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 '어린쥐'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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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어린쥐'의 착각

0 개 3,377 KoreaTimes
  어떤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는, 그 일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그 일의 목표가 합당하고 올바르게 섰는지, 일의 과실보다 부작용이 더 크지는 않을지, 일의 추진 방향이 올바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의무다. 특히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책을 책임진 사람들은 자 신의 판단에 오류가 없는지, 측근 사람들의 달콤한 혀 놀림이 아니라 쓰디 쓴 비판까지 들을 각오를 기꺼이 하면서 객관적 점검을 수 없이 받은 후에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미국 36대 대통령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가길 바란다. "Doing what's right isn't the problem. It's knowing what's right."("올바른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무엇이 올바른 지를 아는 것이다.") 한국의 촛불 시위의 '배후' 중 하나는 '어린쥐' 운운하며 영어 몰입 교육을 밀어 붙이려 했던 대통령직 인수위 원회의 발언이었다.

  아직은 설익은 정책인 '어린 쥐'이기 때문인지 그 발언을 하신 분은 몇 가지 큰 착각을 했었다. 우선 왜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면서 전문가인양 착각을 했었는지 궁금하다. 그러한 정책적 발언이 미국 하버드 대학 영문학 박사 출신인 서울대 백낙청 교수님도 아니고, 뉴욕 주립 대학교 영문학 박사 출신이면서 중등학교 영어 교과서 저자로 이름이 높은 서강대 영문과 장영희 교수님도 아닌 정치적 권력을 이양 받는 인수위원장의 입에서 왜 나왔는지 지극히 당황스러웠다.

  또 대학 교수 출신이면 학사와 석사 학위 소지자의 초 중 등학교 일선 영어 교사보다 초중등학교 영어 교육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하다. 왜 한국은 초 중등학교 교육 정책이 바뀔 때마다 초 중등학교 교사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대학 교수들과 교육부 관리들의 목소리만 우렁찬지 알 수 없다. 아직도 어쩔 수 없는 후진국 증후군인지, 이러한 전 근대적인 관료들의 고압적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 입만 열면 내세 우는 글로벌 시대의 잣대에 맞기나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아침 KBS 프로그램 아침 마당에 나온 한 강사의 말을 빌어 오자면,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한 만찬회에서 그 당시 유명했던 코미디언 밥 호프를 소개하면서, "나는 미 합중국의 정치적 대통령이고, 밥 호프는 코미디계의 대통령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격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 지향적인 인수위 관계자들은 정작 미국으로 부터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상호 존중의 정신은 배우지 못한 것이 아닌가 되묻고 싶다.

  오렌지를 어린쥐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고 한글 표기법 까지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개그 콘서트에 출연한 코미디언의 말이었으면 차라리 들을 만 했었다. 물론 가능하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과 같거나 비슷한 발음으로 영어로 구사하도록 교육 받는 것이 좋겠지만, '어린쥐'는 과연 정확한 미국식 발음인가? 영국식 영어 발음도 같은가? 호주 뉴질랜드 영어의 발음은 어떤가? 양보해서 미국식 발음에 가깝다 하더라도 미국 어느 지역 사람들의 일반적 발음이라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었기에 한글 표기법까지 바꿔야만 하는가? 한국 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는 '외국 미녀'들의 발음이 과연 모두 한국표준어 발음이기에 시청자들이 그 수다를 들으면서 웃게 되는가? 경상도에 살고 있는 외국 미녀가 경상도식 발음으로 수다를 떤다고 해서 과연 한국인들이 그렇게 못 알아 듣는가?

  초 중등학교에서 영어를 영어로 수업해야 한다는 말도 귀가 솔깃할만한 참신하고 '글로벌'한 발상이라고 내놓은 정책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그것은 흘러간 옛 시절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에 대비하여 그 당시 교육부에서 들이댔던 정책이었다. 그 당시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필자를 비롯한 수 많은 전국의 영어 교사들이 방학이면 5,6공식 회화위주의 영어 교육 준비를 위한 영어 연수장으로 끌려 다녀야만 했다. 이번에 2008년 21세기 버전으로 영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초 중등학생들을 다른 과목까지도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고 가일층 '업 그레이드'시켜서 발표했을 때는 할 말을 잊었다.

  영어를 좀 더 효율적이고 실용적으로 공부시키는 것이 글로벌 시대에 꼭 필요해서 이러한 하나의 안으로 이야기 했다 해도 앞 뒤가 바뀌어도 한 참 바뀐 이야기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나는 법이다. 영어 교육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예산을 이제껏 투자했는가 자문해봐야 할 일 이다. 공교육의 질을 이야기하기 전에, 교사의 질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수한 인재가 교단에 몰리도록 공기업이나 대기업 수준의 대우는 해주고 있는지, 지식 정보 산업 시대의 도래를 대비해서 얼마나 많은 재정적 뒷받침을 교육 현장에 기울여 왔는지 반성할 일이다. 1인당 국민 소득 2만불 시대에, 1만불 수준 국가의 교육 예산만을 투자 해 놓고 4만불 국가의 교육을 왜 못 따라가느냐고 다그치는 것이 과연 이치에 맞기나 한 일인가? 차라리 아직은 예산이 부족하면, 초등학교부터 영어 회화 수업을 늘리고 10년 20년 장기간에 걸쳐 중고등학교의 영어 수업을, 듣기-말하기 수업을 읽기 쓰기 위주의 기존 수업에 추가로 접맥시켜 나가는 것이 합리적 대안 중 하나일 것이다.

  교육의 효과를 단 기간 내에 거두려고 하는 것은 교육의 기본적 특성도 파악하지 못한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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