜보며 진정으로 우리 교민을 대표 할 한 사람을 가리느라 설왕설래 … 더보기

나눔의 기쁨

댓글 0 | 조회 3,234 | 2011.04.28
큼직한 상자에 여러 옷가지들과. 먹을 것이 담긴 봉지들이며. 병들을 차곡차곡 담고. 귀퉁이 빈 공간에는. 치약이며. 비누. 작은 일용품들을 빈틈없이 채워간다. 일… 더보기

호평동에서 온 편지

댓글 0 | 조회 3,622 | 2011.03.23
어린 강아지풀과 노오란 민들레꽃이 얌전하게 말려져 진홍의 카드지 안에서 환하게 나를 반긴다.훌쩍 해를 넘긴 작년. 봄의 소식을 알리며 고국의 땅 한 모퉁이 호평동… 더보기

설 명절에 웬 송편을....

댓글 0 | 조회 3,650 | 2011.02.22
‘젊은이는 희망으로 살고 늙은이는 추억으로 산다던가’ 구정을 맞아 귀성길이 막힌다느니 원활하다느니 수만리 밖에서 나와 무관한 사정을 듣고 보며. 그러나 그 곳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