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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무엇인가?
한창 방황하던 20대때 호주머니 쌈지돈 탈탈 털어서 나름 굳은 결심을 하고
샀던 스티븐호킹의 책 제목이다.
막상 책을 펼치고선 단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던 난해한 책이었다.
그러나 탐구심이 넘쳤던 그 당시 막연하게
여기가 당처라는 직관적 확신에 이끌려 책을 샀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확신은 유효하다.
내 스스로가 대견한 것은 그 질문의 끈을 놓지 않고 틈틈히 사유하고
귀동냥을 삼십년이상 지속해왔다는 사실이다.
결론을 낼것이란 기대는 처음부터 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너무 덩치가 큰 담론이라 직접대면 하기보다는
자연스런 인연속에서 증득되는 정보나 각성을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
그나마 잘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견해가 옳고 틀리고를 떠나서 나름 오랜 세월을 숙성시키다 보니
홍운탁월(洪雲托月) 체험의 행운을 맛본다.
시간이라는 담론을 건드리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단지 책을 통해서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수행을 통해 관조하고 체득한 지혜가
눈에 아른거리기에 이제 견해를 밖으로 드러내도 되겠다는 향심을 가져본다.
시간은 결국 인간의 인식에 의해 가상으로 꾸며진 환상이 아닌가?
인간문화의 중심은 시간성에 의해 언어를 타고 전개된 매트릭스의 세계와 같은지도 모른다.
아니! 말을 바꾸어 창조의 세계라 불러도 무방하다.
창조란 것이 새로 무엇을 만들어 낸다기 보다는
잠재되어있는 정보와 기억을 엮어서 다시 변형시키고 꾸며내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시간과 시간성은 다르다.
시간성은 현재 과거 미래의 구분이 명확하지가 않다.
시간성은 과거의 흔적이나 자취들이 재료가 되어 현재 부딪치는 인연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거나 아니면 과거의 일상적 루틴을 따라 재현되기도 한다.
또한 미래의 기대나 조건이 영향을 미쳐서 종합적으로 현재라는 인식의 결과를 이끌어 낸다.
시간이란! 시계의 바늘이 지나가면서 만들어내는 수학적 규칙이 아니며
어쩌면 하나의 사건속에 일어나는 종합적 해석이라 본다
시계라는 기계적 문명이 우리곁에 온것도 불과 2,3백년전 부터 였고
그 당시 시간도 각지방마다 다 달랐다.
정오 12시를 정하는 기준이 그 지역에서 해가 가장 높이 떠오르는 때를 기준으로 해서 정오로 삼았으니
서울 부산 대구 대전의 시간이 전부 따로 따로였던 셈이다.
시계초침의 움직임에 따라 정해지는 수학적인 시각은
시간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아니라 단지 시간을 공간화시킨 것이다.
즉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꾸며낸 것이다.
우리는 이런 가상의 시간을 / 공간화된 수학적시간이 reality 라고 믿고 산다.
시간에서 우리의 인식속에 가장 명확하게 포착되는 것은 과거다.
뇌의 공간에 기억으로 저장되고 개념이나 관념의 이미지로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반면 현재나 미래는 언어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우리의식으로 쫓아 갈 수가 없고 단지 추상적으로 가정할뿐이다.
과거의 기억이나 이미 저장되어있는 개념 이미지들이 언어를 통해 나타난다.
이때 과거는 연료가 되어 현재의 순간에서 만난 사건의 여러 조건과 인연들과
결합하고 연결되어 현재라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인식시켜준다.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사건의 종합이 바탕이 되어 아직 오지않은 시간에 대한 기대와 만나면서
미래라는 사태가 마치 실제로 벌어진듯이
우리 머리속에서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한 순수 현재/순수 미래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보인다.
현재나 미래에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시계처럼 과거 현재 미래는
수학적으로 따로 따로 분리될수 없고 서로 뒤섞여 있고
꽈배기처럼 배배 꼬여서 나선형으로 움직이고 흐르고 있다.
안쪽 바깥쪽이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인 상태가 꽈배기다.
시간도 역시 그렇게 우리에게 나타난다.
과거가 바탕이 되어 현재 미래를 만들어낼 때 각 개인의 정서 /감정 /지적능력 /의지가 다르게 작용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시간은 다 다르다.
현재 과거 미래는 우리의 삶속에서 사건으로 드러난다.
현재의 사건이 과거를 바꿀수도 있고 미래를 열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명상이나 수행처에서 흔히 말하는 NOW&HERE (지금여기)라는 말도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라!
이런 허접한 말이 아니다.
시간은 우리의 의식이 만든 환상이며 우리의 인식에 의해 압축되고 은유화되어 언어로 등장한다.
어찌보면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환상이다.
언어 또한 우리가 창조한 환상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정말 조심해야 한다.
사실 알맞은 단어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환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이것이 허망하다거나
제거해야 할 무엇으로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환상을 없애버리고 진짜 무엇을 찾아야한다 이런식으로 해석하면 정말 큰일난다.
나중에 지면을 통해 환상을 따로 정리해야겠지만 단지 부탁드리고 싶은것은 부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삶의 진솔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이해해주시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렇게 약속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간을 절대적으로 믿고
시간이 지시하는대로 나이를 말하고 연대를 얘기하면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시간에 맞춰 살려고 우리는 무척이나 애를 쓴다.
시간에 의해 삶은 질서를 세우고 공동체가 어우러져 살수있는 규범을 제공한다.
루틴의 반복과 평안함/ 안락함/ 예측가능함/ 약속
그리고 문명의 패러다임도 형성시켜낸다.
인간이 만들어낸 아주 유익하고 쓸만한 산물이다.
그러나 실제를 들여다보면 매트릭스아닌가?
태어나서 한번도 이런 구조의 사슬을 벗어난 적도 없고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으니
특별한 연유나 조건이 없이는 이런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익숙하게 룰에 복종하고 순응하고 살아가는 것이 무난한 일이다.
사실 몰라도 상관없다.
대부분 사람들이 시간을 오로지 수량적으로 분별하고 살아도 별 불편함이 없다.
예를들어 지구가 태양을 돌든지 태양이 지구를 돌든지 솔직히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안다고해서 취직이 되는것도 아니고 집값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 가끔 나같은 돈키호테들은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뜷고 들어가려고 몸부림친다.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수행을 하다보면 남의 말을 듣게 되는데 그 말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거의 마지막에 꽉 막히는 곳이 대부분 시간이다.
그래서 내 경우는 이 장벽을 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더 내딛지 못하는 외통수에 걸렸었다.
이제 나이가 들고 어느정도 어깨의 무거운 짐도 내려놓다보니 그 동안 쌓여있던 질문들이
하나 둘씩 내 곁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외면하고 싶지 않다.
밀어내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 내게 주어진듯 하다.
(시간에 관해 4,5회 연속해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 홍운탁월 : 동양화에서 달을 그릴때 직접 달을 동그랗게 그리지 않고
주변의 구름을 어둡게 채색하여 달의 모습을 그려내는 모습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기도하다
.
달의 테두리가 뚜렷하지 않고 비뚤하기도 하고 모호하지만
실제 달을 그린적은 없고 달은 본래
여백의 공간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허공을 그린 것이다
진공묘유를 그렸다
진흙속에 연꽃이 피고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
아니! 진흙이 없다면 연꽃은 피어날 수도 없고
중생이 보지 않는다면 부처란 의미도 사라진다.
백개의 선문답보다 탁월하다
홍운탁월에 대장경이 다들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