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민들레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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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민들레 김치

0 개 3,012 코리아타임즈
비가 자주 내리더니 말라 붙었던 잔디가 기승을 부리듯 살아나고 온갖 잡초들이 서로 다투어 키자랑을 하듯 쑥쑥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 빠질세라 민들레도 한 몫끼어 나풀거리는 잎새에 윤기를 더한다. 그것을 보며 지나칠 때마다 내 가슴은 축축해지고 수채화같은 잔잔한 두가지 추억이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 날은 유난히 해가 길었는지…, 이른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길에 나섰다. 시원하게 트인 티티랑이 파크에서 만났던 타는듯 붉은 노을은 아니지만 집들 사이로 회색빛에 싸인 연분홍 하늘이 그런대로 아름다웠다. 무엇이든 늘상 혼자서만 하던 내 옆에 말벗이 되고 길동무가 되어주는 언니와 함께라는게 더 없이 즐거웠다.
  “어머 이게 다 민들레다”길섶 파란잔디속에 펑퍼짐하게 늘어진 잎사귀들을 가르키며 놀라워 하셨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쭈구려 앉은 언니 손엔 벌써 한 줌의 민들레가 쥐어져 있었다. 당뇨에 좋고 건강에 좋다고 매스컴을 하더니 서울에서는 민들레가 씨가 마를 정도로 사라져 버렸단다. 시궁창 옆 냄새나는 곳이거나 쓰레기장 근처 오물속에서도 남아나질 않는데 이렇게 깨끗한 민들레가 지천이라니…….
  아무래도 산책은 더 이상 지속이 안 될 것같아 슬며시 집으로 돌아와 비닐백을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함께 뜯어 담았다. 지나가던 얼굴 검은 여인이 의아한 듯 무엇에 쓰느냐며 묻는 것같다. 약으로 쓴다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어깨를 흠칫한다.
  해가 거의 넘어가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 앉을 때까지 부풋하게 채워 가지고 돌아왔다. 큰 횡재를 한 것처럼 뿌듯해 하시는 언니, 누구도 못 말리는 영원한 살림꾼, 일등 주부의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분, 지켜보는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게 하신다.
  “이거 바로 김치 담자 욹으면 약성이 빠지니까 쌉쌀하겠지만 그냥 담아야겠어”
  일 속에 파묻혀 살다가 여기와서 며칠 쉬니까 심심하셨을까? 장난감 만난 아이처럼 신바람이 나셨다. 그릇을 대령하고 양념을 꺼내 놓았더니 손질해 다듬어서 바지런하게 씻어 먹음직스럽게 버무렸다. 밤 가는 줄 모르고 해 담은 김치가 작은 통에 두 통이다.  
  “이것봐라, 제법 많은 걸, 냉장고에 넣고 천천히 익혀서 두고두고 먹어요.”
  대견해 하는 언니, 그 넉넉한 표정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해 보였을까? 젓국에 폭 삭고 간이 잘들어 익었지만 약이 된다는 씁쓸한게 사실은 별로여서 정말로 약처럼 참 오래오래 먹었다. 그 김치를 먹을 때마다 언니의 정성과 그 날의 추억이 떠올라 곁에 언니가 계신듯 착각하곤 했다.
  멀리 떨어져 살아도 어머니같은 보살핌으로 신경 써 주시는 언니의 절반도 이 동생은 못하고 있으니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꼭 맞는 말이 잖은가. 이제 민들레 이야기만 나와도 언니가 생각나고 그리움으로 가슴이 죄어온다.
  또 한 사람, 전에 살던 우리집 안마당에서 민들레를 뜯다가 우연히 친구가 되신 ㅇ집사님. 그 분은 정말로 당뇨환자여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김치 봇따리를 안고 가셨다. 매일 아침식사가 끝나면 반드시 산책을 해야 했고 그 길목에 있는 우리집엘 꼭 들려 놀다 가곤 했다. 정스럽고 경우도 분명한, 같이하면 마음 편하고 대화도 통하는 그런 분이여서 만나기만 하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수다에 출출해지면 옥수수, 호박, 감자 등을 쪄놓고 시골 마실처럼 놀다 가면 다음 날은 그 분이 그 만큼을 도로 들고 와서는 어제의 빚을 갚는다. 사는 집이 우리집에서 멀지 않다는 것 뿐 직장에 나가는 딸을 도와 살림을 맡아하는 것 말고는 깊이 아는 게 없지만 우리는 늘 그렇게 잘 지냈다. 늙으면 부부 함께 지내는게 권태롭고 짜증나는 일일까? 같이 귀국하자는 영감님을 먼저 돌려 보내고 혼자 여기 남아 사는게 너무 홀가분하고 편해서 가고 싶지 않다고 속이야기는 서슴이 없다. 아마 동생같은 나를 위로해 주려고 하는 말이려니 생각도 들지만 반 쯤은 진실인게 틀림없다.
  민들레 김치 들고 한국 들어 가면서 다시오면 또 만나자고 당부 약속 단단히 했건만 이제 그 분은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따님 가정이 모두 호주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민들레가 지천인 이 나라에 와서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되겠다고 집 정리하고 돌아 오겠다더니……, 지금은 어찌 지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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