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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스님은 조계종단의 첫 사찰음식 명장이다. 스물다섯에 출가한 이래 40여 년을 사찰음식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올해 초까지 지난 3년 동안은 한식진흥원 이사장을 맡아 사찰음식을 넘어 한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스님이자 사찰음식 전문가인 그의 이사장직 취임은 당시 파격적인 인사로 큰 화제였다. 육류나 파·마늘·부추 같은 오신채를 쓰지 않는 사찰음식의 특성을 이유로 ‘한식이 편협해질 수 있다’며 그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선재스님은 취임 직후부터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특히 한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은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유래와 의미를 곁들이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큰 효과를 거두었다. 이를 통해 한식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국내·외에 새롭게 불러일으킨 점은 재임 중 그가 이룬 훌륭한 성과 중 하나다.
“저는 외할머니가 수라간 궁녀였고, 독실한 불자였어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해주신 궁중음식, 사찰음식, 일반식을 두루 먹으며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음식은 어느 하나 그냥 먹는 게 없어요. 예를 들어 경조사에 떡을 먹는 이유는, 쌀은 알알이 흩어지지만 이걸 빻아서 찌면 하나로 뭉쳐집니다. 화합의 의미가 담겨 있죠. 동짓날 먹는 팥죽은 몸의 냉기를 배출시키는 효과가 있어요. 나쁜 에너지를 빼냄으로써 면역력을 높여 겨울을 잘 나기 위한 것이었어요. 한식진흥원 이사장을 하는 동안 이 지혜로운 식문화를 널리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제철음식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가장 좋은 식재료
그는 이렇게 훌륭한 한식이 서양 음식에 밀려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사찰음식이 채식과 혼동해 쓰이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사찰음식은 단순한 채식이 아니다. 채식에 생명, 건강, 도(道)라는 개념이 추가된다. 몸도 건강하게 만들지만 마음의 평화를 주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선식(禪食)이라고도 한다. 무엇보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생명이 살기도, 죽기도 한다는 마음으로 좋은 식재료 선택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다.
“경전에 보면 음식은 곧 나를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신채인데, 그걸 익혀서 먹으면 음력(陰力)이 나고, 날로 먹으면 화가 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맑은 몸과 마음, 영혼을 가지려면 반드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는 “좋은 음식이란 자연에서 오고, 모든 생명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며 유기농 농산물을 예로 들었다. “우선 그걸 먹는 사람이 건강해지고,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노출되지 않으니 농사짓는 농부나 땅도 건강해진다”며, “물도 살고, 자연의 모든 생명이 함께 산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좋은 식재료를 선택하는 일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부처님께서는 좋은 식재료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음식이라고 하셨어요. 그게 바로 계절 음식입니다. 계절에 따라 병이 일어나니, 계절에 따라 음식을 먹으면 병을 예방할 수도, 치료할 수도 있다고 하셨죠. 제철 음식을 먹게 되면 하우스 재배 같은 것도 필요 없어지겠지요. 그러면 기후 변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요. 인류가 지금 코로나 같은 질병에 시달리는 것도 다 이런 순리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찰음식에 담긴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철학
흥미로운 것은 불경에 기록된 음식 관련 내용이 동의보감과도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이다. 동의보감 연구 논문을 쓴 한 학자가 선재스님 논문을 보고 유사한 부분이 많아 놀랐을 정도다. 그는 “동의보감의 저자이자 어의였던 허준 선생이 사찰을 다니며 스님들의 건강 비결과 먹는 음식을 연구했다고 한다”며, “동의보감에 보면 ‘석시께서 말씀하시되’라는 말로 시작되는 내용이 많은데, 그 석시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말했다.
“부처님은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의 질병을 어떻게 예방하고 치유할 것인지를 알고 계신 의사였어요. 그 근원이 자연이고, 자연의 모든 생명은 나와 같다, 그러니 그 생명들을 보호하고 배려하고, 그들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고 하셨지요. 자연이 행복한 재료를 쓰면 먹는 사람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이미 수 천 년 전에 말씀하셨어요.”
반면 음식은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음식들을 몸 안에 들일 때는 독성을 중화시켜 주어야 한다. 산나물을 삶거나 말려서 먹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독성이 제거된 나물은 된장이나 간장 같은 발효식품을 만나 몸을 이롭게 하는 약으로 거듭난다. 옛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영양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완벽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모든 음식은 약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지금 먹는 이 음식이 어떤 에너지를 주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만 해도 그 쌀을 하나 얻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이 88번 간다고 해요. 벼가 자라려면 땅도 있어야 하고, 물도 있어야 하고, 햇볕도 있어야 하지요. 내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기를 바랍니다.”
음식으로 건강 회복, 사찰음식 대중화에 나선 계기
1980년, 경기도 화성 신흥사에서 성일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그는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손맛 덕분에 일찌감치 사찰 음식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때 간경화로 급격히 쇠약해졌지만 음식을 통해 치유했다. 사찰음식의 약성을 몸소 체험한 그는 이후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사찰음식 대중화에 나섰다.
그동안 수천 회의 국내 강연을 비롯해 르 코르동 블뢰(Le Cordon Bleu) 같은 유명 요리학교에서 강의하며 사찰음식을 전했다. 외국 유명 요리사들도 그에게 요리를 배우기 위해 줄지어 찾아왔다. 한식진흥원 이사장직을 제안받았을 때, 오랜 고민 끝에 수락한 것도 건강한 우리 음식과 식문화를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 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몸과 마음에 반응이 옵니다. 아픈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면 제일 먼저 평소 즐겨 먹는 음식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해요. 대부분 육류 위주의 음식과 가공식품, 탄산음료, 그리고 남자들은 술을 많이 적어요. 맛으로는 짠맛, 매운맛 단맛이 많고요, 그걸 다시 보여주면 다들 멋쩍어합니다. 음식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 음식을 선택한 자신의 욕심과 게으름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음식은 곧 내가 살아온 모습입니다. 오늘 내가 먹는 음식이 내일의 나를 만들어요. 몸이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면 음식 일기를 한번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가 평소 즐겨 먹는 음식은 밥과 김치다. 그 외, 주로 머무는 경기도 양평 처소 주변에서 나는 것들로 그때그때 찬을 만든다. 맨드라미를 따 물김치를 담고, 산기슭을 따라 지천에 널린 칡순으로 김치를 만들고, 칡꽃으로는 차를 만든다. 깻잎처럼 생긴 보라색 자소로는 효소를 담근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어요. 요즘 아이들이 로즈마리·페퍼민트는 아는데 제피·산초는 모르잖아요. 그래서 장독대에서 발효되는 장도 같이 뜨고, 밭에서 상추도 따면서 우리 음식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 옆에서 음식 얘기를 많이 들은 덕분에, 음식 관련 이야기를 할 때면 지금도 그 기억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요. 바른 식습관, 건강한 식문화에 대한 인식은 어릴 때 심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기회가 되면 청소년 요리학교를 해보고 싶어요.”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