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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요즘 “공정” 이라는 단어가 뜨겁다. 고도화 된 자본주의가 잉태한 심화된 불평등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필연적으로 갈망 할 수 밖에 없는 “공정한 세상”은 어느덧 시대의 화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반칙이 허락 되지 않고 모두에게 동일한 정도의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라면 우리는 충분히 “공정하다” 정의 할 수 있을까?
20세기 중반,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 리그라 불리는 미국의 명문대학들에 새로운 바람이 시작된다. 그때까지 너무도 당연시 되던 개신교 기독교인과 귀족 그리고 사회 지도층 인사 자녀들에 대한 호의적인 입학조건과 학업의 독점을 타개하고자 변혁의 바람이 시작된 것이다. 더 이상 일부 계층의 특권을 허락하지 않고 사회적 신분은 낮지만 높은 학업 성취도를 가진 학생들에게 그 문을 열기 시작한 대학들의 노력은 과거 세습으로 영위하던 사회적 지위에 단절을 선언했다. 스스로가 선 보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은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을 열어 놓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능력주의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받아 들여져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로 발전된 이 새로운 질서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맞는다. 원활한 사회적 계층이동이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단절된 계층의 사다리는 복구되지 않았고 오히려 최상위 계층에게 “능력” 이라는 새로운 보호막을 더해 준 결과만을 나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어난 새로운 엘리트 그룹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더 이상 세습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가 가지고 있는 그 힘을 이용해 더욱 공고히 자신의 능력을 완성한다. 표면적으로 더 이상 불공정한 세습에 의존하지 않는 그들의 새로운 질서는 자신의 능력이 세습되지 않고 스스로 개척 되어진 것이라고 하는 오만함과 당위성으로 더욱 단단해 진다.
이것은 사회적 계층 이동 가능성을 나타내는 통계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오분위로 나누었을 때 가장 낮은 계층에서 가장 높은 계층으로 올라 갈 수 있었던 이들은 단 1%에 지나지 않았고, 그 계층 사다리의 두 계단을 올라가는 것 조차 20%에 불과했다고 통계는 말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것과 달랐던 것이다.
미국 사회를 답습하다시피 한 한국 사회 역시 이 왜곡된 능력주의와 불공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경쟁으로 모두가 지쳐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권에서는 이 능력주의적 사고를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된 “공정”의 해법으로 논의, 평가하고 있다고 하니 이와 같은 아이러니가 또 있을 수 있을까? 능력주의의 오류로 나타난 사회의 불공정을 더욱 투명하고 심화된 경쟁적 능력주의로 개선 하겠다고 하는 발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섣불리 그 오류의 대안으로 기계적이고 무조건적인 평등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불균형한 계층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에서 시작한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수긍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다름 가운데 일정 정도의 불가피한 불균형을 인정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가피성이 자정 되거나 통제되지 않을 때 그 사회는 자신이 속한 계층과 무관하게 불행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사회를 역동적으로 이끌고 있는 모든 노력의 가치 (비록 실패한 노력이라 할 지라도)와 그에 대한 보상이 서로 다른 직업의 다양성 속에서 충분히 존중되지 못할 때 인간의 존엄 역시 우리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삶의 위치가 서로에 의해 넉넉히 존중될 수 있다면 우리가 속한 사회 또한 충분히 안정적으로 변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존중이 사라진 사회는 우리에게 미래를 제시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과 강제된 존중으로 유지되는 사회 속에서 내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909300600015)
■ 이익형 간사 (낮은마음 간사 / BTh, MTh)
레이드로 대학 (Laidlaw College)에서 각각 성서연구 (Biblical Study)와 공공신학 (Public Theology)으로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나눔 공동체 낮은 마음과 문화 공간 <숨, 쉼>에서 일하고 있다. - 낮은마음 이야기는 나눔공동체 낮은 마음이 서부 오클랜드 지역에서 활동하며 지역 이웃들과 함께 나눈 사역을 정리해 엮은 칼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