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우리 곁에 이미 도착해 있는 미래
아직 오지 않은 과거
여기서 끝일 것 같은 현재
미륵이 하생하는
56억7천만년 후이거나
지금 이 순간이거나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오는
모든 것들에게 바침
네가 사라진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봤어? 하늘은 투명하게 맑고, 찼다 가라앉는 바다의 약속은 지켜지고, 숲의 성장 소설은 계속되고, 별들은 찬란하고, 사람들은 휙휙 지나가고 있어. 너는 없는데, 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실은 나에게 묻는 질문이었어. 어제 내가 죽었다면……. 내가 죽은 후에도 세상은 생생하게 지속될 것임이 분명한데. 그것이 죽은 나에게 어떤 느낌을 줄 수는 없을 텐데. 당신은 그 모든 걸 정말 다 알았던 건가요?
▲ 공주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
중생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보살로 왼손에는 약병을 쥐고 있다.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은 혼신을 다해 중생 치료에 힘쓴 나머지 기운이 다 빠진 듯 여리여리하다. 쉬셔야합니다! 세상 모든 아픈 사람들과 훼손된 지구별이 온전히 치유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갑사로 가는 길에 우박을 만나다
날씨가 좋지 않은데도 산행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를 모르겠다. 동학사에서 출발해서 남매탑을 참례하고 갑사로 내려가는 길을 꼭 가보고 싶었다. 어릴 적에 교과서에 읽은 <갑사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짧은 수필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코스는 오롯이 각인되어 있었다. 정갈한 동학사를 지나 계룡산에 오르는 초입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상당한 경사의 돌길을 오르자니 가끔씩 해가 비추기도 해서 그때그때마다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계곡은 깊었고 계절도 깊었다. 기온이 조금만 더 내려갔다면 눈발이 날릴 것 같은 초겨울의 날씨였다. 남매탑까지 등산객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빗물과 빨간 단풍잎이 묻은 돌들이 미끄러운 것이 기뻤다.
드디어 저만치 어깨를 드러낸 남매탑. 사람처럼 반가웠다. 두 석탑은 유정했다. 두 사람을 거리를 두고 몇 바퀴나 돌았을까. 혼자하는 강강술래처럼 이 각도에서 저 각도에서 꼼꼼히 우러르며 빙글빙글 돌았다. 남매의 연을 맺어 수행한 비구 스님과 처자를 기린 탑이라는 전설이 내려오지만, 내가 본 바로는 두 탑은 동성의 느낌이 강했다. 탑 앞쪽에는 거북이 모양의 석조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바다를 찾아 가다가 여기서 잠시 쉬는 것일까. 두 탑은 다정다감했다. 말없이 서로에게 향하는 무한한 사랑이 전해왔다. 아무 조건 없이 서로에게 주는 위로와 응원. 여기서는 숨죽이지 않아요. 숨 쉬어도 돼요. 크게 숨 쉬어요! 거북이 등에 앉아 투병 중인 지인에게 남매탑의 정경을 사진 찍어 보냈다.
날이 또 갑자기 흐려져서 동학사로 돌아갈까 아니면 계획대로 갑사로 넘어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어느새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을 따라가고 있었다. 금잔디 고개를 넘으면서 완만한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거기서부터 갑사까지의 길이 아련하게 심금을 울렸다. 크고 작은 화강암들이 여기저기 모여 웅성거렸고 이끼들은 바위에 군상 같기도 하고 우주 같기도 한 추상화를 그려놓고 있었다. 빗물이 졸졸졸 흘러 모여 있었고, 나무들은 기기묘묘한 형태로 구부러져 있었으며, 무수히 많은 무명씨의 무명 돌탑들이 사로잡아 걸음을 더디게 했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득도할 것만 같은 길.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는데 돌연 빗줄기가 세지더니 후두둑 별사탕 같은 우박이 떨어졌다. 으하하하.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게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그 웃음은 분류하자면 원초적 웃음일 게다.
암벽에 피어난 함박웃음 꽃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까. 울면서 태어났으니 웃으면서 돌아가야 맞지 않을까. 찾아온 마지막을 미소로 맞이할 수 있을까.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의 실물을 영접하면서 불가능은 아닐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중앙 석가모니불의 웃음은 미소가 아니라 함박웃음이었다. 본래의 얼굴 같은 웃음.
할머니처럼 친절하게 다가오지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존엄한 아름다움이 서리서리 어려 있다. 저 불상을 조각한 석공은 도대체 어떤 신통력으로 단단한 암벽을 떡 주무르듯이 주무른 것일까.
당장이라도 살아서 걸어 나올 것 같은 삼존불, 이 정도면 아이맥스 4D 영화급 실감이다. 왼편의 제화갈라보살은 부처님이 될 것을 예언한 과거불이고, 오른편 반가사유의 미륵불은 미래불로 시공을 넘나드는 서사까지 완벽하다. 살아있다. 우리 곁에 생생하게 살아계시다.
부여 읍내에 있는 또 하나의 국보 정림사지오층석탑 또한 백제미의 정수이다. 부여의 옛 이름인 사비로 도읍을 옮겨 절을 짓고 탑을 세우고 불상을 조각하여 후백제의 문화를 꽃피웠던 대략 천오백년 전의 사태를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이 그 시대의 아카이브가 저장된 메모리 칩이라도 되는 것일까. 때마침 지난밤에 있었던 행사로 탑 주변에 설치했던 장치들을 철거하느라고 수고하시는 작업자들과 관람객이 얼크러진 풍경이 기묘했다. 나는 시끌벅적한 틈을 타 멀찍이 떨어진 벤치에 앉아 천양희 시인의 짧은 시 한편을 조용히 읽어보았다. 돌을 쌓으면 / 탑이 되는데 / 삶은 왜 층층이 쌓여도 / 탑이 안 되는가
오직 모를 뿐!
충청도 곳곳의 석불, 석탑을 찾아가는 만행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그 중에서도 금산 미륵사 석조불두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눈앞을 캄캄하게 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은 이것을 화두로 삼아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라는 책을 저술했다. 똑같은 화두가 떠올랐다.
그리고 숭산스님의 외마디가 머릿속에서 웅웅거렸다. 이번 생에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은 깊고 깊은 미륵사는 무뚝뚝했다. 석조불두의 위치에 대한 아무런 안내 표식도 없었고, 하필이면 출타 중이신지 스님 한 분 안 계셨고, 대웅전도 굳게 닫혀있었다.
한참동안 절 뒤편 산을 뒤지고 다녔지만 석조불두는 찾을 수 없었다. 삼천 배라도 올려야 나타나려나, 했지만 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해우소 쪽으로 난 왼편 길을 따라 백 미터쯤 올라가면 거대한 암벽 위에 올려놓은 기이한 불두를 만날 수 있다.
도대체 여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실패한 혁명의 잔해 같기도 했고, 패자의 낙원 같기도 했다. 차라리 처절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암벽에 선각으로 마애불의 몸을 조각하고 그 마애불의 머리 부분에 불두를 입체로 조각하여 얹어놓은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였다. 이 암벽이 깨지고 그 안에 내재된 부처의 몸뚱어리가 뛰쳐나오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미지의 힘이 필요할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유성의 충돌 같은 거대한 외력의 작용 말이다.
그러한 별똥별의 추락이 별의 운행과 함께 정해져 있다면 정확히 56억7천만년 후쯤 되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깨닫게 된다는 그때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서는 입이 쩍 벌어졌다. 바위를 정으로 쪼아 미륵을 조각했다기 보다는 미륵불이 이미 들어 있는 바위에서 마치 애기를 받아내듯이 꺼냈다는 쪽이 확률적으로 맞을 것 같다. 56억7천만년의 풍화작용을 견뎌내서 저 거대한 석불이 검지 만해질 때쯤 그날은 과연 오는 것일까. 하생한 미륵불의 세 번의 설법으로 모두가 깨닫게 된다는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는 우주적 해피엔딩이 과연 오는 것일까.
어떤 대상이 약속 장소에 꼭 나타난다는 미래가 보장될 때만이 그 시간을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람맞은 거다. 그리고 기다림이란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가 올 때까지 능동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그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는 기다림의 적극적인 방식이다. 56억7천만년 동안 미륵이 하생 할 때까지 생명들은 눈물겹게 살아낼 것이다. 그것이 붓다의 시나리오이며 그것을 이미 알고 서 있는 미륵이 바로 눈앞에 있구나.
나는 외력을 믿게 되었다. 그것을 가피라고도 할 수 있고, 천지신 명의 돌봄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하느님의 보우하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나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너를 지키려는 나의 힘.
그것이 당신을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화강암처럼 굳은 믿음. 나에게 남은 시간 동안 이 믿음을 당신과 함께 확인하고 싶다. 착한 사람들이 아픔 없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 올 때까지 미륵처럼 기다리겠다는 우주적 스케일의 서원을 세우며 갑사로 가는 길 끝에서 돌 하나를 주워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그 때 우박을 맞으면서 희한한 웃음이 터진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신명이 났다.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