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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도 훌쩍 지나 벌써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나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한 해였는데, 그 중 가장 특별했던 일은 손녀를 본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세계가 어수선한 사이에도 나는 오클랜드를 방문할 수 있었고, 갓 태어난 유은이를 안아볼 수 있었다.
유은이와 함께 지낸 한 달은 꿈만 같았다. 배고플 때 말고는 거의 잠만 자던 유은이가 지금은 제법 옹알이도 잘하고 큰 소리로 웃기도 잘한다. 얼마 전부터 뒤집기 시작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나가고 있는 게 보인다.
올해 말이면 만 6개월이 되는 유은이. 내년 초사흘 날에 외갓집에 온다. 난 이미 자잘한 유은이 선물들을 장만해 두었다. 유은이가 있는 일주일 동안 우리 집은 웃음꽃이 활짝 필 것이다. 꽃 중의 꽃이 집안을 환하게 비춰줄 것이니까.
얼마 전에 나는 내 방 구조를 바꿨다. 거실을 내 방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우리 집 방들 중 내 방이 제일 크다. 예전과 달리 추위를 많이 타서 게러지에 놓고 쓰던 재봉틀을 내 방으로 옮겨 놓고 쓰는데, 이번에는 내 방을 아예 꽃꽂이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 겸용의 장소로 만들기로 했다.
가구들을 옮기면서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둘째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만들어 놓은 책갈피(북마크)가 나왔다. 네 잎 클로버를 책갈피 속에 넣어 말려서 초록색 색지에 붙이고, 파스텔을 이용해서 하얀 구름과 푸른 클로버 들판을 그려 놓았다.
동심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책갈피(북마크)를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장롱 속에 고이 누워 있던 네 잎 클로버가 짜잔 하고 나타났으니, 앞으로 행운은 늘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사실 요즘 나는 하루하루가 기적과도 같다.
며칠 전에 지하 주차장에서 주차를 잘못 시켜서 뺄 때 문제가 생겼다. 후진을 잘못한 것이다. 옆에 있는 기둥에 차가 붙을 지경이 되었는데,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지나가던 남자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차 옆을 완전 찌그러뜨렸을 것이다. 젊어서 운전 초반기 때 비슷한 일을 겪었었는데, 그때의 내 차의 옆구리는 완전 찌그러져서 볼 상 사납게 되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줄을 몰랐던 게 가장 큰 실수였다.
아차 하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서 일단 멈춘 것이 잘 한 일이다. 그렇게 멈추었으니 도와주는 사람도 나타나게 되고 그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우연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암 수술이 잘 되어 평소와 똑같이 생활할 수 있는 언니가 그만 일을 낸 것이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졸음운전으로 차 옆을 그어버린 것이다.
판화 찍는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오던 중에 일어난 일인데, 공사장 옆을 지나가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렸단다. ‘찌지직~’ 긁히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는데, 그땐 이미 늦어버린 것. 정신이 피곤한 몸을 모른 체 한 결과가 아닐는지.
카이로프렉터가 해 준 말이 생각이 난다. 정신이 몸 생각을 잘 안 해준다는 말이다. 뼈가 부셔져도 움직이라고 몸에게 명령을 하는 ‘정신’을 환자들을 통해 볼 수 있단다. 쉬어야지 낫는데, 쉬지 않고 계속 일해서 결국 몸을 완전히 망가지게 하는 정신을 보면 정신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쉬어야할 때 쉴 줄 알아야 한다고, 쉬라고 이런 일이 일어난 거 같다고 언니한테 말해주었다. 다행히 언니의 목소리는 밝았으며, 늘 그러듯 명랑한 웃음으로 끝을 맺었다.
오늘 언니와 또 카톡으로 대화를 나눴는데, 여전히 자신의 작업 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오늘의 성찰은 남의 생각이 내 생각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상대가 좋아할 줄 알고 베푼 일이 오히려 상대에게 부담을 준 것 같다고 하면서 상대가 요청하지도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했다. 나 또한 언니의 말에 크게 공감을 했다.
요즘엔 예전과 달리 나와 뜻이 맞고 생각이 같은 사람만을 만나면서 산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정신 건강상 좋고, 쓸데없는 일에 휘말려서 고민하는 일도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데 이왕이면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가야하지 않은가?
화살같이 빠르게 흘러간 2021년. 아니 화살보다 더 빠르게 흘러간 2021년. 이 한해가 나에게 준 행복은 지나간 시간에 비하여 무척 컸다. 한 것도 없는 데 이뤄진 것들이 많다. 좋은 인연들을 만났으며, 그 인연들마다 나에게 기쁨을 안겨줬다.
가장 큰 기쁨을 준 인연은 젊은 에너지들이었다. 그들의 에너지가 늘어지는 내 에너지를 일으켜 세워주었으며, 내가 하기 힘들어 하는 일을 도와주었으며, 삶에 대한 열정 또한 꺼지지 않게 해주었다.
내 꽃꽂이 작품 사진 중 하나로 홍보용 엽서를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물론 나와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하여 숍 스티커와 명함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엽서가 고급스럽고 예뻐서 받는 사람들마다 좋아했다.
내가 아끼는 한 친구에게도 그 엽서를 주었다. 그 친구의 남편은 하얀 액자를 사서 그 엽서를 끼워 넣고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남편이 그 액자를 귀하게 여기면서 액자 놓은 자리를 가장 아낀다고 하니,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
큰애가 제작한 도깨비 책 또한 언니와 나의 큰 기쁨이었다. 큰애가 전시회를 하고 나서 곧바로 제작에 들어가려 했었으나, 프린터 기계의 고장으로 제작이 늦어지고 있다. 그 책이 제작이 되는 즉시 한국과 미국 그리고 뉴질랜드에 있는 지인들한테 보낼 계획이다.
그 뿐만 아니라 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인테리어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젊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야 그저 함께 따라 다니면서 자재 사는 것부터 여러 가지를 보는 것이지만, 이 과정 자체가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셨다. 나 또한 죽음 직전에 엄마와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늦게나마 내가 하고 싶어 했었던 일들을 다 해보고 있으니, 여한이 남을 일이 어디 있겠는가.
2022년은 2021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상의 변화가 극심한 한해일 것이다. 코비드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다. 문을 닫는 소상인들도 많아질 것이고, 새로운 직업도 늘어날 것이다.
인터넷으로 게임과 애니 캐릭터 그림을 그려서 파는 막내만 봐도 새로운 시대의 직업으로 여겨진다. 그림 한 작품 당 적은 돈도 아니다. 이번에 그리는 그림은 미화 $200을 받는다고 하며, 인터넷으로 그림을 전송한다고 한다.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른 방법의 새로운 아트 판매 방법 같다.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막내를 보면서 곧 지금의 세계는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녀 유은이가 어른이 될 땐, 과연 어떤 세계가 되어 있을까? 화성에 도시를 건설할 수도.......
화살보다 더 빠르게 흘러간 2021년을 보면 그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