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휴대전화에게 이별을 고하며....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예약이 가능한 낙산사 템플스테이는 여정 하루 전 한 통의 문자를 발송한다. 코로나19 시대에 부합한 당부와 도착 시간, 찾아오시는 길, 준비물 등 빼곡하게 채운 글이 상소문처럼 길기도 하다. 예약할 때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문구들이 돌연 생명력을 얻는다. “휴대폰 사용불가”라니!
소셜 미디어가 판치는 요즘, 낙산사는 휴대전화를 절에 맡기라 한다. 인스타그램도 틱톡도 낙산사에서 실시간 공유는 가당치 않다. 휴대전화를 쓸 수 없으니 카메라와 손목시계는 필수로 챙기라 권유한다. 낙산사를 찾는 모든 이가 고대하는 일출의 장관을 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준비물이겠다. 불편하다.
석연찮은 불만은 템플스테이 전용 공간인 취숙헌에 도착해 곧 설렘으로 바뀐다. 오봉산이 품어낸 낙산사는 하늘과 바다를 향해 열린 덕에 묵은 감정을 숨길 곳이 없다. 창 너머 넘실대는 바다는 시원하고 유쾌하다. 창문의 절반을 하늘과 나눠 가진 바다의 수평선이 마치 내가 바다에 안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곳이라면 하루쯤 휴대전화에 이별을 고해도 좋겠다.
자연이 품어낸 취숙헌의 빼어난 입지
참가자는 오후 2시까지 템플스테이체험관에 도착해야 한다. 길에 제대로 들었다면 낙산사 정문 주차장 앞 일주문을 거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만났을 테다. 무심코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운전하다 호텔 옆 주차장에 당도하면 먼길을 돌아 미리 사찰을 탐방하는 낭패를 겪을 수 있으니, 안내문자를 숙지해 반드시 정문 주차장을 이용하자.
오후 2시 30분부터 낙산사는 참가자 전원에게 템플스테이 체험에 유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안내한다. 늦지 말아야 할 이유다. 휴대전화를 쓸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한 비상전화 이용법, 절에서의 예절, 참가자가 머물 시설들의 동선과 이용방법 등……. 낙산사 템플스테이 운영진은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숙소의 빼어난 입지에도 불구하고 취숙헌에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린 방이 적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해야 한다. 바로 지척에 위치하고 정갈하고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으니 걱정은 동여매자. 식사장소인 선열당은 취숙헌 코앞이다. 숙소에서 원통보전까지 300미터 남짓이라 동선은 간결하지만, 곳곳에 비경이 많아 정취에 빠져 걷다 보면 삽시간에 뉘엿뉘엿 떨어지는 해를 발견할 정도다.
희망의 파랑새
낙산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음도량 중 하나다. 당의 침략을 힘겹게 막아냈던 신라는 잦은 전쟁으로 고통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곳을 마련했다. 고통받는 온 중생을 해탈로 이끌겠다는 관음보살의 서원이야말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에 구원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는 파랑새에 이끌려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의상(義湘)대사가 낙연둣빛 댕기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댕기마다 몸을 까부는 게 자기 좀 봐달라는 듯하다. 건강, 행복, 금전운, 코로나19 극복……. 낙산사를 방문하는 이 저마다 소원 하나씩 꺼내어 매단 듯하다. 어느 소원이라고 절박하지 않은 게 있겠나? 절망의 시대에 희망은 풍년이었다.
산사를 창건했다는 설화로 이어진다. 선조들 역시 홍련암의 관음굴에서 기도하면 파랑새가 나타난다 믿었다. 삶의 파고에서 구원이 되는 곳, 다름 아닌 ‘희망’을 상징하는 낙산사의 역사성 때문이리라.
누구나 고대하는 일출 명소는?
4년차에 접어든 낙산사 템플스테이 운영자 이혜원 팀장은 일출 명소로 해수관음상, 홍련암, 의상대를 모두 꼽았다. 모든 장소가 훌륭하지만 저마다 개성이 넘치는 풍경을 보여준다며, 음력 15일인 보름에서 하현으로 이어지는 3일간 동해에는 또 다른 길, 달길이 열린다고 귀띔한다. 낙산방파제 쪽에서 솟아오른 둥근 달이 수면 위로 은빛을 뿌리며 의상대로 이어지는 달길은 일출의 웅장함과는 다른 포근함이 있다며, 오로지 템플스테이 참가자만 체험할 수 있는 비경이라며 추천했다.
일출을 한 번쯤 경험한 사람이라면 끓어 넘칠 것같이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던 붉은 태양을 기억할 것이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이 뇌리에 박히듯, 낙산사의 일출은 그리고 월출은‘내 인생에서 손꼽는 순간’이 된다. 휴대전화가 없어도, 실시간 공유를 못 해도 맨몸으로 맞이하는 격정의 순간은 오히려 자연을 겸허하게 대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연을 대하는 격이랄까? 낙산사 템플스테이는 일출과 월출의 순간에도 내게 집중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격을 갖추게 한다.
희망의 안식처, 낙산사 템플스테이
몽골의 침입으로 폐허가 됐던 낙산사는 조선초 재건됐다가 외세의 침입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2005년 화마로 대부분의 전각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국민의 성원과 관심 속에 2013년 복원을 완료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에 낙산사는 국민에게 보답하고자 2018년부터 템플스테이 참가비를 낮춰 절의 문턱을 낮췄다. 더 많은 이를 품어내려는 낙산사의 진심이 관세음보살의 발원과 뭬가 다를까.
창건 이래 반복된 국난과 화마를 거치면서도 낙산사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낙산사는 그런 곳이다. 부침을 딛고 매번 보란 듯 재기하는, 오늘의 국난도 결국 비켜 가리라 위안을 주는 곳. 해와 달을 가깝게 만나는 곳, 희망의 파랑새가 사는 곳이다.
■ 낙산사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033-672-2417ㅣwww.naksansa.or.kr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