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은 <기생충>에 뒤이어 세계에다 “한국형 신자유주의”를 그 근거 자료로 삼는 또 하나의 화두를 던졌습니다. 물론 이 작품의 설정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한국적” 입니다. 사채놀이는 일찍부터 은행 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광범위한 한국 서민층의 무서운 현실이었고 동시에 한국 부유층의 주요 자본 축적 수단이었습니다. 지금도 연구자들이 한국에서 불법 금융 이용자/피해자 층을 약 50만 명 정도로, 그 시장 규모를 약 6조 정도로 각각 보고 있는데, 과거에는 그 비율이 더 컸으면 더 컸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어느 사회를 보나 배제를 당한 소수자층은 다 존재하지만, 역시 “불법 임금 체불을 당한 외국인 노동자”나 “사기를 당한 탈북자”, 그리고 “부당 해고를 당하고, 파업에 대한 살인 진압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무직자”라면 “한국적 설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국성”과 함께 뛰어난 “세계성”도 띠고 있습니다.
본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산자의 가장 큰, 그리고 최후의 “자산”이라면 결국 자신의 “몸”입니다. 특정 젠더와 연령대에 몰려 있는 “성매매”의 가능성만 이야기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예컨대 미국 하층에게 - 남녀 구분을 떠나서 - 드물게 아직 남아 있는 대학 진학과 신분 상승의 방법 하나는 바로 자신의 몸을 군에 팔아 “모병제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모병제 군인이 되면 이라크나 아프간 같은 곳에 파병돼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 자기 목숨도 내놓아야 하지만, 이 살인게임에서 운좋게 살아남아 돌아와 정상적인 제대를 하면 대학 등록금이라는 상금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본의 이해관계 입장에서 해외 침공이라는 살인게임 참가자들에게 이런 상금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이라크나 아프간 침공은 - 그 결과의 성패를 떠나서 - 그 만큼 미군 군수업자들에게 엄청난 득이 됐기 때문이죠. 자본의 이 이득 때문에 브롱크스의 가난한 흑인이나 히스패닉이나, 아팔라치안 지역의 지독하게 가난한 “백인 쓰레기”(white trash)나,어떻게든 미 국적을 빨리 따려는 LA의 한인 이민자들이 군에다 몸을 팔아 시키는 대로 누군가를 죽이면서 본인도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 경마장”이라는 <오징어게임>의 세팅과는 상당히 비슷한 논리입니다.
<오징어게임>에서 나온 살인 생존게임은, 국가의 고급 (살인 수준의) 폭력 독점이라는 근현대 국가 운영의 원칙을 위반하는 만큼 실제 존재할 리는 없습니다. 한데 저급, 즉 살인이 아닌 “치고받기” 수준의 폭력은, 스포츠나 흥행 등으로 포장되는 경우에는 꼭 다 국가에 의해서 독점된 게 아니니까 그 방면에서는 <오징어게임>과 엇비슷한 상황들을 실제로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종합 내지 이종 격투기는 그런 경우입니다. 부유층을 포함해서 많은 관객들이 링에서 선수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광경을 “즐겁게” 보고 있는데, 그 선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할 확률은 프로 복싱보다 2배, 태권도보다는 3배입니다. 여태까지 링에서 싸우다가 죽은 경우도 7명이나 됩니다. 큰 부상은 그렇다 치고, 작은 부상을 당하지 않는 선수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링에 오르는 이유는? 대부분 가난 때문이죠. 한편으로는 이 승부를 둘러싼 “내기”의 금액들은 엄청납니다. 사실 격투기라는 “흥행적 스포츠”의 논리를 한층 “업그레이드”해서 싸움을 ‘게임’으로, 그리고 KO나 부상 등을 살인으로 각각 바꾸면 대략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시나리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만이 “몸”을 파나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신체가 “거래상품”으로 되는 것은 일반적인 자본주의 논리인데다가, 최근에 실용적인 물화가 아닌 상징 상품의 거래가 IT기술의 발달로 “시장”의 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거래”가 더 활성화됐습니다. 예컨대 각종의 “뷰티 블로거”나 “패션 유투버”, “인스타 스타”들은 분명히 그 신체의 이미지를 IT 기술을 통해 대량으로 판매해 이윤을 취하는 셈입니다. 단, 모병제 군이나 격투기 시장에 몸을 팔아 죽음이나 부상의 가능성을 늘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대개 하층/빈민층 출신들이라면 SNS의 신체 이미지 시장을 보통 중산층 이상의 출신들이 주도합니다. 그리고 신체 내지 신체 이미지의 시장에서 가장 큰 득을 취하는 쪽은 물론 자본 내지 자본에 가까운 고소득 전문가 계층입니다. 예컨대 국내 성형 시장의 규모만 해도 약 5조원 정도나 돼, 불법 사채 시장의 규모와 엇비슷할 정도입니다. 성형 수술을 받고 나서 “외모”를 결혼 시장에서든 SNS의 이미지 시장에서든 거래 상품으로 삼아야 할 사람은 거래 실패나 스트레스, 트라우마 등으로 인생이 망가질 가능성은 상당하지만, 성형 외과 의사는 어차피 1년 평군 1억3천 정도 되는 그 고소득을 보장 받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 삶 전체가 정말 어떤, 아주 불공정한 “생존게임”인 셈이죠....
몸을 상품화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오징어게임>이 집중 조명하는 “승자독식”이라는 룰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작품을 생산해낸 영화계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관철됩니다. 인도, 프랑스 수준의 영화 대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직업적 영화 배우는 약 1천수백 명, 그리고 보조 출연자 (엑스트라)는 약 10만 명 정도 됩니다. <오징어게임>에서 우리가 본 대부분의 케릭터들도 사실 “보조 출연자”들입니다. 이런 분들의 평균 소득은? 1년 1천5백만원이며, 90%는 아예 1천만원도 벌지 못합니다. 일이 있을 때에 하루 15-18시간이라도, 촬영이 끝날 때까지 일해야 하지만요. 대부분이 저소득과 과로에 허덕이는 이 수만 명의 “인력”들은 한국 영화를 전세계가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산업으로 만듭니다. 그들 중에서는 “K- 스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전체 종사자의 0,1%도 안됩니다. 나머지는? 무명 배우, 내지 최하 소득 그룹에 속하는 “엑스트라”로 늙을 때까지 살고, 아마도 가난에 찌든 노후를 보내야 할 겁니다. 한국 영화인의 삶 자체도 이미 일종의 아주 잔혹한 “생존게임”이 아닌가요? 그러니까 <오징어게임>의 대부분 출연자들은, 결국 화면에서 본인들의 “실질적 삶”을 그려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위대한 작품이 나왔는지도 모르지만, 그 생각을 하면 왠지 너무나 슬퍼지기도 합니다....
* 출처 : 박노자 Vladimir Tikhonov 블로그
■ 박 노자
오슬로대학교수, 한국학자, 칼럼니스트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대학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당신들의 대한민국』 으로 주목받았으며,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전환의 시대』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