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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여 년이란 길고 긴 역사의 물결과 함께 한 중국사람들......부드럽고 은근한 면이 있는가 하면 또 생각이 깊고 앞을 멀리 내다본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늘 중화(中華)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있으며 실리를 챙기는 데에도 빈틈이 없다. 이런 기질은 중국사람들이 자기들과 이웃하고 있는 다른 민족을 동화(同化)해 온 과정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민족자치구로 되어 있는 신강(新疆)위구르, 서장(西藏 Tibet) 그리고 내몽고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위구르인들은 인종으로는 중국인 보다는 터키인에 가깝고 주로 이슬람을 믿고 있다. 1949년에는 6%였던 한족(漢族 중국인) 비율이 지금은 40%이상이라고 한다. 내몽고에는 70%가 한족이며 어떤 지역은 90%가량이여서 몽고인들은 자기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굴러 떨어질 정도이다. 내몽고는 이미 중국화가 되었고 신강 위구르와 서장도 머지 않아 중국화가 될 듯 하다고 한다. 중국이 다른 민족을 중국사람으로 만드는 기본정책은 이들 다른 민족지역에 한족을 이주시키고 원주민 고유의 말과 글을 못 쓰게 하는 것이다. 그대신에 중국어(mandarin)로 말하게 하고 한자(漢字)를 가르치며 공용어로 쓰게 하는 것이다. 자연히 이 민족들은 고유의 말을 잊게 되니 문화도 사라지게 되어 저절로 중국문화권으로 동화되어 가는 것이다.
서울의 명동 한 복판에는 반세기가 넘게 중국 교민을 위한 화교(華僑)학교가 있고 다른 주요 도시에도 있어 그들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말, 글 그리고 생활 문화를 가르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은 역사와 경험에서 얻은 이런 지혜를 밑거름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중국 얼을 가르치며 지켜오고 있다. 필자는 오클랜드에 있는 중국화교학교를 방문하여 그들의 교육열과 교육이라는 본업에 충실한 자세와 내실(內實) 위주의 운영을 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말 할 것도 없이 한 민족의 글과 말에는 그 민족의 얼(魂)이 깃들어 있다. 내 말과 글을 스스로 가볍게 여기고 귀찮아 하며 멀리하여 결국 서툴게 되거나 심지어 잊으면 글자 그대로 ‘얼이 빠진 떠돌이’가 된다. 얼 빠진 사람이 남이 부러워하는 높은 연봉을 주는 직장에 다닌들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유태인들도 비록 세계를 떠돌아 다녔지만 말과 글과 경전(經典) 등 민족 정체성을 가정에서부터 가르침으로 민족의 얼을 잘 지켜 오늘의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뉴질랜드 뿐만 아니라 해외, 특히 영어권의 한인 자녀들은 반드시 우리말과 글을 배워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서 자란 한국 청년이 미국회사에 입사했지만 한국말이 비지니스할 수준이 못되어 쫓겨난 사례와 한국의 회사에서 영어권 출신 교민 자녀를 채용했지만 역시 비지니스할 만큼의 한국어 실력이 못 되어 퇴출된 현실을 보아서라도 한국어를 어려서부터 쓰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겠다.
뉴질랜드의 주요도시와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한글학교’는 우리 교민 모두의 희망이며 자랑이다. 필자는 평소 특히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우리 한인의 어린 자녀들이 과연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 했었다. 오클랜드에 있는 한 한글학교가 학생들의 한글로 쓴 글을 모아 펴낸 글모음(文集)을 본 적이 있다. 학생들은 가족을 가장 중한 것으로 꼽고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말씀을 가장 잘 들으며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에는 존경심을 갖고 따름을 볼 수 있었다. 서툰 글이지만 그 속에는 진솔함이 배어있어 한글학교들의 교육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어린이들의 생각이 매우 건전하고 우리 얼과 정체성을 잘 이어가고 있다고 보여져 대견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실에 키위들이 쓴 글도 눈을 끌었으며 이들(성인) 학생들은 한국문화 체험도 겸하여 하고 있다. 우리 말, 글, 역사 그라고 문화를 우리 자녀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가르치는 이들 학교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한국정부의 재외동포 정책도 확충되어 이들 학교에 대한 재정지원도 더욱 두툼해질 것을 기대한다. 누군가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이런 일을 사명으로 삼아 자원과 봉사 자세로 임하는 학교 관계자들...... 이들에게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뉴질랜드도 머지 않아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어의 필요를 느낄 것이다. 한국의 국제 위상으로 보면 한국어는 아마 세계 10대 주요 언어 중 하나 쯤 될 것이다.
한글은 우리 민족이 인류사회에 기여한 문자유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코리안 가든에 한글 벽이나 우리말 탑을 세워 우리 교민 자녀와 키위들에게 우리글을 오래오래 보여주면 어떨까? 우리글과 말을 아는 교민들이 세계에 많이 퍼질수록 우리의 테두리는 넓어질 것이고 곧 이는 우리 모두의 미래 자산이 될 것이다. 이런 한글학교들의 인력과 경험, 한국에 대한 정보 자료, 한국과 세계 교민간의 넷트웍 등을 언젠가 한 곳에 모아 한국문화 센터로 발전시켜 뉴질랜드의 한국문화 수요에 대응하는 전문기관으로 성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 유 승재
한민족한글학교 BOT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