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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르~~
유은이의 웃음소리가 우리 집 전체에 울려 펴졌다. 유은이는 둘째 딸이 작년 6월 말에 낳은 아기이다. 코비드가 잠시 종식이 되었을 시기에 태어난 덕분에 외할머니인 내가 4주 동안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둘째네 집에서 세 끼 밥 챙겨준 일밖에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근 한 달 동안 몸살을 앓았으니, 60 중반의 나이 탓을 해야 할지, 허약한 체력을 탓해야 할지.......
오클랜드에 다녀 온 이후로는 몸을 많이 사리는 편이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말씀하셨던 것들도 자주 생각이 나고, 몸들이 허약해서 산바라지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셨던 것들도 이해가 갔다.
유은이가 태어난 지도 벌써 6개월. 가끔 사진을 통해 영상을 통해 유은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아왔지만, 막상 유은이를 만나니 얼마나 반갑고 예쁜지 모른다.
파미의 썰렁한 공항에서 만났을 때, 보자마자 생글생글 웃던 유은이. 화상 채팅으로 몇 번 보았던 게 전부였는데도, 전혀 낯을 가리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방실방실 웃으면서 내 혼을 쏙 빼 놓았다.
오클랜드 공항에서는 많이 울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무서웠었나 보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야 안정이 되었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파미 공항이 편안하게 느껴졌었던 거 같다.
생각보다 아기의 짐이 많았다. 캡슐과 커다란 유모차까지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용품들을 다 가져왔다. 화물비용이 많이 들었겠다고 하니까, 아기 용품인 캡슐과 유모차는 무료화물이라고 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일주일 정도 지내기 위해 얼마 전부터 이것저것 준비해 놓은 게 많다. 중고로 아기 침대도 사 놓고, 아기 욕조와 분유도 사 두었다. 세 자매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알아서 한 일이다. 침대와 욕조는 필요 없어질 때 다시 팔면 되니까 공유의 세상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두 사람의 짐은 거의 없고 모든 짐들이 다 유은이의 짐들이었다. 유은이가 평소 편하게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을 유은이의 매트 위에 쫙 깔아 놓자 거실이 유은이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그 위에 눕자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면서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데, 그 모습을 보면서 아기가 참 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함께 있는 걸 알면 그냥 혼자 잘 논다고 했다. 같이 놀아 줄 때, 될 수 있으면 안지 말라고 했다. 유은이를 안지 않고도 함께 놀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유은이 혼자서 잘 놀 수 있도록 장난감을 이리저리 배치해주는 것부터 그 놀이가 싫증이 났을 때, 거울을 가지고 놀게 하는 방법,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교류를 하면서 노는 법...등 아기를 다루는 솜씨가 여사가 아니었다.
자신을 예뻐한다는 것을 아기가 아나 보다. 눈 맞춤을 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한테 말을 하고 있으면, 제법 옹알이도 잘한다.
내가 젊었을 때, 어른들이 하신 말들이 기억이 난다. 3살 전의 아기들은 세상일을 다 안다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내 눈을 바라볼 때, 유은이가 내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유은이가 가스히터를 만지려고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순간 난로의 먼지가 걱정이 되어 “더러워.”라고 유은이에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을 수도 있겠다. 그 순간 유은이가 울먹울먹 거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 둘째가 나한테 말하길, 아기에게 “안 돼”라는 의미의 말을 한 번도 건넨 적이 없단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라고.
내가 오클랜드에서 산바라지 할 때, 아기가 울어서 “우리 유은이를 누가 그랬어?” 라고 말하면서 달랬었다. 그때도 나한테 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에고. 휴.
유은이랑 놀 때도 유은이와 소통하는 놀이 위주로 했다. 유은이 혼자 노는 것도 좋아했다. 혼자 놀다가 안아달라고 양손을 올리면 그때 잠시 안아주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여간해서는 안아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가 아기의 생체리듬 시간을 일일이 핸드폰에 기록하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3월부터 다시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그때를 대비한 준비라고 했다.
아기가 새벽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난다. 그때 우유를 먹이고, 거실에서 아기가 노는 시간을 갖는다. 엄마가 일을 해도 옆에 있다는 걸 알면 혼자 잘 논다. 그러다가 졸려서 하품을 하는 걸 보면 다시 아기의 방에 있는 침대에 아기를 눕혀 두고 나온다.
생후 3개월 때부터 아기 방에서 따로 재웠기에 아기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인 거 같다. 유은이가 자고 나서 침대에서 혼자 15분 정도는 잘 논다. 그러다가 칭얼거리기 시작하면 아기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 함께 놀아 주던지 우유를 먹인다.
이렇게 하여 하루 평균 두세 번 낮잠을 자고, 네 번 우유를 먹는데, 마지막 우유를 오후 4시에서 4시 반 사이에 먹는다. 우유를 먹고 나서 조금 놀다가 목욕을 하고 아빠와 함께 동화책을 보고,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는데, 그 시간이 6시 정도이다.
보통 밤에 12시간을 자며, 14시간 공복으로 지낸다. 그런데 이렇게 키우고 있는 유은이가 무척 건강하고 단단하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왜 그런가 하고 유은이를 관찰하니까, 잠자는 시간 말고는 잠시도 가만히 있는 걸 보지 못했다.
캐런 애돌프 연구소장이 다년간 아기들을 관찰하며 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깊이 있게 연구했는데, 12~19개월의 아기들이 매시간 평균 2,400보를 걸으며 축구장 길이의 8배만큼 움직인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미국 성인의 평균 걸음 수보다 더 많은 수치라고 한다.
생후 6개월인 유은이는 얼마 전에 뒤집기 시작했고, 배밀이도 제대로 못하지만, 계속 온 손과 팔 다리를 움직이면서 장난감을 잡아 빨고 씹고 또 새로운 장난감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움직이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팔 다리를 움직일 때 배에도 힘이 많이 들어갈 것이다.
그 반복적인 운동이 근육을 키워주었는지, 살이 단단하며 힘도 세고, 정상적인 몸무게를 유지하면서 병치레도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다리 힘이 아주 좋긴 했다.
엄마가 놀아주는 방법 또한 참 적극적이었다. 유은이가 항상 덮고 깔고 하는 커다란 거즈 보자기도 유은이의 재미있는 놀이기구로 사용한다. 펄럭이는 천이 얼굴에 닿을 때의 감촉이라든지, 빨고 씹을 때의 색다른 느낌들을 체험하게 해주고 있다.
둘째가 재봉틀질을 할 줄 아는 나에게 일감을 들고 왔다. 여러 조각의 옷감들을 잘라서 한 무더기를 가져온 것이다. 크고 작은 몇 가지 색깔의 하늘하늘하고 반투명한 오간디 천들이었다. 올이 풀리지 않게 박아달라는 것이다.
대체 어디에 쓸려고 그러느냐고 했더니, 크리넥스 티슈 통에서 휴지를 뽑는 놀이를 하게 해 줄 것이며, 조금 더 크고 긴 조각들은 빨래대 위에 걸쳐 놓고 바람이 불 때마다 움직이는 걸 이용해서 놀게 해줄 거라고 한다. 보자기만한 것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 둘째는 유은이와 놀기를 무척 즐기는 거 같다. 사위 역시 마찬가지다. 유은이와 놀 때 보면 말투도 완전 옹알이 수준이며, 유은이 앞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도 너무 웃긴다. 동화책을 읽을 때도 얼마나 실감나게 재미있게 읽는지.
내가 지인 덕분에 유은이에게 꽂아 줄 예쁜 머리핀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연말의 감동적인 순간이었는데, 정작 둘째는 머리핀에 큰 감동이 없었다. “예쁘네.” 정도. 그저 신나게 뛰노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보다.
“그래, 삶은 놀이란다!
그런데 말이지, 호기심이 없는 놀이는 재미가 없단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까르르 웃을 수 있는 건 재미있기 때문이지.
평생 지금처럼 웃으면서 신나게 살아다오. 사랑한다.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