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 쇼스타코비치와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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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쇼스타코비치와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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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택시운전사였던 홍세화씨가 요즈음 즐겨 전파하는 말이 있다. 똘레랑스, 영어로는 tolerance, 한자어로는 관용이라는 말이다.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참아 주고 받아 준다는 똘레랑스의 소중함을, 오늘 2007년 5월 17일, 환갑에 다다른 세월동안 그토록 달리고 싶다고 울부짖던 철마가 남에서 북으로 임진강을 건너 서서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새삼 느끼 게 된다. 새가 드디어 좌우 양쪽 날개로 남북 하늘과 땅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까지 자유롭게 날게 될 것인가?

  광주에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식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도 가해자의 진정한 회개가 없기에 죽은 이들의 영혼은 관용을 베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대를 통과 하며 20대를 보낸 업보 때문인지 해마다 5월이 되면 그 때 입은 영혼의 상처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퍼덕인다.

  The golden mean is an uninteresting doctrine. (중용은 흥미 없는 교리이다.) I can remember when I was young rejecting it with scorn and indignation. (젊은 날 나는 중도를 지키는 것을 멸시와 분노를 가지고 거부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Since in those days it was heroic extreme that I admired. (왜냐하면 그 당시 내가 높이 평가했던 것은 영웅적인 극단이었기 때문이다.) 음악도 문학도 미술도 모두 그랬다. 젊음의 본질이 그런 것인지, 80년대가 선택을 강요했던 시대였기 때문이 었는지 중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요즘에 와서야 모짜르트의 음악이 주는 조화의 아름 다움과 평온함을 깨닫고 있다.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들으면 내 영혼이 깨어나는 것 같았고, 그 당시는 ‘금지 곡’ 이어서 명동에 있는 필하모니아 음악 감상실에 가서야 운 좋으면 몇 달에 한 번 들을 수 있었던 쇼스타 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 열광했던 나의 귀에 모짜르트는 정말 지루하고 귀족에게 아부했던 과대 포장된 천재 음악가에 불과했었다. 시인 천상병과, 김용택과 오규원의 시집을 뒤적이다가도 심지어 네루다와 엘뤼아르와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다가도, 타는 목마름으로 박노해시인 이 두 눈 부릅뜨고 본 노동의 새벽 바다로 달려가곤 했다. 루오 그림이 주는 질박한 종교적 분위기와 우수에 찬 자신의 삶을 긴 얼굴들과 목선으로 멋드러지게 표현했던 모딜리아니의 그림의 매력에 빠지다가도, 수화 김환기 화백의 전시회를 보다가도, 오윤 화백의 칼로 깎은 판화의 형상이 겹쳐 보이곤 했다.

  20대의 눈에는 서른이 넘은 사람들은 부패해 보이고, 서른 줄에 접어들면 20대는 너무 건방지고 마흔이 넘은 사람들은 썩어 보이고, 마흔 고개를 넘은 이들의 눈에는 40대 이전의 세대가 철없어 보인다고 했던가. Why is it that when I hear a young man talking arrogant nonsense with assurance, I am angry and point out to him his foolishness and ignorance? (왜 나는 젊은 친구가 확신감에 차서 교만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 들을 때, 화를 내며 그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지적하게 되는가?) Do I forget that at his age I was just as silly, dogmatic, and conceited? (나도 그의 나이 때는 그와 똑같이 어리석고, 독단적 이고, 자부심이 강했던 것을 이제는 잊었단 말인가?)

  사회학개론 강의 시간에 체제 옹호적인 발언으로 무장한 교수님과 설전을 벌이다 무장 해제 당한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던졌던 말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는 지극히 상투적인 말이었다. 수업 끝 종으로 논쟁은 일단락됐지만 나의 생각은 멈추지 않고 글 한 줄을 남겼다.

                                                              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익은 벼는 쌀이 되고 밥이 되고 거름이 되고/ 내일의 씨앗이 되지만/ 고개 숙일 만큼 벼가 익으려면/ 바람에 꺾이지 않고 별을 향해/ 꼿꼿이 서서/ 시간과 싸우고 하늘과도 싸우고/ 싸우는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한다.//

벼가 익으려면 아직도 먼 이 계절에 예예 허리가 굽은 이 벼들은/ 계속되는 이상 기후 때문이냐/ 겸손의 전통 때문이냐/ 식곤증 무골증에 걸린 때문이냐/ 아니면 평화만을 사랑한다는 아름다운 미신 때문이냐//

농부여, 나이 많은 농부여/ 두 손 비비며 고개 숙인 이 벼들은/ 익은 것인가/ 썩은 것인가/ 죽은 것인가

(김재석) 그 때 나는 20대 초반, 인생의 초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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