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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가지고 오세요."
통도사 템플스테이 담당자인 이정민 주임은 템플스테이 예약자에게 대뜸 자차 운행 여부를 묻는다. “차를 가져오시나요?”로 시작하는 질문은 통도사에서 하룻밤 묵기로 맘먹은 사람에게 잠시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열정이 넘치는 말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전화기 너머 수신자의 표정이 자못 궁금하다.
불지종가 국지대찰(佛之宗家 國之大刹) 통도사는 천년고찰이자 한국불교 삼보(三寶)사찰 중 불보(佛寶)사찰이다. 그럼에도 대웅전에는 정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다. 대신 불단 너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어 거룩함과 장엄함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영축산에 자리하며 17개의 암자를 품고 있는 규모도 남다르다. 2018년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문화재에 등재되었고,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통도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큰절’로 격을 갖췄다. 산문 밖 1㎞ 남짓 안 되는 거리에 절 이름을 딴 고속도로 요금소가 있을 정도이니 더 이상의 부연은 구차하다.
국제템플스테이관, 전문화된 독립 공간
통도사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국제템플스테이관을 시작으로 템플스테이 체험관, 전통제다체험관을 순차대로 건립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설법전 지하의 시설이 오래되고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 아래 너른 장을 열어젖힌 것이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라고 밝히면 무사 통과되는 산문을 지나, 가로등에 걸린 템플스테이 현수막을 따라 제1주차장부터 제4주차장까지 지나치면 수도암에 못 미쳐 국제템플스테이관 입구에 닿는다. 입구 오른쪽 석주에 한글로 또렷하게 ‘국제템플스테이관’이라 쓰여 있다. 얕은 언덕 길을 천천히 차로 달리자 오른편에 정연하게 열을 지은 차밭이 보이고 이내 국제템플스테이관이 위용을 드러낸다.
숙박동은 세심당과 동당, 서당 세 채의 전각으로 이뤄졌다. 세심당은 단체 참가자 40명이 동시에 머물 수 있는 규모고, 동당과 서당은 각 다섯 칸의 방을 갖춰 2인 참가자 열 팀을 수용할 수 있다. 방마다 사리불, 아난다, 라훌라 등 부처님의 10대 제자 이름을 붙였다. 어느 방이든 작은 냉장고와 서랍장, 생수와 전기포트가 놓여있고, 벽장 문을 열면 침구가, 그 옆으로 낸 문 뒤로 화장실이 보인다. 통도사 경내에서 멀리 떨어져 관광객도 발을 딛지 않는 곳이니 잠시 속세를 잊고 재충전하기에 충분히 정갈한 공간이다. 며칠 묵다 보면 부처님의 열한 번째 제자로 거듭날지도 모를 일이다.
정중동(靜中動) 또는 동중정(動中靜), 그 무엇 하나 기대 이상의 체험
창호문을 열고 방바닥에 앉거나, 처마 밑 툇마루에 앉으면 정중동의 일상을 만끽할 수 있다. 드문드문 왕래하는 스님과 사람들, 느닷없이 날아든 산새가 하릴없이 흙바닥을 쪼는 장면까지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맑게 갠 날 밤이면 하늘 가득 떠오른 별 무리를 감상할 수 있다. 징검돌로 길을 낸 십자로 위를 뒷짐지고 걷다 보면 어전(御殿)의 임금조차 부럽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익숙하지 않은 정적에 무료함을 느낀다면 암자순례를 추천한다. “자동차를 가져오시라.”는 담당자의 조언은 느린 사찰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국제템플스테이관을 중심으로 팔방으로 펼쳐진 17개의 암자를 도보로 순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자동차를 이용해 십육만 도자대장경을 모신 서운암이든, 울창한 솔밭을 지나 당도하는 극락암이든 부근의 암자를 탐방하다 보면 어느새 1박 2일이 너무 짧다는 허망함에 내일 닥칠 하산 일정을 미뤄 볼 심산이 발동할 테다. 통도사 템플스테이는 자동차를 활용해 동중정의 체험까지 가능한 국내 유일무이의 사찰이다.
내일을 기대하는 곳, 통도사
차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통도사라 역사와 문화 기행을 원하는 이라면 설법전 지하의 시설을 이용해볼 만도 하다. 금강계단을 비롯해 국내 최고 수준의 성보박물관 등 문화재에 대한 접근성은 이곳이 더 훌륭하다. 게다가 차량 진입이 제한되는 무풍한송길(舞風寒松路)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올해 가장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만큼 경관이 빼어나 휘이 걷는 것도 좋다. 다리가 저릴 때쯤 소나무와 어우러진 찻집 송수정(送愁亭)에 이르러 차 한 잔 마시면서 흘러가는 물과 함께 근심도 흘려보내면 좋으리라.
이래저래 통도사 템플스테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큰절로, 산이 절이고 절이 곧 템플스테이인 곳이다. 할 일, 볼 것이 태산이라 빠듯한 하루를 마감하고 자리에 누워 어서 날이 밝기를 고대할지도 모르는……, 아니, 반드시 내일을 고대하게 될 ‘인생사찰’이다.
■ 통도사
경상남도 양상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055-384-7085
tongdosa.or.kr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