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송 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시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 송 수권
194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호는 평전(平田). 1975년 <산문(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문학사상』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남도의 서정(抒情)과 질긴 남성적 가락으로‘종래의 서정시가 생(生)의 에너지를 상실하게 하고, 자기 탐닉의 울음으로 떨어지는 한을 민족적·역사적 힘으로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송수권 시인은, 문공부예술상을 비롯해 금호문화예술상, 소월시문학상, 전라남도문화상, 김달진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님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시집으로 제1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1980. 문학사상), 제2시집 『꿈꾸는 섬』(1982. 문학과지성사), 제3시집 『아도』(1985. 창작과비평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동학서사집)』(1986. 나남), 제5시집 『우리들의 땅』(1988. 문학사상),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전원) 제7시집 『별밤지기』 (1992. 시와시학사),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1994. 문학사상),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1998. 시와시학사), 제10시집『파천무』(2001. 문학과경계사),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시학사) 제12시집 장편서서시 『달궁 아리랑』(2010. 종려나무), 제13시집 『하늘을 나는 자전거』, 제14집 『빨치산』 등이 있다.
그 밖에 시선집으로는 『지리산 뻐꾹새 』 『들꽃세상』 『별아래 잠든 시인』 『여승』 『한국 대표시인 101인 선집-송수권』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다시 산문(山門 )에 기대어』 『사랑이 커다랗게 날개를 접고』 『남도역사기행』 『아내의 맨발』 등과 비평집으로 『송수권 시 깊이 읽기』 『사랑의 몸시학』 『그대, 그리운 날의 시』 등, 그리고 장편동화집으로 『옹달샘 꽃누름』 등이 있다.
■ 오클랜드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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