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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9/2010. 15:38 NZ코리아포스트 (122.♡.159.81)
재미있는 영어칼럼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영국 작가 Geroge Orwell의 말이다.
올해는 경술 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6.25 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됐다 할 수 있으나 참 해방은 조금도 된 것이 없다. - 부모 처자가 남북으로 헤어져 헤메는 나라가 자유는 무슨 자유, 해방은 무슨 해방인가. - 전쟁이 지나간 후 서로 이겼노라 했다. 형제 싸움에 서로 이겼노라니 정말은 진 것이 아닌가? 어찌 승전 축하를 할까? 슬피 울어도 부족할 일인데, 어느 군인도 어느 장교도 주는 훈장 자랑으로 달고 다녔지 ‘형제를 죽이고 훈장이 무슨 훈장이냐?’ 하고 떼어 던진 것을 보지 못했다.” 전 세계가 미국과 소련 양극으로 갈라져 냉전 이데올로기가 서슬 퍼렇던 1956년 ‘사상계’라는 잡지에 실렸던 1950년대 한국에 대한 함석헌의 글이다.
2010년 추석에 바라본 한국은 54년 전의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있는가? 대한 민국은 남아돌아 창고에 저장해 놓은 쌀을 처분할 길이 없어 몇 십만톤을 동물이 먹는 가축의 사료로 처분한다고 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사람이 먹는 술의 재료로 방출한다고 하고, 식량란에 허덕이는 북한은 자존심 다 버리고 인도주의적이고 동포애적인 온정으로 무조건적으로 쌀을 보태주기를 바라고 있다. 여당의 고위 관계자들은 동포애로 남한에서 보내준 쌀이 북한군의 군량미로 100만톤이나 비축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한에 다시 쌀을 보내기 시작했고 중단되었던 남북의 이산 가족들의 만남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21세기 지구상에서 이보다 더 기막힌 상황을 맞이하는 민족이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얼마전 K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을 보며 과연 우리 민족은 “진정 광복했는가, 진정 다시 빛을 되찾았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에서 자유롭게 되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친일파의 자손들은 대대로 잘 살고 있고, 독립 운동가의 집안은 대부분 몰락해버린 대한민국의 기막힌 역사. 조선시대 최고의 귀족 가문이자 엄청난 부자 집안이었던 이회영의 6형제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해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 운동을 하며 그 중 한 형제는 굶어죽기까지 했던 가문의 몰락을 맞이했던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드라마로 재구성해 놓은 ‘자유인 이회영’을 보며 나는 다시금 Gandhi를 떠올렸다.
“미래의 우리 자손들은 간디와 같은 인물이 실제로 이 지구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Albert Einstein의 말이다. Gandhi라는 이름 앞에는 ‘위대한 혼’이라는 뜻의 ‘mahatma(마하트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1982년 Richard Attenborough감독이 만든 ‘GANDHI’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인간이 두려움 때문에 다른 인간에게 굴복한다면 그는 인간 본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항복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폭력으로 지배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폭력에 굴하지도 않는다.’라는 비폭력주의로 인도 민중을 이끌고 영국의 총칼에 맞서 투쟁하는 Gandhi(Ben Kingsley분) 앞에 선 영국 제국주의의 진압군.
손에 아무런 저항의 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왜소한 지도자 Gandhi와 그를 따르는 인도 민중의 무리들. 늠름하고 멋진 제복을 입은 영국군 장교는, 높은 말 안장 위에서 제국주의를 이끌었던 영국의 정신적 지도자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곤, 총칼로 무장한 영국군을 이끌고 말달린다. 인도 민중들의 바로 앞까지 말달려오던 영국군 장교는 유혈 진압을 목전에 둔 마지막 순간에 말 고삐를 잡아당기며 멈춰 선다. 영국의 제작자이며 감독이었던 Attenborough의 시각에서 묘사한 장면이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영국 제국주의의 첨병들은 인류애로 무장하고 평화를 전략으로 삼아 인도의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던 ‘위대한 혼’ Mahatma Gandhi 앞에서 멋지게 굴복한다.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같은 제국주의의 총칼이었지만 3.1운동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우리의 조상들이 무자비하게 학살 당했다. 왜 이러한 차이가 극명하게 역사에 남아 있는 것인가? 과연 그 당시 조선에는 Gandhi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상대 제국주의자들이 사무라이들의 후손들이었기 때문인가?
중국의 뤄순 감옥 박물관에는 안중근 의사와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의 동상이 있다. 다른 나라의 애국 지사들의 동상까지도 만들어 보존하고 있는 중국.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연일 방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 TV의 프로그램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모방해 드라마 등을 제작해 시청률만 높이려고 하는 한국의 공영 방송의 모습.
안중근 의사와, 단재 신채호와, 백범 김구와, 만해 한용운과 같은 위대한 민족 지도자들에 대한 심층적 탐구 방송을 더 많이 해야하지 않을까? 적어도 올해 2010년에는.
과연 간디만이 위대했던 인물이고, 우리의 역사에는 그 만한 위대한 지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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