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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2010. 14:12 NZ코리아포스트 (219.♡.23.25)
재미있는 영어칼럼
뉴질랜드를 차로 여행할 때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푸른 잔디가 뒤덮인 들판이나 언덕 위에 양떼와 소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로운 장면은 뉴질랜드로 이주해 와서 억척스럽게 이 땅을 일궈 놓은 농부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박물관이나 개척민들 (pioneers) 마을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건물들을 방문하면 초창기 이민자들의 모습을 그려 놓은 그림들이나 사진들을 가끔 만나 볼 수가 있다. 그들의 웃음기 없는 지친 얼굴들과 함께 사진 속에 찍힌 그들의 가족들의 얼굴 표정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뉴질랜드의 유명한 시인인 Ruth Dallas는 그의 시 Photographs of Pioneer Women에서 1800년대의 뉴질랜드 이민자들의 사진을 보며 느낀 그들의 삶에 대한 인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초기 정착민들의 촌락을 “The settlement ramshackle as a stack of cards.(카드 더미를 쌓아 올린 것처럼 쓰러질 듯한 정착마을)” 이라고 그려 내고 있다. 초기 정착민들이 살고 있는 부락에는 길도 없었고 또한 집들도 없었다. 거주할 공간이라고는 옥양목 천이나 풀들로 이어 지붕을 만들어 놓은 것 뿐이었다.
그는 또한 “See their strong arms, their shoulders broadened (그들의 강한 팔과 그들의 넓혀진 어깨들을 보아라)”라는 표현에서 사진 속의 개척민 여성들(pioneer women)이 소 젖을 짜고, 도끼질을 하고, 무거운 등짐을 나르는 고된 일들을 해서 남자처럼 억센 팔과 넓은 어깨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당시는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이어서 시인이 본 사진 속의 여성들은 많은 자식들을 낳아야 했으므로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편과 12~13명의 아이들(with bearded husband, and twelve or thirteen children)’을 돌봐 주어야 할 책임까지 떠맡고 있었다.
뉴질랜드의 Hamilton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Cambridge라는 마을의 개척민 여성들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There is nothing so harrowing as the pitiful existence of thousands of farmers’wives in these colonies. (이 식민지 마을의 수천 명의 농부의 아내들이라는 가엾은 존재만큼 비참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Isolated from all friends, and seldom seeing a strange face to lighten the monotony of her life, she toils on from early morn till late at night in her ceaseless struggle to make her family's lot less hard.(모든 친구들로부터 고립되어 좀처럼 그녀의 삶의 단조로움을 밝혀 줄 낯선 얼굴도 보지 못하고, 그녀는 가족의 운명을 덜 힘겹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고생하며 일한다.)”
뉴질랜드는 전세계에서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해 준 나라다. 처음 이 사실을 접하게 되었을 때는 흑인 노예 해방 운동이 있었던 미국도 아니고, 왜 남반구의 이 작은 나라에서 최초의 여성 참정권이 인정이 되었을까 궁금했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진들이나 역사적 자료들과 또 문학 작품들에서 보여 주는 개척민 여성들의 척박하고 고된 삶을 접하고 나니 그 삶의 굴레를 통과해 살아남은 여성들이 당당하게 최초의 여성참정 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여겨진다.
여성들이 뉴질랜드 개척사에 큰 역할을 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여성 참정권론자(suffragist)들의 활발한 활동이 뉴질랜드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청원서(petition), 공개적 모임(public meeting), 새로운 단체결성(new organization), 국회에 대표단 파견(deputations to Parliament), 신문 등 대중매체를 통해 참정권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뉴질랜드의 ‘여성 기독교 절제운동 연합(The Women's Christian Temperance Union-WCTU)’을 이끌던 Kate Sheppard 등과 같은 용감한 뉴질랜드 여성들의 노력과 여성의 참정권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많은 남성 국회의원들의 도움으로 1893년 9월 19일 뉴질랜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는 새로운 선거법(Electoral Bill)이 통과 된다. 그 후 1919년에는 여성들에게 국회의원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주는 ‘여성들의 국회법에 의한 권리 조례(the Women's Parliamentary Rights Act.)’가 통과되었다.
뉴질랜드는 이런 개척민 여성들(pioneer women)과 여성 참정권자들(suffragist)의 노력으로 여성이 정치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단체들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해 가고 있다. 그러나 2010년 3월 27일자 뉴질랜드 헤럴드의 ‘Canvas’에 실린 4명의 여성운동가들의 말을 빌리면 현실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아직도 남성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있는 듯 하다. 그들은 아직도 도처에는 여성들이 성적학대와 폭력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고 진정한 평등(equality)과 선택의 자유(freedom to make choices)는 아직도 요원하다고 말한다.
여성은 동등한 능력을 갖고 있는 남성이 받는 급료의 85 ~88%만을 직업현장에서 받고 있으며 출산 휴가가 있지만 출산휴가는 직업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한 기회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남성들과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자고 주장하고 자신들의 몸을 쇠사슬로 묶어 저항의식을 표현했던 선배들의 업적에 감사하지만 이제는 정신적으로 동등한 능력을 갖춘, 그래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여성 운동을 주장한다. 어머니의 날을 보내며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등한 자격과 능력을 갖 추고 당당하게 뉴질랜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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