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골프장에서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보문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박기태
채수연
독자기고
EduExperts
이주연
Richard Matson
수필기행

[315] 골프장에서

0 개 2,805 코리아타임즈
참 변덕 많은 날씨가 뉴질랜드 날씨다. 나도 여기 살면서 날씨 닮아 그리 변덕스러워지면 어쩌나 슬며시 걱정도 된다. 파아란 하늘을 보며 기분좋게 달려가는 길인데 어느새 검은 구름이 따라 오더니 비를 찔끔거린다. 한 두 번 겪는 일이 아니라서 태평스럽게 가다 보면 아니나 다를까 무엇에 놀래 쫓겨 갔는지 벌써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수정처럼 투명한 작은 물방울이 골프장 너른 초록잎 끝에 반짝여서 눈부시게 해놓고……, 문득 동쪽하늘 검은 구름을 배경으로 살포시 떠오른 곱디고운 무지개를 만난다. 팔만 뻗으면 잡힐 듯한 거리에 너무도 선명한 반원의 아름다운 다리를 혼자만 보기 아까워 공치느라 여념이 없는 동료들을 불러 호들갑을 떤다. 자연의 예술, 또렷하고 화려한 하늘의 칠색커텐.

“알롱 달롱 무지개 고운 무지개
  선녀들이 건너간 오색다린가
  언니하고 나하고 둥둥 떠올라
  고운다리 그 다리 건너봤으면……”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가 무심히 입에서 흘러 나온다. 여 덟살 소녀로 돌아가고 있는 찰나다. 공해없는 맑은 하늘 그 하늘에 구름이 만들어 내는 온갖 형상의 요술이 언제나 재미있어 과연 긴 구름의 나라답다. 그러나 비를 뿌린 후에 보여주는 쌍무지개 쇼가 절정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나는 재미가 이 나라에서 살 맛을 더해 주는게 아닐는지….

  3번 드라이빙 레인지 언덕 밑에 세 그루의 야자수같은 나무가 높다랗게 서 있다. 가끔씩 잘못 친 공이 그 나무 근처에서 감쪽같이 없어져 의아해 하곤 했다.

“나무가 공을 먹었나?”

  어느 날인가 마치 코끼리 등가죽같은 껍질을 한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다가 너무 놀랐다. 너울거리는 큰 잎새 바로 밑에 보석처럼 하얗게 박혀 있는 것들이 전부 골프공이었다. 무지무지한 탄력으로 날아가던 공이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여물지 못한 부드러운 층에 모질게 박혀 버린 것이다. 하얀구슬을 꿰어 만든 레이스를 목에 두른 것처럼 멋져 보였지만 몸에 탄환을 맞고 빼내지도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나무는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까? 말 못하는 나무들, 그 누구도 미안해 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제부터 조심하고 미안해 해야지…….

  점심을 먹으려고 펼쳐 놓으면 비둘기와 참새 떼가 어김없이 알고 찾아와 친구를 해준다. 먹을 것을 입으로 튕기느라고 거드름을 떠는 비둘기의 둔함 가운데 몸매 작고 날렵한 참새들이 끼어 들어 잽싸게 먹이를 채 간다. 너무 깜찍하고 얄밉다. 사람 들고 먹는 것까지 달려들어 쪼아가는 참새를 보며 해꼬지 않으니까 버릇없는 철부지 아이같다는 생각을 한다. 천적없어 두려움없이 살아가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그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골프장엔 또 다른 새의 가족이 살고 있다. 교만해서인지? 사람곁에 오지 않는 다리가 긴 새는 무슨 새일까. 진회색의 몸에 남색 깃털을 하고 벼슬과 부리가 빨갛다. 다리가 길어 모양새가 엉성해 보이긴 해도 컬러의 조화로 아름답게 돋보인다. 며칠 전이다. 개울가에 잃어버린 공을 찾느라 풀숲을 뒤지는 동료에게 갑자기 나타난 한 쌍의 그 새들이 번갈아 고공에서 낙하를 하며 무섭게 머리 위로 공격을 하려 드는 것이다. 그가 놀래어 허둥대다가 들고 있던 골프채를 휘두르며 반격을 하니까 어디론가 사라졌다.

  6ㆍ25때 전투기가 폭격을 하려고 내려 꽂히듯 급강하하던 그림을 떠올리게 했던 그들 폭동의 원인을 곧 알게 되었다. (그래 그거였구나) 조막만한 오리새끼들이 개울에 동동 떠다니며 노는 것을 보는 요즈음이다. 그러니까 작년 이맘 때 쯤 일께다. 그 때도 그 곳에서 공을 더듬어 찾는데 돌무더기 틈에 오롯한 새알 몇 개가 모여 있어 하필이면 이런 험하고 드러난 곳에 알을 품었을까 그런 우려를 했었다. 바로 그곳에 또다시 알을 품었던 모양이다. 제 새끼 다칠세라 사람을 경계하고 공격하려 했던 것 같다. 동물의 무서운 보호본능에 놀랐다.

  무지개가 마실 와서 놀다가는 하늘, 햇볕 넘쳐 나는 온화함과 막힌데 없이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이즈러지는 삶을 다잡도록 교훈을 주는 나무와 새들, 휘청거리는 노후(老后)가 되지 않으려고 나는 오늘도 그 곳으로 간다.  


[341] 모든 것의 고마움을

댓글 0 | 조회 3,034 | 2006.09.25
아침 잠에서 깨어나 커튼을 제치니 예사롭지 않은 바람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아마 태풍의 소용돌이에 깊이 휘말렸나 보다. 따뜻한 이불 속이 너무나 좋아 마냥 게으름… 더보기

[339] 아름다운 고별

댓글 0 | 조회 2,954 | 2006.08.21
건강이 그리 양호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직 병석에 눕지는 않으신 어느 어른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는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의 실감에 전율이 온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 더보기

[337] 비 속의 요정들! 겨울꽃

댓글 0 | 조회 3,057 | 2006.07.24
춥고 축축하고 구질구질한 매일 매일의 겨울날씨. 제습기가 빨아 먹고 쏟아 내는 엄청난 물의 양에 놀래면서 내가 마치 물 속에서 사는 듯 후줄근해져 이 겨울이 지루… 더보기

[335] 정서라는 양념 하나 더 김치

댓글 0 | 조회 2,932 | 2006.06.26
카렌다는 유월에 머물러 있는데 요즈음이 김장철이란다. 아직도 계절이 헷갈려 한국 같으면 지금이 몇월쯤에 해당되나 한 번씩 확인을 해봐야 수긍이 되니 여기 사람이 … 더보기

[333] 핑크빛 골프장갑

댓글 0 | 조회 3,118 | 2006.05.22
오래전부터 내 옷장서랍 한 견에는 작은 비닐백에 들은 임자 잃은 골프장갑이 얌전히 자리잡고 있었다.“나는 언제 주인님 손에 끼워져 바깥세상 구경을 하나요?”서랍을… 더보기

[332] 9988ㆍ1234

댓글 0 | 조회 2,780 | 2006.05.08
적당히 잘쓰면 좋지만 잘못쓰면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게 향수(香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아우님 내가 향수를 좀 썼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너무 진한 향수냄새… 더보기

[331] “여자”를 잃어가는 여성들

댓글 0 | 조회 4,113 | 2006.04.24
“아이 좋아라” 병원에서 그리 환하게 웃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진료실 문을 나서며 밝게 웃고 나오는 친구. 마치 아이같은 모습에 밖에서 기다리던 나를 의… 더보기

[330] 그 사람 “프레드”

댓글 0 | 조회 2,874 | 2006.04.10
그사람을 또 만났다. 수영장엘 가면 만나게 되는 사람이지만 내가 자주 가질 않으니 오래간만에 만난 “프레드”다. 그의 곁에는 항상 동양 여자들이 같이 있어 이야기… 더보기

[329] 천사들의 합창

댓글 0 | 조회 2,722 | 2006.03.27
어제 비맞은 골프가방이 아직도 포켓마다 입을 벌리고 말려 달라고 보채고 있는데 오늘 아침도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 검고 짙은 구름이 해를 삼켜 버렸다. 반나절을 하… 더보기

[328] 잘못된 친절

댓글 0 | 조회 2,665 | 2006.03.14
“아뿔사 그랬었구나”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옆의 누군가에게 망신이라도 당한 듯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바보 못난이… 더보기

[327] 캔노인과 인삼차

댓글 0 | 조회 3,224 | 2006.02.27
휘휘익~ 가느다랗게 금속성으로 울리는 휘파람을 불며 뒷걸음으로 집에서 나오는 캔 노인, 그리고 짤랑짤랑 방울소리를 내며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오는 회색 고양이. 언… 더보기

[326] 섣달 그믐날

댓글 0 | 조회 2,815 | 2006.02.13
어제까지만 해도 구름이 오가는 변덕날씨에 바람마져 사납더니……, 오늘은 미동도 하지 않는 엷은 레이스의 창문 커텐이 답답할 정도로 무덥다. 볕은 따가워도 그늘에만… 더보기

[325] 청계천을 가보고 싶다

댓글 0 | 조회 2,707 | 2006.01.31
해가 바뀌고 나니까 마음도 바뀌나? 그럭저럭 잘 견디던 향수병이 갑자기 도지나보다. 고국이 그립다. 나 없는 사이 많이도 달라진 서울, 청계천이 다시 살아났단다.… 더보기

[324] Oh, my God! 雪花 秀

댓글 0 | 조회 3,095 | 2006.01.16
雪花! 그 글씨만 보아도 백옥같은 눈꽃이 눈에 시원하다. 요즈음 한국은 눈꽃 속에 파묻힌 하얀 나라란다. 싸한 바람 속에 소복 단장한 고궁 뒷 뜰을 산책하고 싶다… 더보기

[323]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와이카토”

댓글 0 | 조회 2,890 | 2005.12.23
남반구인 이곳 뉴질랜드의 크리스마스는 내려쬐는 태양볕 아래 정열적으로 피어나는 포후투카화 꽃 속에서 맞이한다. 바람을 잔뜩 넣어 부풀려 만든 풍선 눈사람에 줏대없… 더보기

[322] 쌍둥이 아빠 고마워요

댓글 0 | 조회 2,753 | 2005.12.12
지치도록 피곤하게 운동하고 돌아와 막 현관문에 키를 꽂는 순간이다. 마치 내가 돌아왔음을 보고나 있듯이 안에서 요란스럽게 전화벨이 울려댄다. 누가 그리 때를 잘 … 더보기

[321] 보자기의 예술(보자기 전시회를 다녀와서)

댓글 0 | 조회 3,020 | 2005.11.21
“현대 문명이 우리 여성들의 조신한 정서를 몽땅 탈취해갔구나” 해밀톤 시립 와이카토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보자기 전시회'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더보기

[320] 그 비취에 가면.....

댓글 0 | 조회 2,763 | 2005.11.11
처음에 그 곳을 찾았을 땐 단순히 집에서 가깝다는 지리적인것 말고 달리 갈만한 그럴 듯한 곳을 찾지 못해서였는데 이제는 정이 들대로 들어서 헤어질 수 없는 친구처… 더보기

[319] 서른여섯의 눈동자

댓글 0 | 조회 2,875 | 2005.10.25
혼자 사는게 심심하지 않느냐고 간혹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아마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말이리라. 곁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는 것이 인생인 것을…. 전자 매… 더보기

[317] 솔잎 향기 그윽한 추석을 맞다

댓글 0 | 조회 2,795 | 2005.09.28
바람 몹씨 사납던 지난 주말, 추석을 이틀 앞둔 날이다. 그 바람 속에서 악전고투로 공을 날려야만 하는 막힌 데 없는 골프장.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럭… 더보기

[316] 목련이 피었네, 뚝뚝 떨어지네

댓글 0 | 조회 3,039 | 2005.09.28
자두빛 물먹은 목련이 피었네, 분홍색 화사한 벗꽃도 피었네. 소리없이 살금살금 봄이 찾아온 모양인가. 우리는 아직도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데…. 볕발 좋으면 까짓… 더보기

현재 [315] 골프장에서

댓글 0 | 조회 2,806 | 2005.09.28
참 변덕 많은 날씨가 뉴질랜드 날씨다. 나도 여기 살면서 날씨 닮아 그리 변덕스러워지면 어쩌나 슬며시 걱정도 된다. 파아란 하늘을 보며 기분좋게 달려가는 길인데 … 더보기

[314] 새 우 깡

댓글 0 | 조회 3,152 | 2005.09.28
새우 먹겠다고 바쁘게 달려온 세시간여의 여행, 그게 목적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모처럼 여행온 딸애를 위한 관광코스 중에 하나였기에 안내를 맡은 큰사위가 점심때를 … 더보기

[313] 바람이 흘리고 간 티끌이겠지…

댓글 0 | 조회 2,693 | 2005.09.28
친정 어머니가 아마 지금의 내 나이때쯤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인가, 우리집엘 오셨는데 핸드백 안에서 불쑥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네셨다. 모서리가 닳고 색도… 더보기

[312] 민들레 김치

댓글 0 | 조회 3,013 | 2005.09.28
비가 자주 내리더니 말라 붙었던 잔디가 기승을 부리듯 살아나고 온갖 잡초들이 서로 다투어 키자랑을 하듯 쑥쑥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 빠질세라 민들레도 한 몫끼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