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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 상황이 길어지면서 많은 분들이 이해하듯이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고 우울증, 불면증, 공황발작같은 정신적인 이슈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코비드 전에 이미 그런 정신적인 어려움을 가졌던 분들은 그 증상들이 더 심해지기도 하여 둘 중의 한 사람은 심적인 불안과 염려로 인해 삶의 질이 현저히 낮아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 불화가 있던 가정, 실직이나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한 실망과 미래의 불확실성, 십대나 청년들의 방황과 중독, 경제적인 어려움등 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거나, 뉴스를 보면 살 만한 세상이라기 보다는 위험하고 불안전한 환경이고 어떤 더 한 일들이 일어날 까 두려워지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암울하고 부정적인 세상과 환경에 노출이 되어 영향을 받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스스로를 지배하여 자신을 하찮은 존재, 잘 하는 것도 없고 미래도 없는 못난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특히 요즘의 세상은 SNS를 통해 더욱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 쉽고 자신의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자들을 구경하기도 쉬워서 불만족과 원망 그리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고 살아가게 됩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외모조차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마스크를 쓰는 지금이 더 마음이 편하다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절벽 끝으로 몰아가는 것일 까요?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 일까요? 아마도 그런 영향들을 많이 받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감을 잃게 되었는 지 모릅니다. 세상이나 사람들은 약한 자들을 오래 참고 지켜보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자꾸 빨리 일어서라 하고 극복하라고 합니다. 심적으로 힘든 분들은 힘내라는 말 조차 듣기 어려울 정도로 에너지가 바닥나 있고 일어날 힘이 없는 데 계속 이겨내라고만 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고 그래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가 겠냐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들으면 더 실패자같고 못났고 살아서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쪽 상담소라는 필자가 애청하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불안한 상태를 호소할 때 그 문제의 근원이 부모때문인 경우가 많은 데, 그럴 때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에게 듣고 싶었던 얘기가 뭐냐고 물으면 “잘 했다” “수고했다” 라는 말이 라고 하며 우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참…. 그게 뭐라고 그런 말들을 자녀에게 해주지 않았을 까요? 채찍질? 더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그래서 더 강해졌을 까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 처럼 보여도 그 내면은 곪고 있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고통받고 스스로를 학대하며 끝없이 더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오늘 하루를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인생인가요?
내일을 위해 오늘 불행한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이 과연 내일을 위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나 자신에게 친절하고 관대하면 나약해져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담금질하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고 또한 효과적일 까요?
오늘 참으로 많은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그러한 세상과 나의 아픔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 살 때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냐고 물으면 많은 분들이 서럽게 웁니다. 그 의미는 나 스스로도 관대하지 못했고 친절하지 못했으며 자신을 늘 부족하다고 나무랬고 불만을 가졌으며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고 채찍질 당한 대로 자신에게도 똑같이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그렇게 대했을 때 어땠는지 물으면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은 자신 스스로를 아프게 했고 서럽고 슬프게 내버려두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뭘 하지 않아도 잘 하지 않아도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응원받고 격려받아 마땅한 것 아닌지…자신의 존재는 소중하고 그 존재만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는 것인데 뭘 더 잘해내야 더 가진것이 있어야 나를 인정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만큼이어야 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데 더 가진다고 만족할 수 있을 지… 만족은 스스로가 가지는 나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환경이나 외부에서 그리고 사람들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모두가 잘 알 듯이 물이 반컵이 있을 때 물이 반컵이나 있다고 보는 눈과 물이 반컵밖에 없다고 보는 마음이 존재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기본이 아닐 까요. 이 어려운 때에 스스로에게 친절한 우리가 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