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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이 용담을 만나러 가다가 어느 노파를 만나 점심을 청한다.
덕산: 허기를 달래려 점심을 청하려 합니다.
노파 : 무슨일로 깊은 산중을 다니시는가?
덕산 : 용담선사를 보려고 여기까지 왔소.
노파: 보아하니 스님인듯 한데 등에 지고.있는 자루속에 무엇이 들었소?
덕산: 금강경입니다 (당시 덕산은 금강제일승으로 유명했다)
노파: 그러면 스님은 과거심(心) 현재심 미래심 중에서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시려오!
덕산: 말문이 막혀 그냥 발길을 돌린다.
덕산의 금강경에 대한 높은 자부심이 노파의 일갈에 확 무너져 버렸다.
이 대화는 수행처에서 널리 회자되는 덕산과 노파의 선문답이다.
절 집안에서는 보살(여자신도)들이나 처사(남자신도) 들이 수행자들에게 던진 한 마디가 깨달음을 일으킨 경우가 다반사다.
點心(점심) 은 lunch로 이해하면 밋밋하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의미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간단한 식사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본래 뜻은 마음에 점을 하나 놓는다는 선문답이다.
우리 주위에 평이하게 사용하는 말들 중에는 본래 뜻을 잃어버리고 의미가 전승된 경우가 많다.
마음이라는 것이 알기 어렵고 “점” 이라는 말도 간단치가 않다.
팔만대장경을 똘똘 뭉쳐서 한 마디로 이르면 마음심(心) !
그러니 내가 마음을 설명을 한다는것은 이미 어긋나는 짓이다.
점(點)은 딱 떨어지게 말하기 힘들다.
수학에서 점은 부피도 없고 크기도 없다.
그러나 없는것도 아니라 한다.
무슨 말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단 말인가?
언어 도단이고 불립문자이다.
수학은 그 출발부터 언어를 벗어나 있다.
점(點)은 유한한가? 무한한것인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점은 부분이 없다.
그래서 점은 전체이다.
전체라는 정의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 .
더이상 쪼개지지 않는 것이다.
분별이 통하지 않는다.
(인연이 닿는 분들은 여기서 작은 소식이라도 만날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수학은 좀 깊이 들어가보면 그 출발이 화두공안이고 선문답이다.
마음에 점을 놓는다는것은 무슨의미인가?
화두(話頭) 공안이다.
참선이나 명상을 통해 활구 의심으로 풀어야 할 열매다.
꽃을 피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매일 점심을 먹는다.
동시에 스스로 내 마음을 한번 들여다 볼 순간이기도 하다..
“강북에는 탱자가 되고
강남에는 귤이 되지만
봄이 오면 똑 같이 꽃을 피운다.”
초기 한국기독교의 거목으로 회자되는 다석 유영모선생은 한글에 대한 사랑이 깊어셨다.
노자 도덕경도 “길 과 얻음” 이라는 제목으로 유려하고 쉬운 한글로 풀어놓으셨다.
그의 해석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한 문구가 “오늘” 에 대한 뜻 풀이다.
간단하다 .
오~늘 이라고 말한다.
간단하지만 되새김질 할수록 감칠맛이 우려나오는 탁견이라 본다.
나의 경우 오늘에 대한 이해는 근기에 따라 계속 바뀌어간다.
최근에는 시간에 대한 전반적 통찰이 이 한마디에 다 들어있다.
덕산과 노파의 대화속에서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어디에 점을 둘것인가?
우리는 시계를 보고 그것이 진짜 시간인줄 착각한다.
시계는 산업혁명이후 나타난 기계이고 눈으로 보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시간을 공간화시킨다.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는데 따라 눈이 쫓아가고
그 인식의 결과로 인해 시간을 실제로 있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게하고 인식의 공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시계다.
시계는 시간이 아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려 붙잡을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볼수가 없고
현재는 그 사이에 끼어서 틈이 없다.
자! 어디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가?
우리의 기억/ 감정 /생각속에 들어있는가?
그것이 번뇌 망상의 시작이다.
오~늘은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태어남과 죽음을 한번 돌아볼 절호의 찬스를 포착할 수도 있다.
오늘을 영어로 옮기면 NOW&HERE 이 적절한 표현이다.
나의 필명 여실지가 도달하려는 당처도 오~늘 이다.
망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출수있는 텅빈 곳을 늘~~~오(悟 깨달을오)
자! 그렇다면 덕산은 노파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한마디 일러야 하는가?
덕산이 육안(肉眼)으로 점심을 청했다
노파가 혜안(慧眼)으로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을 물었다.
그러면 덕산은 마음의 눈을 뜨고 답을 해야한다.
어떻게 이르겠는가?
정해진 답은 없다.
육안의 답도 있고 혜안의 답/ 법안/ 심안의 답도 있다.
각자 근기에 따라 인연따라 한마디 일러보시라!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어느곳에 점을 둘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