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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축하고 음산한 겨울철에 배 나들이를 하려는 사람이 몇 사람들이나 있을까? 배가 텅텅비어 아마 심심할지도 모를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일찍이 가봐야 바닷바람에 춥기만 할거라며 느긋하게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이변이람, 마치 남대문 시장통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했다. 붐비는 사람들로 가득차서 놀라웠다. 무료하면 달려나가 배에 올랐던 그 곳이 아닌 것 같아 낯설기까지 했다.
천천히 둘러보니 젊은이들이 대다수였다. 허벅지가 드러나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차림에 가볍게 코트만 걸친 20대 전 후의 아가씨들, 말쑥한 정장 스타일로 멋을 낸 청년들이었다. 삼삼오오 그룹을 이뤄 웃고 떠들어 시끄러웠다.
젊음의 열기로 후끈 달아 오르고 있는 것처럼 분위기가 뜨겁게 느껴졌다.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그 곳의 와이너리는 결혼을 앞둔 선남 선녀들이 선망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주말이 조용할리가 없지, 그들은 결혼식을 하러 가는 신랑 신부 또는 하객들이었다. 들떠있는게 당연했다.
오늘은 섬 전체가 젊고 신선한 공기로 넘쳐날 것 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고 있는 기분을 알아챘다.
아직도 세계는 코비드19로 어려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질 않은가.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자유는 얼마나 달고 값진 것 인지... 얼마전 살기좋은 나라 일등을 차지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너나없이 편하게 하는 이 여행길이 축복이고 행운이란걸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요란스런 소음이 앞에서 들려오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방금 도착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 같았다. 깃발을 나부끼며 힘차게 노래 부르면서 나오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었다. 섬에서 축구경기를 승리로 마친 자랑스러운 팀 이라고 했다.
드디어 배를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배에 다 탈 수 있을까? 우려했던대로 그 배는 타지 못했다.
만석의 배를 떠나 보내고 우리는 15분을 더 기다려 임시로 띄운 배를 탈 수가 있었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배를 흔들었다. 그러나 겁을 먹기도 전에 어느새 섬에 도착했다.
우리를 기다려 준 택시 기사님이 마침 우리 교민 분이어서 반가웠다. 우연치고는 괜찮은 인연이었다. 우리가 아는것 이상의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안내를 해 주어 고마웠다.
경치 좋은 와이너리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굽어보며 예정된 점심을 먹었다. 우리 공주님이 그토록 원했던 대망의 자리였다.
문학의 향기에 깊이 젖어 사는 상냥하고 너무도 고운 예쁜이, 공주란 말이 저절로 나와 그리 이름 붙여진 진정한 나의 왕팬.
세대의 벽 같은 것 없이 소영씨로 친구가 되고자 했던 그가 공주가 된 후부터 나를 왕비마마(?)로 추대해 불렀다. 빠질세라 왕자로 자처한 또 한사람 우리들 보스, 세 사람이 이상하게 어울린 조합이긴 했지만 의기 투합이 잘되는 삼총사였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 자리는 어느 왕궁이었다. 공주는 공주대로, 왕비는 왕비답게, 왕자는 왕자처럼, 걸맞는 말들을 흉내내며 서툰 음식이 꿀맛같이 입 안에서 녹아내렸다.
허접한 일상들 잠시 벗어나서 쉼표의 정점을 찍는 순간,세속의 먼지를 털어내고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모두를 굽어보며 한바탕 신나게 우리들 세상으로 만들어 보는 것, 정서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영혼을 정화하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겨울비치를 달려가는 길엔 촉촉히 잔비가 뿌리고 있었다. 텅 비어 쓸쓸한 비치를 저만치 외롭게 웅크려 앉은 카페가 먼저 손짓 해 불렀던가? 여름 한철 수영복 차림의 손님들로 가득 찼을 카페 안이 썰렁했다.
그들이 앉았던 빈 의자들. 손 때 묻었을 탁자들이 외로워 보였다.
겨울비치 앞, 텅 빈 카페에서 더운향기 폴폴 풍기는 커피잔을 앞에 놓고 우리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창문 밖, 울타리가 둘러처진 아담한 뒷뜰이 마치 시골집 뒷곁같이 정스럽게 다가왔다. 여름내 피었다가 시들었을 키작은 들꽃들, 새파랗게 싱싱한 건대잎이 핏빛 빨강줄기로 꽃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작은 둔덕 한편에 장독대가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와이너리의 고장답게 커다란 나무술통들만 딩굴듯이 놓여 있어 꿈을 깨야 했다.
빠알간 등줄에 연두색 날개를 가진 고운 새가 작은 나뭇가지에 오래 앉아 있다. 귀하게 만나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새가 겨울 손님,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아 가슴 따뜻한 감동으로 전해졌다.
혼자서만 느꼈을 특별한 감동, 안달스럽도록 자연에 민감해진 버릇은 나이 탓 때문일까?
저녁 5시에 마지막 스케쥴이 남아 있었다. 작은 음악회에 티켓까지 준비해 준 우리들 보스님의 대단한 선물이었다.
젊은이들 즐기는 행사에 모습 드러내는게 민망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생긴 자신감 없는 노후의 특징임이 분명했다.
약간의 불안감을 감춘 채 젊은 일행들을 빽으로 삼고 시간 전 공연장인 피아노 박물관에 도착했다.
오래 전에 한번 들린 적이 있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박물관을 만들고 지금껏 관리해 오셨던 어른의 장례식을 바로 어제 치뤘다고 해서 가슴이 서늘해 졌다.
오랜 세월동안 손수 수집해 정성으로 보듬어 보존해 온 이십여개의 골동품 피아노를 둘러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것을 지키며 평생을 살아온 남다른 그 분의 일생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앞 뒤 피아노가 진열된 가운데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한 사람씩 입장을 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평상복 두툼한 점퍼차림의 남자분이 검은 안경을 쓴 채로 들어오고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몸집 큰 검은 개가 사람들 속에 섞여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밤중에 난데없이 연주장에 개가 뛰어들다니?... 의아하고 놀라웠다.
그 남자가 더듬거리며 내 앞줄 의자에 앉을 때에야 그가 보지 못하는 맹인임을 알았다. 그 개는 주인을 모시고 온 안내견이었다.
개는 주인이 앉은 의자 밑으로 들어가 그 큰 몸을 조용히 웅크려 눕혔다. 훈련이 잘 된건 알겠지만 그 익숙한 몸놀림은 아무래도 여기에 처음 온건 아닌 것 같았다. 불편한 몸을 안내견에 의지해 어두운 밤 음악감상을 오다니... 내 짧은 식견으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그져 놀랄뿐이었다.
자리가 메워지기 시작하는데 젊은이가 한 사람도 안 보여 이상했다. 얼굴에 주름 가득한 노부부가, 또는 보통차림의 여인들과 노인들끼리 어울려 이웃집 마실오듯 편하게 입장을 하고 있었다.
내적 꿈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끝까지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동년배의 그들에게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 만 떨어지면 집 안에 파묻혀 밤 문화를 외면한지가 오래 되었다. 나이 무게에 짓눌렸다는 못난 핑계였다.
십 수년 전, 크라프트(craft) 노인센터에서 봉사를 했었다. 그 때 그 곳 같은 단체에서 초대를 해 주어 다수의 인원이 배를 탔었다. 점심식사 후에 홀에 모여앉아 연극 구경을 했었다.
엉성한 무대에서 꾸부정한 몸에 서툰솜씨의 분장을 하고 열심히 연극을 했던 분들이 전부 단체의 노인들이었다. 연극의 내용까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 동작만보고 얼버무려 웃기만 했다. 아이들 재롱잔치같은 연극을 그토록 열심히 정성으로 하는 노인들 모습은 그러나 장난이 아니었다.
차츰 그런 열기에 빠져들면서 저토록 대단한 열정을 나도 닮아 살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었다.
지금 이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이 바로 그 분들이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드디어 (jade string quartet) 현악 사중주단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악기의 현 들이 일제히 춤을 추는 동안에 조용히 눈이 감겨왔다. 몸이 갑자기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온갖 꽃들이며 너무도 아름답게 빛나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날개가 달린듯 문득 그 세상속을 가볍게 유영을 했다. 꿈인듯 생시인듯 천상의 세계가 이런 곳 일까? 음악 감상에 문외한인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경이로움이었다.
꿈이었을까? 생시였을까? 풀지못한 수수께끼로 지금도 머리속에 남아있다.
남자 연주자 두 사람 중 첼리스트가 동양인 남자였는데 그가 제임스 유 라는 한국인 임을 알았다. 휴식 시간에 그들이 쉬는 방으로 들어가 악수를 나누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 자녀처럼 자랑스러워 어깨가 으쓱 했었다.
즐겁고 행복한 밤, 별빛 찬란한 하늘을 보면서 밤 배를 탔다.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길게길게 따라왔다.
꿈을 향해 끝없이 걷는 저들을 닮아 살아 보리라.
함께해서 행복을 만들었던 보스 왕자님, 사랑의 공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