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 아름다운 고별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보문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박기태
채수연
독자기고
EduExperts
이주연
Richard Matson
수필기행

[339] 아름다운 고별

0 개 2,945 KoreaTimes
건강이 그리 양호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직 병석에 눕지는 않으신 어느 어른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는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의 실감에 전율이 온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그리도 간단한 것인가? 여러 가지 잡념들로 밤잠을 설친다.

나이 들어 가면서 소망 가운데 특별한 기도가 있다. 고통도 괴로움도 느낄새 없이 자다가 조용히 가게 해 주십사…, 그 분은 그렇게 가셨으니 애석하지만 돌아 가시는 복은 최고로 타고 나신 분이라고 생각되었다.

문득 기억조차 사물거리는 아버지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서른 두 살의 새색씨 때. 나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척에 친정집이 있었지만 딸자식 종신할 기회조차 안 주시고 서둘러 저 세상 가신 아버지. 너무나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온몸의 감각이 마비돼 맥없이 주저 앉았던 일이며 마치 하늘이 내려앉은 것같은 절망감으로 앞이 캄캄했다.

예순 둘. 회갑을 겨우 넘기고 진갑을 맞은 늘상 건강에 자신하던 분이었으니 청천하늘에 날벼락이질 않은가. 갑자기 쓸어지신 것은 틀림없지만 도리켜 생각을 해보면 전조가 있었다는 소용없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지독한 독감을 한바탕 치루고 나서 아이처럼 먹을걸 보채셨다는 새로운 경험의 어머니 말씀처럼 돌아가실 분들이 챙긴다는 마지막 떠나실 양식이었을까?

아버지는 유난히 자상하고 정이 많은 분이셨다. 내가 시내에 볼일이 있을 때마다 늘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홀가분하게 다니곤 했다. “우리 복덩이들 왔구나”볼 때마다 자즈러지게 반기며 작은애를 받아 안으시는데 웬 일인지 그 날은 그 반가움이 없었다. 왜 화가 나셨나? 의아해 하는데 어머니께서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한 말씀이 생각난다.

“얘 너의 아버지 변하셨다. 그렇게 공드려 지은집 애지중지 하시더니 저 문짝이 잘 안 맞는다고 저렇게 마구잡이로 하시니 웬 일이니?”시무룩한 표정이며 태도가 전의 아버지가 아님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 날 시내에 나갔다가 아버지가 좋아 하시는 찹쌀떡을 적잖이 사서 들고 왔다. 집에 오니 저녁상이 벌어졌는데 아버지는 무얼 하시는지 돌아앉아 계신다. “아버지 식사 전이라 잘되었네. 찹쌀떡 좋아하시잖아요. 어서 잡수세요.”“알았다. 거기 놔 두거라.”보통 때 같으면 “어서들 먹어라.”하실텐데……. 온 식구가 충분히 나눠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게걸스럽도록 혼자서 거의 다 잡수셨다고 해서 모두가 놀라워했다.

“밤길 위험하니 자고 내일 가거라.”늘상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인데 아무 말이 없다. 그 다음날이었다. “얘 아무게야 떡도 실컷 먹었으니 이제 포도주나 한병 사다주렴.”내게 은근하게 조르는 표정이 마치 천진스런 아이 같았다. 누구 에미가 아니고 오래간만에 이름을 부르는게 생소했지만 웬일인지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어서 듣기에 좋았다. 자존심 강하고 의지가 분명해서 한 번도 그런걸 본적이 없는데 어쩐 일이실까?

“생전 안 그러시던 분이 웬일이니. 이 다음에 돌아가시고 나면 한이 맺히겠다. 얼른 가서 사 와라.”동생에게 농담을 하며 심부름을 시켰다. 아버지는 그 포도주를 맛있게 드시고 내게도 한잔 따라 주며 아주아주 만족해 하셨다. 바로 세상 뜨시기 일주일 전 쯤.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렇게 저 세상 가시는 분 마지막 양식을 해드렸으니 네가 효도를 했구나”어머니 말에 효도? 불효만 하고 사는 딸자식 얼마나 효도가 그리우셨으면?…… (좀 더 오래 사시지)
  
자식들 아무에게도 종신할 기회조차 안 주시고 황망히 떠나신 분. 너무 억울해서 울부짖었던 일이며 평생을 잔병없이 건강하게 살던 분의 갑작스런 죽음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고 슬퍼해야 하는데 세상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게 더욱 속상하고 야속하기만 했다.

어머니를 혼자 두고 집에 올 수가 없어 함께하는 며칠동안 남편의 빨리 오라는 성화도 너무 미웠다. “아버님은 복 받으신 분이셔. 아프지도 않고 편히 가셨으니…”

나를 위로하는 남편의 그 말조차 자기 부모님이 아니니 그리 말하는구나 노엽기만 했었다. 이제 세상 살만큼 살고 보니 그 말의 진의를 깨달아 미워했던 마음을 뒤늦게 미안으로 바꾼다. 마지막 세상 떠나는 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병들어 일그러진 모습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반듯하고 건강하게 나도 아버지를 닮아 그렇게 가면 좋겠다.

아버지 가실 때 나이보다 훌쩍 더 살았으니 이제 그런 생각을 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가신 분의 명복을 빌면서…….

나의 기쁨조 사람들

댓글 0 | 조회 3,384 | 2008.12.23
이 해도 마지막 달, 한 해를 마무리… 더보기

양귀비꽃 하루

댓글 0 | 조회 3,000 | 2008.11.26
찌프린 하늘이 회색으로 어둡다. 그 … 더보기

쌀밥에 뉘

댓글 0 | 조회 3,192 | 2008.10.30
주차장 옆, 시커먼 고목나무 팔 벌린… 더보기

봄이 오는 소리

댓글 1 | 조회 3,424 | 2008.09.24
연일 쏟아지는 비속에서 그토록 안달하… 더보기

나나니 춤

댓글 0 | 조회 3,638 | 2008.08.27
삼십년만의 큰 태풍이란다. 홍수에 집… 더보기

"DOULOS"의 사람들

댓글 0 | 조회 3,375 | 2008.08.13
그 날은 왜 그리도 비바람이 사나웠는… 더보기

[383] 일탈(逸脫)의 쾌감

댓글 0 | 조회 3,130 | 2008.06.25
길고 긴 여름 가뭄에 늦더위가 기승이… 더보기

[381] 멋쟁이 멋쟁이! (황혼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어라)

댓글 0 | 조회 3,091 | 2008.05.28
요즈음같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한… 더보기

[379] 이 가을에는.....

댓글 0 | 조회 3,238 | 2008.04.23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 세월에도 나를… 더보기

[377] 우리동네 시장 풍경

댓글 0 | 조회 3,751 | 2008.03.26
화요일 아침, 다른 때 같으면 잠자리… 더보기

[375] 짧은 만남, 긴 행복

댓글 0 | 조회 3,278 | 2008.02.26
금년(2008년) 설에 내 가족모임은… 더보기

[373] 그 나무님!

댓글 0 | 조회 3,079 | 2008.01.30
티티랑이 언덕길 위에 우뚝 서 있는 … 더보기

[371] 예술처럼 늙고 싶다

댓글 0 | 조회 3,078 | 2007.12.20
"이제 늙고 볼품없어 제대로 보아주는… 더보기

[369] 나누며 사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2,794 | 2007.11.28
생각보다 무겁고 두툼한 그것을 건네 … 더보기

[367] 무지개를 따라서

댓글 0 | 조회 2,968 | 2007.10.24
무슨 사연인지 묻지는 못했지만 내일 … 더보기

[365] 오빠와 취나물

댓글 0 | 조회 3,066 | 2007.09.26
이 나이에도 친정 식구들을 떠올리면 … 더보기

[363] 제니의 지팡이

댓글 0 | 조회 2,994 | 2007.08.28
"처음에는 네 발로 기어 살다가 두 … 더보기

[361] 바보가 되어가는 이야기 하나

댓글 0 | 조회 2,792 | 2007.07.23
"여기 우산 떨어졌는데요" 등 뒤에서… 더보기

[358] 서울내기 전원에 살다

댓글 0 | 조회 2,736 | 2007.06.13
숨가쁘게 달리던 차가 여주 "세종대왕… 더보기

[354] "실수였다" 구요.

댓글 0 | 조회 2,791 | 2007.04.12
한입 덥석 깨물면 상큼한 향기를 뿜으… 더보기

[351] 순아! 잘 다녀 와

댓글 0 | 조회 3,021 | 2007.02.26
아이의 나이는 그 때 세살이었다. 그… 더보기

[349] 고국에서 가을 단풍이…

댓글 0 | 조회 3,101 | 2007.01.30
해가 바뀌니 내가 원치 않아도 어김없… 더보기

[347] 나 홀로 밥상

댓글 0 | 조회 3,122 | 2006.12.22
나를 먼저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 더보기

[345] 젊음의 바다에 풍덩 빠져 버리다

댓글 0 | 조회 2,854 | 2006.11.27
어느 날씨 좋은 일요일 늦은 오후, … 더보기

[343] 안녕하세요?

댓글 0 | 조회 2,921 | 2006.10.24
마감을 거의 앞둔 바쁜 시간에 허둥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