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머리카락이 짧게 잘려지게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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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2010. 17:01
NZ코리아포스트 (219.♡.51.194)
재미있는 영어칼럼
우리말은 감성에 관련된 어휘나 어법은 많이 발달되어 있지만, 논리성은 발달되어 있지 않다. 이발하는 것을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하지 않고, ‘머리를 잘랐다.’고 한다. 영어로 그대로 직역을 해 놓으면 미국인들이나 뉴질랜드인들이 기겁을 하거나, 한국인들은 수시로 ‘머리를 자르고’도 살아남는 불멸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민족이라는 말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일이다. 또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지만, ‘나 머리 잘랐다.’고 한다. 어찌 내가 내 머리를, 내 머리카락을 자른단 말인가?
영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되는 학생들에게 ‘나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라는 말을 영작해 보라고 하면, ‘I cut my hair short.’ 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직역해서 ‘I cut my head short.’ 이라고 한다. ‘I cut my head short.’은 비논리적인 우리말 어법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단계이지만, ‘I cut my hair short.’ 이라고 써놓고 왜 틀렸냐고 묻는 학생들은 내가 애초에 의도했던 passive voice(수동태) 설명을 위한 동기유발의 덫에 걸린 것이다.
우리말에는 원래는 passive voice(수동태)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영어에서 ‘the subject performs the action(주어가 어떤 일을 행하는)’에 중점을 둔 the form of a verb(동사의 형태)를 active voice(능동태)라 하고, ‘the subject receives the action(주어가 어떤 일을 당하거나 받는)’에 중점을 둔 the form of a verb(동사의 형태)를 passive voice(수동태)라 한다. 따라서, 내가 내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아니고, 내 머리카락이 미용사나 이발사에 의해 잘려지게 시킨 것 이므로 “I had[got] my hair cut short.”이라고 써야한다. 영어 문장이 원래 담고 있는 뜻으로는, ‘나는 내 머리카락이 짧게 잘려지게 시켰다.’가 되는데 우리말로는 아주 이상한 어법이 되고 만다. 우리말에는 수동태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I had my hair cut short.’이라는 문장도 내가 원해서 미장원이나 이발소에 가서 자른 것이라면 우리말로 ‘나는 머리(카락)를 짧게 잘랐다.’는 뜻이 되지만, 내가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설명이라면 ‘나는 머리(카락)를 짧게 잘렸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많은 영어 선생님들이 ‘have[get] + 사물 목적어 + 과거분사’ 형식의 문장에서 주어에게 ‘이익’이 될 때 have[get]는 ‘시키다’라는 뜻이 되고, ‘손해’가 될 때에는 우리말로 ‘당하다’라는 뜻이 되는 것으로 구분하라고 가르친다. 왜? 영어와 우리말의 어법상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왜 우리말에는 passive voice(수동태)가 발달되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건대,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가지 원일일 수도 있겠다. 충효 사상만이 뿌리 깊게 지배하던 조선 왕조 500년이 지나고, 일본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이 되었건만 이승만 독재 정권과 6.25전쟁과, 유신 독재와 1980년 광주 이후의 군사 독재 정권이 지배했던 시절에는, 개인은 없었다. 위에서 ‘행동을 하는 주체’가 누구냐, 즉, 왕이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냐, 독재자들이냐만 중요했던 것이지, 그 ‘행동을 당하는 대상’인 영어의 object(목적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러한 수직적 상하 관계만이 극단적으로 팽배한 사회에서는 통치를 당하는 대상인 백성이나 시민들은 논리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수 없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큰 화를 당할 것이기 때문에, ‘입 삐뚤어진 소리’를 하거나(좋게 말하면 풍자나 해학이 된다), 알아서 기어야만 했다. 논리가 발달될 수 없었다. 또한 to receive an action(어떤 일을 당하는) 하는 대상을 the subject(주어)로 하는 문장 구조인 passive voice(수동태)가 발달될 수 없었다.
한 나라의 언어의 발달이나 변천은 그 나라의 역사와 정치와 문화적 배경을 배제하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영어에서는 말하는 사람인 ‘나’를 ‘the first person’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1인칭’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내가 존재하기에 가족이나, 지역 사회나, 국가도 가치 있게 존재하는 것이기에 편지 봉투에 쓰는 주소란에도 개인의 이름을 제일 먼저 쓰고 나의 집 번지를 쓰고, 거리 이름을 쓰고, 도시 이름을 쓰고, 국가 이름을 맨 마지막에 쓴다. 한국과는 정 반대의 순서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인격적으로 대우 받을 수 있고, 시민 한 명 한 명의 생명이 선거 때만이 아니라 진실로 재벌이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생명과 똑같이 귀중히 여겨지는 나라,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이다. 연평도에서 군인과 민간인들이 북한의 폭격으로 희생되었다 하고, 법정에서 정확히 가려져야 하겠지만, 모 재벌 2세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2천만원을 주며 그 돈만큼 야구 방망이로 50대 가장을 폭행했다고 한다. 21세기에서 10년이나 지난, 2010년이 아프게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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