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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예일대학교 임상심리학 교수 대니얼 레빈슨(Daniel J. Levinson) 박사는 성인 발달이론의 대표적인 학자로 인생을 25년 정도의 주기, 4개의 국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생애를 봄(0세-22세, 미성년 기), 여름(17세-45세, 성인 초기), 가을(40세-65세, 중년, 성인 중기), 겨울(60세 이후, 노년기, 성인 후기) 등 4계절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4계절을 반복하면서 생명을 유지하지만 인생은 한 번 지나가 버리면 그만인 4계절을 마치고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다만 후손을 통해서 생명력을 이어간다고 보는 것이다. 1년생 식물도 씨앗을 통해서 이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인생에서 봄은 부모의 양육을 받으며 아기에서 어린이,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시기이다. 또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과정을 거치며 지적으로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자기성찰과 ‘나는 어느 길로 가야할 것인가?’ 에 대한 목표설정을 하고 매진함으로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우뚝 설 수 있는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여름철에 농부는 풍년을 기약하면서 농작물에 거름을 주고 풀을 뽑고 호미질을 하며 온갖 정성을 쏟는다. 마찬가지로 성장한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사회에 나와 직업을 갖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기르고 가르치고 열심히 노력해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고 사회적으로도 열매를 맺는 여름 절기이다.
가을은 곡식이 여물어 추수를 하는 시기이다. 지금까지의 개인의 업적도 열매가 익어 결실을 거두게 된다. 자녀들을 출가시켜 손자, 손녀도 보게 된다.
겨울은 은퇴와 신체적 노화를 수용해야 되는 시기이다. 현업에서 은퇴를 하고 막연히 죽을 날만 기다릴게 아니라 제2의 인생을 설계해서 재출발하는 경우도 있다. 부지런한 사람은 겨울철 농한기라고해서 무조건 일 손을 놓고 쉬기만 하는 게 아니다. 2모작을 시도해볼 수도 있고 비닐하우스를 통한 겨울철 작물을 가꿀 수도 있는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살아 온 일생을 반추하면서 후배들을 육성하고 후손들을 위해 유용한 자산을 물려주고 떠날 준비를 한다.
인생의 4계절을 개인한테 적용해보면 제대로 4계절을 다 살았거나 병 질환이나 사고에 의해서 중간에 생명을 다할 수도 있다. 또한 평균 수명의 증가로 나이별 계절 구분이 달라 질 수도 있다. 나의 일생을 반추해보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묘하게도 4절기가 27년 단위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봄에 해당되는 27년간은 1941년 일제말기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던 때에 태어나 일제 패망, 미군정, 대한민국 독립정부 수립, 한국전쟁, 자유당 정부, 4.19, 5.16을 거치면서 대학, 대학원 교육까지 마치고 취직을 해,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였다. 여름으로 향하는 첫 해에 결혼을 하고 맞벌이 부부로 자녀 출산과 양육/교육을 병행하면서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느라고 정말 열심히 뛰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와중에 박사학위를 마치느라고 5년을 투자했다. 마침 한국의 산업화 진전과 더불어 기회도 많았고 경제적 기반 형성이 순조롭기도 하였다. 두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막내인 아들은 군 제대를 마친 상태에서 뉴질랜드 이민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그 때는 내 인생의 여름에 해당되는 27년을 보내고 가을이 시작되는 54세의 나이였다.
나의 인생 가을을 맞아 뉴질랜드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108세를 목표로 생애 계획을 세워 실천하다보니 한국에서 인생의 전반기 54년을 보내고 뉴질랜드에서 후반기 54년을 살게 되었다. 한국 생활이 역동적이고 다양한 면도 있으나 머리가 복잡하고 신경 쓸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인생을 좀 더 단순하게,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생활을 창조하며 삶의 자유를 누리고 싶었던 동기가 작용했던 것 같다. 뉴질랜드에서 27년간 제2의 인생을 개척하는 동안 장성한 두 딸은 한국에서 결혼하여 출가하고 막내는 뉴질랜드에서 대학을 마치고 뉴질랜드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다시 뉴질랜드로 영구 귀국하여 살게 되었다. 진즉 외손자는 셋이 태어나 성장한 상태였으나 친 손이 없어 기다리다가 나이 80이 다되어 손녀를 안아보게 되었고 이어 손자도 예정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제 남은 인생계절 겨울 27년을 어떻게 설계해나갈까? 하는 구상을 할 차례이다. 흔히 환갑나이 60부터 또는 정년퇴직 나이 65세부터를 노년기로 치부한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즈음의 세태에서는 80세를 노인으로 보기도 껄끄러운 세상이다. 그리고 단순히 생년나이(Birth age)만 가지고 노인을 판가름하는 것도 모순이 많다. 생체나이(Biological age), 지적나이(Intellectual age), 감성나이(Emotional age), 사회적 나이(Social age)가 얼마냐의 판단에서 노년을 구분 할 필요가 있다. 노인이 되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건강과 경제적 자립이 필수이다.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경제 사정이라면 건강 유지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쓸데없는 욕심을 줄이고 명예나 권력에 초연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며 살아 갈 일이다. 손자, 손녀가 커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즐기는 가운데 그들이 20대가 되면 내 나이 100세에 진입하게 된다. 조용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유유자적하며 지내다가 목표로 한 108세가 되면 미련 없이 남은 일은 후세들에게 넘겨주고 떠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