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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집에 와보니, 그동안 우리 집 텃밭의 채소들은 쑥쑥 많이도 자라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잘 보살펴 준 흔적이 그대로 보여 기분이 좋았다.
거실에 있는 양란도 꽃 몽우리 들을 조랑조랑 많이도 맺었으며, 곁가지까지 올라와 있었다. 모두들 경쟁이라도 하듯 쑥쑥 성장하고 있었다.
오클랜드에 있는 유은이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듯이 이 녀석들 또한 잠시도 쉬지 않고 성장한 흔적이 역력하다.
요즘 나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유은이의 사진을 보는 재미와 더불어 우리 집 텃밭의 채소들을 키워먹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다. 이런 행복이 나에게 올 줄이야.......
내가 나가는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는 스튜디오 이름을 『Re-Story Studio』라고 지었다. 그녀의 철학이 그대로 들어나는 멋진 이름이었다. ‘re-’는 ‘다시’ 라는 뜻으로 지혜롭게 현대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스토리를 만들어 준다.
re가 들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 봤다.
remake, reform, recycle, restore란 단어들은 다시 만들며, 개편을 하며, 재활용하고, 복원을 하는 것으로, 환경오염의 큰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에 속한다.
『Re-Story Studio』가 탄생하기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을 소요한 그녀는 환경운동가인 아티스트이다. remake, reform, recycle, restore에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up-Style을 이뤄가는 아티스트이다.
그녀에 의해 다시 태어난 작품들마다 스토리가 있다. 망가진 옛것을 새로운 스토리가 담긴 작품으로 복원을 하는 것이다. Re-Story가 담긴 Re-Art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뜻을 함께 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을 하려 한다. 그에 나도 동참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기쁘다.
내가 할 일 중의 하나가 한국에서 내가 배우고 가르쳐 왔었던 꽃꽂이를 가르치는 일인데, 환경오염을 피하는 꽃꽂이 도구와 재료만을 선정해서 가르칠 예정이다. 한국 전통 꽃꽂이를 더하여 나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이야기가 있는 Re-Story 꽃꽂이’ 수업을 할 예정이다.
꽃꽂이 수업에 대한 커리큘럼을 짜는 일부터 준비할 것이 많지만 아주 흥미롭고 즐거운 작업이기에 엔돌핀이 저절로 솟아난다.
워낙 언어에 대한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뉴질랜드에 살면서 영어가 가장 큰 장벽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현지인들을 피했고, 내가 갖고 있는 예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썩히면서 살았다.
하지만 지금 난 내 예능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들은 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15년 전에 파미 시립도서관에서 한국 꽃꽂이 전시회를 했었던 것도 지금의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긴 하다.
그러고 보면 지난 모든 열정들이 감사하고 소중하기만 하다. 젊었을 때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고뇌, 삶에 대한 의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참 오랫동안 수많은 좌절을 겪어 오면서 마음을 다스려 가면서 살아왔다. 꽃꽂이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왔던 거 같다.
모든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욕심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 혼자 즐기면서 살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다 비웠더니 채워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앞으로 내 꽃꽂이 수업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른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것은 나를 지원해주는 천군만마가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있다는 것이다.
천군만마만 믿고 수업을 시작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나는 ‘장자’의 ‘쓸모없는 나무’를 자주 생각했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쓸모없는 나무의 쓸모 있음에 공감했으며, 시원찮은 나 또한 그런 나무가 되길 바라면서 지내왔었다.
쓸모없는 나무라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 것은 아니다. 나무가 항상 그 자리에서 그냥 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비바람과 해충들의 피해를 이겨내면서 세월을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거목이라는 것은 아니다. 정원에 피어있는 작은 꽃일 수도 있고, 채소일 수도 있다.
거목이면 어떻고, 꽃이면 어떻고, 채소면 또 어떤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남에게 쓰임이 된다는 게 중요하지.
『Re-Story Studio』에서는 아트 수업과 더불어 아티스트가 작업한 작품들을 판매한다.
스튜디오에서 내가 만든 작품들도 판매가 되고 있다. 조각 천을 이용한 나의 창작품들부터 디자이너와 콜라보로 작업한 작품들, 꽃꽂이 작품, 다육이 화분...등의 여러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다. 도자기에 다육이 들을 심어 분재하듯 키운 작품들도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스튜디오의 메니저인 디자이너의 공이 크다. 한마디로 내가 운이 좋았고 복이 많은 것이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행운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잘 자라지 않았다면 그녀를 만났어도 함께 작업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이제 시작일 뿐. 가는 길이 꽃길만은 아닐 것이다. 지뢰도 있을 것이며, 물웅덩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자라면서 헤쳐 나갈 것이다. 늘 업그레이드를 하는 Re-Story가 담긴 스튜디오로 거듭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