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 Fighting 대한민국,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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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Fighting 대한민국, 핸드폰!

0 개 4,513 코리아타임즈
지난 달 초 한국의 한 지방 도시 술집 화장실에서 마주친 남자가 술에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자, 힘을 내라는 뜻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Fighting!”하고 외쳐준 20대 회사원이, 기분이 상한 취객의 친구가 날린 주먹에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인 터넷에서 보았다. 맞은 20대 회사원에게는 대단히 미안 한 얘기지만, 그 짤막한 기사를 쓴 기자의 말처럼 "파이팅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하는 것이 아니라 “Fighting!
(싸움)”이라고 했으니까 말 그대로 주먹‘싸움'이 벌어 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렵지도 않은 영어 단어‘fighting'을 생각 없이 잘못 쓰기 시작해서, 이제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TV에서 까 지 사람들이“화이팅! 파이팅!”우리말 표준어처럼 쓰고 있다.  TV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엄마 아빠 파이팅! (엄마 아빠가 싸우고 있어요!)"이라고 따라 외치게 하고, 교육 전문 방송인 EBS-TV에서 까지도 영어회화 시간 을 선전하면서“영어 회화 화이팅!"이라고 하며 '아주 호 전적인 영어 회화!'를 광고하고 있다. 이번 국회 의원 선 거 유세 때 자신들에게 표를 달라고“Fighting OO당!”하고 돌아 다니면서“국회에서 싸움박질만 하고 있는 OO당!”
이라는 것을 큰 소리로 만천하에 광고한‘의원님'들도 있 다고 한다.

  청소년을 위한 TV 여름 방학 특선 강연의 제목 "파이 팅 하이틴!"은 "싸움하는 10대"라는 뜻으로 그렇지 않아 도 골치 아픈 학원 폭력을 부추키는 꼴이 될 것이고, "Fighting Korea!"라고 소리치며 올림픽 경기장에 가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응원하면 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이 평화의 제전에 와서도 싸움을 벌이려고 한다고 할 것 이다. 싱가폴에서 열린 요리 대회에 가서 까지도 볶음밥 을 만드는 외국 요리사들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방송인들을 보고 외국인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했을 것인가?

  올 해에도 아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Fighting! Fighting!"이라고 외치면, 투혼을 발휘하여 열심히 잘 하라는 뜻이 아니라, 박찬호 선수가 운동장에서 발길질하며 치고 받고 싸우기를 염원한다는 뜻 밖에는 안된다.  박찬호 선수의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으면 "Fighting!  Fighting!" 하고 소리 칠 것이 아니라 "Go! Go!"라고 외쳐야 올바른 영어가 된다.  그보다도 차라리 "힘내라! 힘내라! 박찬호!"라고 하거나, "이겨라!  이겨라!  박찬호!"라고 응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못 쓰이기 시작하여 굳어버린 언어는 바로 잡기가 결코 쉽지 않다.  서로에게 상처주고 고통 받고, 서로 위 로 하고 위로 받는 인간들에 대한 안쓰러움까지 고스란 히 감싸 안았던 노희경 작가의 연속극 '꽃보다 아름다워' 에서, 애 딸린 이혼녀 미옥(배종옥)과 집안의 유일한 희 망으로 기대하며 교수로 키워왔던 아들 영민(박상면)과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해왔던 영민 아버지가 둘의 결혼을 마침내 허락한다는 말을 미옥에게 하기위해 아들 영민에 게 '핸드폰'을 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다. 시골에서 배운 것 없이 농사만 지며 살아온 아버지의 극중 성격의 사실 성을 살리기 위해 노희경 작가는 세심하게 신경 써 대사 를 처리했다. "네 핸드폰 좀 다오."가 아니라 "네 손전화기 좀 다오."라고. 그러나 작가의 세심한 배려에도 불구 하고 이 대사는 올바른 표현이 될 수 없다.  귀에 꽂고 듣는 것 'earphones'이고, 머리에 쓰고 듣는 것은 'head- phones'이지만, 손에 들고 전화를 걸 수 있는 핸드폰(handphone)이라는 영어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기지국을 단위로 한다'는 뜻에서 쓰는 'cellular phone' 또는 'cell phone'이라는 일반적인 영어 표현을 처음부터 썼던가, 뉴질랜드에서처럼 'mobile phone'(이동 전화)이라고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전 세계에 엄청나게 많은 '핸드폰'을 수출하는 '핸드폰 강국'에서.
  
  한국에서는 바삐 움직이느라 '핸드폰'을 꼭 갖고 다녔지만, 뉴질랜드에서 생활한 지 벌써 3년이 되어가고 있어도 필자는 아직도 'mobile phone'을 구입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다니며 전화를 걸면 즉시 상대방의 위치와 상태를 알아낼 수 있게 해주는 'mobile phone'은 편리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빼앗아가  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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