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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2011. 16:13 NZ코리아포스트 (202.♡.222.53)
자유기고
‘허버트’ 노인이 또 차를 바꿨다. 방궤같이 앙징스럽고 예쁜 신 차다. 그는 언제나 같은 스타일의 차들만 타는 취향임이 틀림없다. 주인을 닮은듯한 아담한 모양이 귀엽기까지 하다. 내가 알기만도 벌써 세번째로. 처음에는 빨강색의 호주 차 였었는데 그 다음에는 드물게 보는 옥색같은 것. 이번에는 칠흑같이 새까만데 유난히 번들거려 유리알처럼 반짝인다. 그가 걸치고 다니는 옷차림을 보면 허름한데 자주 차를 바꾸는게 별나게만 보인다. 그것도 년식이 좋은 새 차로만....
특별하게 하는 일이 없으니 이 골목 저 골목을 서성거리다가 잘 마주친다. 차는 언제나 사이드 미러가 얌전히 접힌채 제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인데 깔끔하게 닦아 진열 해 놓은 악세사리처럼 그게 낙이고 취미인 것 같았다.
길 건너에 혼자 사는 시스터 집에나 하루에도 수십번씩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아주 가끔씩 암을 앓는다는 그를 병원에 데려다 주는지. 쇼핑을 가는지 함께 타고 나가는게 차를 이용하는 전부인 것 같았다. 애지중지 아기처럼 돌보는 차는 제 소임을 잊은듯 서 있기만 한다. 헌 차가 될일도 없는데 다시 새 차로 바뀌는걸 보면 그가 얼마나 심심한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콧날이 유난히 커서 얼굴에 코만 있는 것 같지만. 만나면 늘 재미있는 제스츄어로 웃기는 재주가 특별한 사람이다. 차를 사치하는 것은 일종의 시위인가? 혼자서도 당당한 모양새로 보이고픈 욕구인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언제나 밝고 명랑해서 만나면 기분좋은 노인이지만... 하는 일 없이 얼마나 외로우면 차를 마치 가족처럼 대한다는 생각이들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옆에 이웃 해 사는 ‘샘’ 노인은 허버트의 그런 삶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샘은 아주 그와 반대로 80년대의 낡은 차를 아직도 타기 때문이다. 시동이 잘 안 걸려서 시끄럽게 부릉거리다가 털털거리며 움직이는 그런 차를 직접 여기저기 손보면서 여유있게 부부가 잘도 타고 다닌다. 하지만 다 깨져나가 주먹만큼 귀퉁이만 남은 사이드 미러를 테이프로 간신히 여며붙여 모양이 그지없이 초라하다. 전의 차도 그와 유사했는데 한동안 안 보이더니 새로 바꾼게 또 같은 년대의 비슷한 차다. 늙고 살이 붙어 지금은 뚱보 할머니지만 아직도 옷 입는 세련됨은 나무랄데가 없는 샘의 와이프. 멋쟁이로 그 차와는 너무도 안 어울리지만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항상 깔끔하고 넉넉함이 베여있는 당당한 모습이며 기품있는 생활 모습에서 슬며시 사람을 압도하는 능력을 보게된다. 왜인지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 어디로 보나 여유가 없어 그런 차를 타고 다니는 것 같진 않다. 빈틈없이 텃밭일궈 아름다운 꽃밭속에서 행복하게 노후를 보내는 부부. 영국 사람들의 검소함이 바로 그런 것인가?
여기 뉴질랜드에 처음 왔던 십여년 전만 해도. 온통 샘 노인 차같이 낡은 차들이 길에 굴러다니는 것 같아 내가 너무 후진 나라에 뭐하러 왔을까? 라는 의문도 했었는데 지금은 좋은 새 차들이 길에 깔렸다. 경제 사정이 최악이라고도 하고 기름 값도 그 어느 때보다 고가인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차도 많이 들어와 있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과연 그만큼 경제 성장을 한걸까 생각하게 된다.
“오우 나이스 데이” 모처럼 파아랗게 개인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지나가는 나에게 함박 웃음을 짓는 허버트. 애기 머리통만한 머그잔을 차에서 꺼내더니 무엇인가를 떠 먹는 시늉으로 또 나를 웃기는 할아버지.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늘상 골목을 서성이는 버릇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기에 그가 웃기는대로 화들작 같이 웃으며 기분을 띄워주는 나 이웃. 애마(愛馬)는 달려보자고 보채는데 갈 곳이 없는 주인은 어루만지기만 한다. 옆에 멋진 여자 친구라도 태우면 드라이브라도 할텐데... 차가 주인을 영 잘못만나 제 본분을 잃고 멋적게 서 있기만 한다.
부릉 부르릉 거친 소리로 한바탕 시끄럽더니 뒤뚱거리며 나오는 마님을 모시고 샘의 차는 어디론지 달아나 버린다. 뻔질나게 드나드는 낡은 샘의 차를 허버트의 새 차는 얼마나 부러워 할까? 그 주인이 더 부러워 한다는 사실을 차가 알까? 어느 때는 조종간을 잡은 비행사처럼 그냥 핸들을 잡고 운전석에 우둑허니 앉아있는 모습도 보게되어 안쓰럽다. 늙어서 외롭고 혼자여서 더욱 외로운 허버트를 오늘은 어느 길 모퉁이에서 만날까? 하루 해가 지루하면 또 차를 닦겠지. 아니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것 일께다. 마치 애인을 애무하듯이... 차 사랑 할아버지. 나 혼자 지어 부르는 별명인데 너무 그럴듯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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