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nows of Kilimanjaro in Auckland - 오클랜드, 킬리만자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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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201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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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영어칼럼
Kilimanjaro is a snow covered mountain 19,710 feet high, and is said to be the highest mountain in Africa. (킬리만자로는 해발 19,710 피트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말해진다.) Its western summit is called the Masai “Ngaje Ngai,” the House of God. (그 산의 서쪽 봉우리는 마사 이어로 ‘신의 집’을 뜻하는 “느가에 느가이”라고 불리워 진다.) Close to the western summit there is the dried and frozen carcass of a leopard. (그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 바짝 말라 얼어 버린 표범의 시체 하나가 놓여 있다.) No one has explained what the leopard was seeking at that altitude. (그처럼 높은 곳에서 도대체 표범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Ernest Hemingway (1899~1961)가 1936년 그의 나이 37세에 썼던 소설 ‘The Snows of Kilimanjaro(킬리만자로의 눈)’는 이렇게 시작 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Harry Street는 기자 출신의 미국 소설가이다. Hemingway의 삶과 그의 많은 소설 속 등장 인물들처럼 이 소설 속 주인공 역시 죽음에 직면한 상태에 서 있다.
프랑스 파리와 미국과 아프리카 등지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문학과 술과 여자와 싸움 속에서 자유 분방한 삶을 살던 주인공 Harry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사냥을 즐기던 중 한 무리의 영양들을 보고 사진을 찍다 가시 덤불에 무릎을 긁힌다. 빨리 손을 쓰지 않은 상처가 깊어져 Harry는 킬리만자로 산 정상이 멀리 보이는 산 기슭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상태를 맞게 된다. 몽롱해지는 의식의 깊은 곳에서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과거에 대한 회상과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다가 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Harry는 여러 생각에 잠긴다.
Africa was where he had been happiest in the good time of his life, so he had come out here to start again. (아프리카는 그의 인생의 황금기에 가장 행복하게 지냈던 곳이기에, 그는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었다.) They had made this safari with the minimum of comfort.(그들은 최소한도의 안락만을 취하면서 이번 사냥을 했다.) That in some way he could work the fat off his soul the way a fighter went into the mountains to work and train in order to burn it out of his body.(격투기 선수가 자기 몸의 지방질을 제거하기 위해 산으로 가서 훈련하듯이, 자기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정신을 덮고 있는 지방질을 태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He had destroyed his talent by not using it, by betrayals of himself and what he believed in, by drinking so much that he blunted the edge of his perceptions, by laziness, by sloth, and by snobbery, by pride and by prejudice.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신념을 배신하고, 자신의 통찰력의 칼날을 무디어지게 할 만큼 많이 술을 마시고, 게으름과 나태와 속물 근성과 교만과 편견으로 자기 자신의 재능을 파괴해 왔다.)
저 멀리 몽골의 울란바토르와 내가 오르던 산 9부 능선을 아쉬움 속에 밀어내면서 여행 오듯 남반구 두 개의 큰 섬나라 뉴질랜드로 이민 트렁크를 덜렁거리며 날아 온지도 벌써 9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하늘이 진짜 하늘 색을 띠고 있고, 참새들이 백화점 안 카페에까지 날아 들어오는 나라 뉴질랜드. 뜰 안 낮은 둔덕에서 꽃망울로 흘러내리는 ‘핑크 아이스 선인장’을 바라보며 원두 커피 한 잔을 즐기노라면, 폭설로 인한 서울의 교통 대란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감사하게도 주변은 들려 오는 모짜르트의 음악 ‘Concerto for Flute and Harp in C major, K. 299’ 처럼 평온하기만 한데, 나는 자꾸 산이 생각난다. “정상까지 오르면 뭐하냐. 누군가 툭 밀면 떨어져 구를 수 밖에 없는 뾰쪽 바위 끝인 걸. 어차피 내려와야 할 것을.” 수 십 길 낭떠러지에서 발에 걸리는 온갖 나무 뿌리까지도 피하지 않고 뽑아 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야만 했던 서울의 그 산 9부 능선에서, 나는 조숙한 척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려와서는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해서 등산화를 벗어 버렸다.
그 산이 생각난다. 킬리만자로의 눈이. 다시 올라야겠다. 그 산 정상까지. 다시 등산화를 신기 전에 내 몸과 정신에 낀 지방질부터 태워 버려야겠다.
어떤 이는 묻는다. “왜 다시 산에 오르려 하는가?” 나는 평범하게 다음 말을 인용하겠다. “산이 아직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다시 오르려고 하는 산이 모든 사람들의 킬리 만자로는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산이 아닐지도 모른다. 또 그 산도 더 이상 10여년 전에 오르던 그 산이 아닐지도 모른다. 얼마전 한 외신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킬리만자로 정상의 눈이 녹아 내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제, 킬리만자로의 눈이 다 녹아 내리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그 산 정상까지 올라야겠다. 내려와서는, 나에게 허락이 된다면 또 다른 산 하나를 오를 준비를 하고 싶다.
정상에 올랐다 내려온 고은 시인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못 본 그 꽃” 이라고 노래했지만, ‘그 꽃’은 정상에 올라 갔다 내려올 때만, 보이는 것이 허락되는 꽃일지도 모른다. 그래, 다시 오르자, 킬리만자로의 눈물이 마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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