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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문명은 강에서 시작됐다. 세계의 4대 문명 발상지도 강이다. 풍부한 물과 너르고 기름진 땅은 먹고 사는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울산의 태화강은 가지산과 백운산 등지에서 흘러드는 50여개의 지류가 이룬 50Km가 안 되는 짧고 작은 강이다. 반구대, 사연댐을 거쳐 바로 태화루를 돌아 울산만에서 동해로 들어간다. 울산만은 울산항, 방어진, 장생포 등의 어항이 있다. 한때 고래잡이로 이름났던 곳이다. 공업화의 물결에 폐수로 죽은 강이 되었다 해서 백년하청(百年河淸)일거라 생각했는데 헤엄치다 마셔도 될 물이라 하니 요술방망이라도 있나보다. 치산치수에 요산요수란 말이 있다. 산도 물도 다 좋다. 강변에 십리대숲이 잘 가꾸어져 명소가 되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국가정원인 줄은 몰랐다. 무심타가 ‘태화강 국가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주제별로 꾸민 공원이 수두룩하다. 대단하다. 잘 가꾸었다. 국가정원은 우리나라에 딱 2개뿐이다.
미시시피 강의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뉴올리안즈에는 밤이면 유람선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올라갔다 온다. 선실 너른 무대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두고 나는 갑판에서 흑인 영가를 닮은 째즈 음악을 흘려들으며 옛 생각에 잠긴다. 초등학교 때 책에 나온 링컨 대통령의 이야기다. 켄터키주의 어느 산골 통나무집에 살았고 가난했던 그는 10리 길을 마다않고 책을 빌려와 읽었다. 1800년대에 이 강에서 발목에 쇠고랑을 찬 흑인 노예들이 채찍을 맞으며 가족들과도 헤어져 물건처럼 팔려나갔고 이를 보고 큰 결심을 한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 결국에 노예를 해방시켰다는 그 장소에 와 있다는 감격이었다. 산골 소년인 나는 지리부도에서 태평양 건너 미국 땅의 미시시피 강을 찾아 미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며, 상류의 미주리 강을 포함하면 길이 6,270㎞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라는 것도 외고 있었다. 언젠가는 가 볼 것이라던 그 곳에 내가 밤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거의 200년쯤 전의 현장, 그 미시시피 강은 도도히 흘렀다. 누가 유람선을 생각했을까? 그런데 째즈에 몸을 흔들고만 있는 사람들은 그게 유람이고 힐링이 될는지.....
오래전에 파리의 센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즐겼다. 감격했다. 에펠탑을 멀찍이서 보고 퐁 네프 다리를 지나간 것 같다. 이튿날 낮에 본 그 강은 화려한 댄서의 생얼 같다. 환경예술가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부부는 1985년 퐁네프(Pont Neuf) 다리를 금빛의 사암색 천으로 감쌌다. 나는 아까워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했다. 센 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퐁네프는 이로서 명품중의 명품이 되었다. 그 뒤 영화‘퐁네프의 연인들’도 거들었고.....
가까이에, 진주 남강을 보면 진양호와 촉석루, 그 아래 의암바위에 의기 논개가 왜장과 빠져죽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뿐이었는데 지금은 유등축제로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다. 형형색색의 휘황찬란한 만국등(萬國燈)을 유람선으로 투어 하는 세계 여행이 일품이다. 마침 세계 정원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자연주의 정원의 대가, 네덜란드 출신의 아우돌프가 아시아에서는 첫 작업으로 태화강의 국가정원을 선택했다는데 어떻게 격을 높여줄지 궁금하다. 볼거리, 즐길 거리, 먹거리, 일거리가 다 필요하다.
좋은 공원과 관광지에 외국이나 타지의 관광객을 불러들여 수입이 느는 것도 좋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즐기고 건강해져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값진 일이다. 태화강 국가정원에 맨발로 걷는 길이 많으면 좋겠다. 주차장은 멀리 두고 전기차로 순환하면 좋겠다. 나루터나 다리 밑으로 출렁다리를 만들어 물에 발목을 담그고 찰방찰방 시원하게 걸으면 어떨까? 겨울에는 1미터쯤 높이면 신발이 젖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정작, 반구대의 암각화에도 있는 고래가 그 아래, 태화강에는 없다. 태화루 앞 너른 강에 유람선이나 보트를 띄우고 인공으로 만든 돌고래 떼가 부침하며 유영하는 모습은 어떨까? 유람선에서 만져볼 수 있도록 애교를 부리는 돌고래들은 명품이 될 것이다. 또 다른 기발한 즐길 거리는 없는 걸까?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강이 아닌 땅에서도 돈을 걷는다. 스토리의 힘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트레져 아일랜드(보물섬) 호텔 앞에는 어둠이 내리면 해적선이 출몰한다. 언덕위의 감시병은 해적선이 나타났다고 외치고 봉수대에 연기가 오른다. 곧 대포가 귀청을 울리며 불을 뿜는다. 작은 연못에서지만 해적선에서도 요란한 공격을 한다. 열기가 확확 닿는다. 마침내 격침되는 해적선엔 해적들이 그대로 수장된다. 통쾌해서 박수를 치고 떠나려는데 그 배와 선원들이 부상(浮上)한다. 그동안 어찌 숨을 참았을까? 침몰한 해적선은 어찌 복구되고? 태화강의 국가정원은 주거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 교통이 편리하다. 강, 바다, 산에서 가장 가까운 정원으로 바람직한 정원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몰랐다. 여유롭게 즐기려면 울산으로 이사를 갈까 싶다. 사정이 안 되면 울산에‘한 달 살기’라도 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