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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능 문화에 대한 글을 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거 같은데 올해 수능이 이제 90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말 세월이 쏜살같이 흐른다. 코로나19에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지 벌써 2년,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가고 싶은 곳에도 못 가고 있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은 참 잘도 간다.
고3 아들, 딸은 둔 어머니들의 100일 기도가 곳곳에서 시작됐고, 대학 입학 결과를 묻기 위해 점집을 찾는 어머니들의 행렬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초조해하는 것은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각종 커뮤니티에 수능의 압박감을 호소하고,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괜찮은 모의고사 추천을 부탁한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생들은 중압감에 수업 중에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그런 학생들의 어머니들을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그중 하나는, ‘대한민국 학생들 참 불쌍하다.’라는 생각이다.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오면 전혀 쓸 일이 없어지는 사회탐구, 과학탐구, 한국사, 수학 등을 위해 밤새 공부한다. 10년 넘도록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함수나, 방정식 따위의 수학이 내 업무에 도움이 된 적은 없었다.
사실, 난 수학을 배워본 적도 없다. 한국과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수학이 필수 과목이 아니었다. 꼭 수학을 수강하지 않아도 회계, 경제 등 대체 과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은 필수 과목의 수가 너무 많고, 수년에 걸쳐 쌓은 자신의 실력을 수능 당일 단 하루에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이 너무 잔인하다. 그래서일까. 수능 시험이 끝나면 어김없이 수험생들의 자살 소식이 뉴스를 통해 들려온다.
더 슬픈 현실은 수능이 그들이 치르는 마지막 시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을 나와도 현재 대한민국은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어서 취업이 쉽지 않다. 취업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학생들은 곧장 노량진 고시촌으로 내몰린다. 그들은 그곳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운과 실력이 좋아 입사를 한다 해도 매년 승진을 위해 승진시험을 봐야 하고, 승진시험 시 가산점을 받기 위해 토익시험에 따로 응시해야 한다. 어쩌면 수능은 학창 시절의 마지막 시험이 아니라 20살 후에 있을 끝없는 시험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관문을 거쳐야 하는 자식들을 옆에서 바라보는 부모님의 속도 말이 아니다. 수능을 치르기 위해 전과목 과외를 붙여주고, 그 후에는 또 취업과외, 공무원 학원 수강비 등을 지원해주시느라 자신들의 노후 준비는 뒷전이 돼버린다.
이런 비정상적인 한국의 입시 과열이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 앞에서 우는 학생들에게 나는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다만 그들이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무조건 그들에게 맞장구쳐주며 공감해주는 게 전부다.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나 역시도 겪어 보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고, 나중에는 추억이자 에피소드가 된다. 결과에 연연해하지 말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된거다.”
이런 말을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 길은 참 씁쓸하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부담감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난 한국의 입시를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능을 치러보지 않은 난 그저 속으로 그들에게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