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보문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박기태
채수연
독자기고
EduExperts
이주연
Richard Matson
수필기행

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1 3,104 오소영
얼마 전 점심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 갔었다. 한식에 맞는 깔끔한 기본반찬 서너가지와 작은 뚝배기에 걸죽한 강된장이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웬 강된장? 그것을 보는 순간 입맛 잃고 사는 요즈음. 불현듯 호박잎 쌈이 생각나고 입안에 군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그런걸 줄리야 없고 상추쌈이라도 나오려나 기대했는데 그것은 그냥 반찬의 일부였다. 허다못해 찐 양배추라도 나왔으면 몇쌈 쌈장을 얹어 아쉬움을 달랬을텐데.... 실망스러워 하마터면 투정이 나올뻔 했다.

엇그제 외출했다가 비닐봉지에 두둑하게 담아놓고 파는 호박잎을 발견하고 거침없이 사 들고 들어왔다. 그것을 만나서 반가움 중에 손녀 순이의 얼굴이 큼지막히 떠올랐다. 나 만큼이나 호박잎 쌈을 좋아하는 그 애. 세살박이 어린애로 이민 와 살면서 어디서 그런걸 먹어봐 그렇게나 좋아하는지? 우유 빵 보다는 김치 깍뚜기 겯드린 밥이 좋은 순수 한국통 그 애. 요즘 오빠와 둘이서 밥 해먹고 학교 다니느라 스스로 살림 익히며 일찌감치 현실 깨우치는 일이 고달프기도 할텐데 한마디 불평도 없이 잘 꾸려가는게 여간 대견하고 신통한게 아니다. 지금쯤 엄마 손맛이 많이도 그리울텐데.... 이 할머니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나마 김치 깍뚜기 담고 더러 밑반찬 챙겨주는 정도라도 되니 다행이긴 하지만.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그 애들에게 부모 대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간절한 기도(祈禱)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했던 애가 특별히 좋아하는 호박잎으로 대박을 치게 생겼으니 내가 더 신이난다. 고기는 먹기가 쉬운데 야채가 그립다고 하던 말도 생각났기에....

그러나 호박잎을 손질하려고 쏟아 놓는 순간. 이 실망스러움을 어쩔까. 그것은 너무도 크고 뻣뻣해서 영 먹을거리가 못 되는 것 같았다. 파는 것이기에 더러는 버릴 것도 섞였을 줄 짐작은 했지만 부드러운 속잎파리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거친 잎으로는 비늘 없는 민물생선의 미끈거림을 닦는데 쓰느 것은 보았지만 그래도 쌈으로 먹을 수 있을는지 안타까웠다. 급한 사람이 샘 판다고 하던가. 그냥 버리기엔 미련이 너무 많아 해 보기로 한다.

어떻게든 먹을 수 있도록 해 보려고 공을 드려 껍질을 벗기는데 질긴 껍질이라 잘도 벗겨진다. 깨끗이 씻어 찜솥에 넣고 시간을 넉넉히 주어 푹 쪄 보았다. 아삭아삭하고 껄끄럽지만 정성드려 끓여 본 강된장이 아까워 몇쌈 먹어보았는데 이미 쌈으로 먹을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나서 입 안에 질긴 섬유질이 뭉쳐 넘어가려 하질 않는다. 모처럼 뱃속이 파랗게 물이 들도록 맛있게 먹어보려 했었는데... 이건 아니야.

나도 나지만 손녀에게 점수 좀 따려던 내 생각은 그냥 접어야하나? 워낙 좋아하니까 웬만큼 아니어도 참아주었으면 좋으련만. 나도 몇  쌈 먹었으니 치아 좋고 위장 튼튼한 애들은 먹을 수 있는거라고 시치미를 떼볼까. 요즘 애들은 개성이 강해서 아니면 그것으로 끝일 뿐 타협의 여지가 없기에 공연히 늙은이만 안타깝다. 그리도 좋아하는 것을 줘야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을 만들어가면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래도 그냥 치워버리기엔 안쓰러움이 남아 아이에게 먼저 귀띔을 해 보기로 한다. “순아 호박잎이 생겼는데 너 어때?” “어머머머 할머니 너무너무 해피....” “그런데 많이 자라서 크고 질기던데 괜찮겠어?” “제 위장이 워낙 튼튼하잖아요 저 정말 그거 좋아하는데요” 오케이!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다 진작에 그랬을 것을. 미련한 머리를 몇대 쥐어박으며 혼자 싱겁게 웃어본다.

그렇게 좋아하는 그 애에게 옛날 할머니가 내게 해 주시던 그런 맛이 진짜인데 이건 너무 엉터리가 아닌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때의 맛을 낼 수 없는 것은 오늘 날 영악스럽게 편리해진 전자제품의 덕이다. 불 때서 밥짓는 두툼한 가마솥에서 뜸드리는 밥위에 얹어 쪄내던 밥냄새가 베이고 더러 밥풀도 붙어있던 쫀득한 그 맛을 지금은 따라 할 형편도 재주도 없으니 말이다. 찜솥에 깔끔하게 찌긴 했어도 맛의 차이는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보리밥에 삭힌 특별한 된장으로 정성껏 끓인 강된장을 위로삼아 아쉬운대로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큼직한 호박잎에 쌈을싸서 볼이 터지게 잘 먹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보며 더없이 행복한 이 시간. 할머니의 마음도 함께 싸주면 얼마나 좋을까,
참새한마리
어디서 호박잎을 용하게도 구하셨네요. 손주분이 결국은 잘 드셨나요?? 저희는 호박잎은 못먹어도, 쌈장을 집에서 만들어서 상추를 비롯한 각종 푸성귀에 가끔 먹는답니다. 그맛은 정말로 맛있지요. 쌈으로 밥을 먹게되면 항상 정량보다 더 먹게되어서 배가 터질것처럼 되버리는게 흠이지만요. 정감있는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요~

북유럽 여행기(노르웨이) 1편

댓글 0 | 조회 2,224 | 2013.03.27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밤새 북쪽으로 올라 간 페리(D. F. D. S WAYS)에서 아침을 먹고 …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덴마크) 편

댓글 0 | 조회 1,983 | 2013.02.27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 나라가 서로 자신의 나라가 …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스웨덴)편

댓글 0 | 조회 2,809 | 2013.01.31
실야라인(silja line) 크루즈의 선상 뷔페식사 분위기가 더 없이 푸근하고 즐거워 피곤한 여정에 달콤한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낯선 음식을 맘껏 두루 맛보는…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핀란드)편

댓글 0 | 조회 2,127 | 2012.12.21
‘러시아’를 떠난 고속철이 질펀히 깔린 밀밭 사이를 힘차게 달린다. 어디쯤 국경이 있었을텐데 친구와 밀린 수다 좀 떨다보니 벌써 &lsquo…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러시아(상트 페테르 부르크)편

댓글 0 | 조회 2,278 | 2012.11.27
모스크바에서 항공편으로 한 시간 반쯤. ‘상트 페테르 부르크’에 도착했다. 170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지어진 이…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러시아(모스크바) 편

댓글 0 | 조회 2,144 | 2012.10.25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감은 없어지고 의욕이 있어도 매사에 겁부터 앞서는걸 깨닫는다. 여행계획을 세운지 삼년만의 긴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 어느날. 인천공항에서 … 더보기

미나리, 미나리 강회

댓글 1 | 조회 2,678 | 2012.09.25
지겹도록 비가 내려 지루하기만 하던 한 겨울. 그래도 그 비 덕분일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원 줄기에 마냥 나긋하게 자란 미나리를 만나니 반갑다. 그 것을 보는 … 더보기

여자는 예뻐지고 싶다

댓글 0 | 조회 2,872 | 2012.08.28
몸에 탄력을 잃으니 윤끼도 사라지고. 머리카락도 변변찮아 매만져봐야 그렇고 그런 모양새. 미용실 가야할 의욕도 잃은지 오래되었다. 어느날 오래 벼르던 끝에 찾아간… 더보기

마지막 건배

댓글 0 | 조회 2,475 | 2012.06.27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하루 600만명이 맥주, 소주 1800만병을 마신다는 한국의 요즘. 삶이 고달퍼 마시고 취해서 잊… 더보기

어느 이민 남자의 비애

댓글 0 | 조회 4,142 | 2012.05.22
불황의 수렁은 하염없이 깊어만 가는가? 주변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교민들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신천지를 찾아 보따리를 끌고 꿈에 부풀어왔던 사람들의 돌아가… 더보기

그러시면 안돼죠

댓글 0 | 조회 2,575 | 2012.04.26
“엄마, 이모한테 전화 좀 드려보세요.” 언제나 장난끼 넘치는 응석조로 전화 해 오던 한국의 딸아이 목소리가 오늘은 영 아니었다. (무슨일이… 더보기

그날, 버니(Burnie)에서

댓글 0 | 조회 2,700 | 2012.03.28
크루즈 중에 배에서 내리는 날은 언제나 바쁘다. ‘타스마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땅이긴 하지만 육지 밑으로 외떨어진 … 더보기

‘시드니’ 그리고 ‘다이아나’

댓글 1 | 조회 2,924 | 2012.02.29
잠에서 깨일 때마다 이층침대 머리맡 창밖을 내다보면 시커먼 바다. 그 검푸른 물결을 가르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속을 달리기만 하는 배. 항상 늦잠이 달아 잠뽀인 … 더보기

Happy new year

댓글 0 | 조회 2,757 | 2012.01.31
2012년. 첫날 새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happy new year_” 언제나처… 더보기

12월의 노래

댓글 0 | 조회 2,987 | 2011.12.23
‘하늘을 쳐다보며 사-뿐 귀에다 손을 대보라 구름이 방긋 웃는 소리 고요하게 들린다.’ 밝고 맑은 꿈을 꾸던 어린시절. 푸른풀밭에 누워 드넓… 더보기

현재 호박잎에 싸 보내는 할머니 마음

댓글 1 | 조회 3,105 | 2011.11.23
얼마 전 점심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 갔었다. 한식에 맞는 깔끔한 기본반찬 서너가지와 작은 뚝배기에 걸죽한 강된장이 함께 식탁에 올라왔다. 웬 강된장? 그것을 보… 더보기

그 벗꽃 길, 그리움이 있다

댓글 0 | 조회 3,073 | 2011.10.27
엊그제만 해도 죽은듯이 다소곳하던 헐벗은 벗 나무에 뽀오얀 꽃봉오리들이 툭툭 터져 화사한 꽃을 피워 웃고 있다. 아직은 어려 가녀린 몸매지만 버겁도록 무겁게 꽃짐… 더보기

아름다운 고별

댓글 1 | 조회 3,608 | 2011.09.27
옆집 할머니 ‘엘리자벳’이 갑자기 돌아가셨다."일년 중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우리들의 추석날. 명절다운 분위기로 조촐하게 잔치가 벌어진 작은… 더보기

‘포우투카와’ 꽃잎 날리던 교정

댓글 0 | 조회 3,090 | 2011.08.24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난 일들 가운데 보람있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자기 하는 일에 성취감이 곧 보람이겠지만 무엇보다 순… 더보기

차 사랑 할아버지

댓글 0 | 조회 3,066 | 2011.07.26
‘허버트’ 노인이 또 차를 바꿨다. 방궤같이 앙징스럽고 예쁜 신 차다. 그는 언제나 같은 스타일의 차들만 타는 취향임이 틀림없다. 주인을 닮은듯한 아담한 모양이 … 더보기

그 남자의 6. 25

댓글 0 | 조회 3,536 | 2011.06.28
시니어클럽 ‘무지개’에 나오시는 분들 가운데 남자 세 분이 참전용사였음을 이번에 알게 되면서 그 타고나신 천운(天運)이 새삼스럽게 놀랍고 부러웠다. 6. 25가 … 더보기

오월의 그 열기처럼

댓글 0 | 조회 2,951 | 2011.05.25
뜨겁게 달아 오르던 ‘제11대 한인회장’ 후보 세 사람의 열기도 이제 가라 앉았다.그 분들을 지켜보며 진정으로 우리 교민을 대표 할 한 사람을 가리느라 설왕설래 … 더보기

나눔의 기쁨

댓글 0 | 조회 3,234 | 2011.04.28
큼직한 상자에 여러 옷가지들과. 먹을 것이 담긴 봉지들이며. 병들을 차곡차곡 담고. 귀퉁이 빈 공간에는. 치약이며. 비누. 작은 일용품들을 빈틈없이 채워간다. 일… 더보기

호평동에서 온 편지

댓글 0 | 조회 3,622 | 2011.03.23
어린 강아지풀과 노오란 민들레꽃이 얌전하게 말려져 진홍의 카드지 안에서 환하게 나를 반긴다.훌쩍 해를 넘긴 작년. 봄의 소식을 알리며 고국의 땅 한 모퉁이 호평동… 더보기

설 명절에 웬 송편을....

댓글 0 | 조회 3,650 | 2011.02.22
‘젊은이는 희망으로 살고 늙은이는 추억으로 산다던가’ 구정을 맞아 귀성길이 막힌다느니 원활하다느니 수만리 밖에서 나와 무관한 사정을 듣고 보며. 그러나 그 곳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