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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무인
1차 백신 주사를 며칠 전에 맞았는데 이게 생각보다 후유증이 있다. 콧물에 몸살 증세도 수반되어 sick leave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다. 쉬면서 휴일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러했듯이 영상물을 찾아 보았는데 이번에 본 것은 한국 KBS 전주 방송국에서 제작한 백투더뮤직이란 프로그램이었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연상할 수 있듯이 과거 한때 유명했던 대중가요 가수를 찾아 그들의 근황과 더불어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히트 가요 및 최근 발표곡도 같이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나오는 출연자들이 대부분 5,60대라 내가 이민 오기 전에도 유명했던 사람들도 많아 추억 여행 겸 그리고 동년배에 해당하는 이들은 과연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는지 궁금해서 몇 편을 보았다. 그중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가수는 최성수였다. 1960년생이고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가 1980년대 후반이라 나 역시 적지 않게 그의 노래를 알고 있고 또 당시에는 카세트테이프도 사서 들었을 정도로 좋아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가 이 프로를 통해 자신의 최근 곡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밴드와 함께 기타 리프로 시작하면서 자막으로 소개된 그의 새 노래 - 사실 2017년에 발표했다 - 제목을 보는 순간 뭔가 내 가슴을 콕 찌르듯 다가오는 시적 제목이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아닌 게 아니라 시다. 노래를 위해 만들어진 가사가 아니라 시에 멜로디를 얹힌 것이다. 시인은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이다. 시인이 이 시를 만든 것은 1993년, 시인이 45세 때였고 가수 최성수가 이 노래를 만들었던 것은 2017년,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이런 시를 45세에 지은 시인의 감수성도 부럽지만 57세에 그 시의 감성을 또 공감해서 노래로 옮긴 가수는 부러움 차원을 넘어선 울림을 나에게 주는 듯하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 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1993년)
달빛이 교교한 시골의 어느 봄밤에 강변 제방을 홀로 걸으며, 눈물짓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봄밤의 정취를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간절함을 이기지 못해 용기를 내어 전화한 사람 그리고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의 세상을 얻은 듯한 희열이 느껴지는 시다. 이 시는 평생 읽은 시가 몇 편 되지 않는 - 그것도 대부분 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 나이지만 중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접하고 시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아래 시를 떠올리게 한다. 1924년생이니 시인이 31살 때 만든 시다.
▲ 이 수복 시인
봄비
이 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1955년)
시인 이수복, 시인 김용택 그리고 가수 최성수는 각각 30대, 40대 그리고 50대에 자신들만의 감성과 형식으로 봄비와 봄밤의 정서를 그려내었다. 이들로부터 어떤 물리적 나이 냄새도 차이도 느낄 수 없다.
노래를 만들 당시 나이 60에 가까운 최성수는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이런 시구에 감동을 하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또 사람을 둘러싼 자연에 설렘을 가지는 것이‘물리적’청춘의 전유물이 아님을 이들 시인과 가수는 보여 준다. 가수 최성수는 자신이 20대의 감성으로 작사 작곡한 노래들(남남, 동행, 애수, 풀잎 사랑 등)을 대중의 추억 호출용으로 다시 부르는 것에 멈추지 않고, 57세 최성수의 감성을 노래하기 위해 저 노래를 만든 것이다. 참으로 순수한 감성 아닌가? 물리적 나이로 보면 할아버지일 수 있지만 저런 설렘을 본인이 여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5,60대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설레임’은 우리가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도, 온 얼굴에 자글자글 주름이 져도, 돋보기 아니면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해도 육체적 건강과 더불어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할 때까지 간직하고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 감성적 건강이 아닐까?
■ 김무인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사회 초년생활을 한 후 뉴질랜드로 이민 왔다. 새계화의 조류 속에서 다인종 다문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에 관심이 많고 더불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팽개쳐진 사회적 가치의 부활을 위해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탐구 할 요량으로 글쓰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