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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은 어디에?
이번 역사교육 커리큘럼 초안에 대한 Royal Society of New Zealand의 전문가 어드바이스 패널 중에 유일하게 아시안으로 참가한 학자는 Manying Ip 전 오클랜드 대학 교수 - 1945년생이니까 올해로 벌써 76세가 되었다 - 도 포함되었는데 그녀의 의견의 반영된 결과인지 이번 커리큘럼 초안에 대한 리뷰 보고서도 제신다 아던 정권이 주장했던 뉴질랜드 사회의 다양성(diversity) - 여러 측면의 다양성이 있겠지만 분명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도 포함되어 있다 - 이 이번 초안에 제대로 반영 안 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단순히 국정 최고결정권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측면 뿐만 아니라 갈수록 다인종/문화화되어 가는 21세기 뉴질랜드의 민족형성(nation building) 과정에 역사교육이 일조하기 위해서는 파케하와 마오리라는 19/20세기의 Biculturaism 프레임만 고집해서는 안 되고 다양한 에스닉그룹이 공존하는 뉴질랜드의 multiethnification(다에스닉화) 현실을‘반드시’반영해야 한다는 절실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초안 작성자 중 하나이며 역사교육의 의무화의 주역인 뉴질랜드역사교사협회 회장 Graeme Ball은 초안(draft)은 독자들로 하여금 커리큘럼의 큰 방향을 알게 해주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구체적 사항들을 적시할 경우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하기에 많은 세부 사항들은 생략하였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면의 제한 탓이라던가 판단을 오히려 어렵게 할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의 고의적 생략이라고 보고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다. 압축과 생략은 모든 주제와 소재에 균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마오리 역사 서술에 비해 다른 에스닉 그룹에 관한 서술은 아예 한 구절 혹은 한 문장도 없을 정도로 불균형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Royal Society of New Zealand의 파넬도 중립적인 표현이지만 “...key features of the curriculum: to place Maori history central to New Zealand’s historical experience…(이번 커리큘럼의 핵심으로 마오리의 역사를 뉴질랜드 역사적 경험의 중심에 놓았다)” 라고 평가하면서 커리큘럼의 마오리 편중을 우회적으로 비판 언급했다. 마오리 역사 바로 알기와 바로 세우기는 이전 포스트에서 거듭 강조했듯이 뉴질랜드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절대적 ‘필요조건’ 이지만 우리는 이번 역사교육으로부터 다인종/문화 되어가는 뉴질랜드 미래를 위한 ‘충분조건’을 기대하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국제도시 오클랜드에는 파케하와 마오리만 거주하는 곳이 당연히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오클랜더 3명 중 1명은 아시안이 된다. 산술적으로 각 학교 학생 수도 유사하게 아시안 학생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보다 더 큰 비중일 수도 훨씬 작은 비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교육의 목적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와 현상들을 과거와의 연계를 통해 입체적 조명과 이해를 함으로써 나은 미래에 대한 지혜를 모으기 위함이라면 이번 신설된 뉴질랜드 역사교육 커리큘럼에서 이들 Non-Maori 소수 민족 사회구성원에 대한 배려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오클랜드 일부 지역은 학생 구성이 파케하와 아시안 두 에스닉 그룹이 절대적인 비중 - 마오리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을 것이다 - 을 차지하는 곳이 적지 않은데 이들에게 마오리의 역사에 치중된 수업 내용은 각기 다른 불편한 이유로 파케하 학생에게도 아시안 학생에게도 지루한 시간이 될 것이다.
Royal Society of New Zealand의 파넬도 이번 초안의 다양성에 관한 관심 부재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2019년 역사교육 시행을 발표할 때 교육부 장관 Chris Hipkins도‘Our diversity is our strength’라고 선언했지만 파넬이 보기에 이번 초안은 뉴질랜드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 부분이‘현저하게’생략 혹은 축소되었다. 다소 길지만 내가 보기엔 무척 중요한 지적이라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다.
“…., the curriculum does not specifically recognise the diversity of New Zealand society and the very different experiences based on ethnicity, gender, religion, or social status. Aotearoa New Zealand’s society has also come to include migrants and ancestries from English, Irish, and Scots origins; those from Dalmatia, Bohemia, Scandinavia, and Croatia; Jews and other Europeans; the different waves of Chinese and Indian migrants; and the specific experience of Samoans, Tongans, Niueans, Tokelauans, and other Pacific peoples. It includes refugees from Poland, Hungary, Cambodia, Vietnam, Africa, and the Middle East. It is, in our view, critical that‘all’New Zealand children and young people see their own histories explicitly identified in the curriculum. ….. Coverage of diversity may be what is intended in or by the curriculum, but the way it is currently written does not capture that intent. This is important, given the dramatic changes in the make-up of Aotearoa New Zealand, especially since the 1980s.”
파넬들이 지적한 것처럼 뉴질랜드는 브리티쉬 후손뿐만 아니라 다른 서구권 또 동구권 이민자, 오랜 이민 역사를 가진 중국인과 인도인, 퍼시피카 그리고 세계 각지로부터 온 난민 그룹까지 다양한 에스닉 그룹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와 관련해서 핵심을 찌르는 지적을 한다. “It is, in our view, critical that‘all’New Zealand children and young people see their own histories explicitly identified in the curriculum ( ‘모든’ 뉴질랜드 어린이들과 젊은 사람들이 커리큘럼에서 공식적으로 서술된 자신들의 역사를 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면서 1980년대 이후 뉴질랜드 사회구성원의 역동적 변화 - 다양성 - 를 커리큘럼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커리큘럼 제작팀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이에 관한 내용이 이번 커리큘럼에 전혀 반영이 안 되어 있음을 비판한다. 이에 대해 이번 커리큘럼 저자 중 한 명이자 역사교육 의무화 주역 중 한사람인 뉴질랜드교사협회 회장 Graeme Ball은 ‘.. most of the content the panel called for had been prepared and was left out of the draft …(파넬이 지적한 대부분 내용은 준비되었지만, 초안에서 빠졌다)’ 라면서 다시 한번 초안 특성상 구체성이 없을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한된 지면을 통한 요약은 특정 내용을 통째로 싹둑 잘라내는 기술이 아니라 모든 ‘필수적’ 내용을 요령껏 압축해서 다 담아내는 기술임을 고려할 때 위 해명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실제 커리큘럼은 초안과 다를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다양성은 단순히 인종, 문화 혹은 에스닉 그룹의 다양성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파넬이 지적한 것처럼 젠더(gender), 종교 그리고 계급(class) 혹은 계층(social status)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측면을 포함한다. 마오리와 관련된 사회적 영역이 뉴질랜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에 치중한 역사교육은 마오리 관련 이슈처럼 두드러지지 않지만, 뉴질랜드 사회에 내재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외면함으로써 현재의 마오리 문제처럼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이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추상적인 초안
이번 초안의 이해(Understand)는 위 다이어그램에서 보는 것처럼 3개의 빅아이디어(Three Big Ideas)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위 세 번째 아이디어다. 한국어 버전에서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의 역사는 힘의 행사와 결과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로 번역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확실히 2019년 8월 제신다 아던이 학교에서 뉴질랜드 역사교육을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한 성명 - “The curriculum changes we are making will reset a national framework so all learners and akonga are aware of key aspects of New Zealand history and how they have influenced and shaped the nation.”- 의 일부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처럼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이 서술이 빅 아이디어의 하나가 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이 아이디어가 틀렸다 맞다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범용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나라의 역사는 다 힘의 행사와 결과에 의해 형성되었고 뉴질랜드도 그 중 하나이므로 이는 뉴질랜드 역사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세 번째 아이디어 관련 나의 또 다른 불편함은 아이디어 하단의 설명 부분이다. ‘개인, 그룹 그리고 조직은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향상하는 방식으로 또 그로 말미암은 피해, 불공평 그리고 갈등을 촉발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쟁취하려 했다. 아오테아 뉴질랜드의 내부로부터의 그리고 지역을 초월한 이데올로기와 신념들은 권력과 저항의 표현들 그리고 권리와 정체성에 대한 애착을 뒷받침한다.’로 번역될 수 있는데 거대한 사회학적 담론의 결론 부분 성명같이 들린다.
이번 초안이 초중고교 뉴질랜드 역사교육을 위한 새로운 커리큘럼의 내용을 학부형들과 학생들 주 대상으로 대략 소개하는 글이라면 과연 이 성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소감이었다. 이해를 잘 못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 듯하다.
초안의 리뷰를 담당했던 Royal Society of New Zealand의 파넬도 “These are articulated in terms that are extremely broad and remain very abstract (빅 아이디어의 서술이 너무 광범위하고 매우 추상적이다)”라고 지적하면서 특히 두 번째 문장 ‘아오테아 뉴질랜드의 내부로부터의 그리고 지역을 초월한 이데올로기와 신념들은 권력과 저항의 표현들 그리고 권리와 정체성에 대한 애착을 뒷받침한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적확한 표현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결론
역사교육 이야기 1편이 2022년 초중교 역사교육의 필수과목화에 따른 흥분과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라면 2편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아시안으로서 이번 초안이 너무 마오리 역사에 치중한 나머지 다인종/문화화하는 뉴질랜드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는 접근이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을 Royal Society of New Zealand 파넬의 리포트에 힘을 얻어 제기했다.
하지만 초안은 초안이고 5월 31일까지 의견을 계속 수집한다는 것은 아직 확정된 것이 없고 또 지금까지 제기된 많은 의견이 정식 커리큘럼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므로 이 단계에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커리큘럼에 대한 내용에 대한 단정적 판단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2022년이 역사교육을 통해 뉴질랜드의 모든 사회구성원이 자기와 다른 그룹에 대한 역사적 사회학적 인식을 통해 서로 깊이 이해하는 여정의 원년이 되길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초중고 뉴질랜드 역사교육의 의무화를 위해 힘쓴 개인들과 그룹의 노고에 감사를 보낸다. 각종 논문과 발표를 통해 뉴질랜드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지난 수십 년간 계속 역설해왔던 학자들, 모든 뉴질랜더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자기 조상의 아픔이라 생각해서 13,000 명 이상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모은 Otorohanga College의 학생들, 역사교사로서 진실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행동으로 옮긴 뉴질랜드역사교사협회(NZHTA)의 350명 회원과 회장 Graeme Ball 등.
■ 김무인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사회 초년생활을 한 후 뉴질랜드로 이민 왔다. 새계화의 조류 속에서 다인종 다문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에 관심이 많고 더불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팽개쳐진 사회적 가치의 부활을 위해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탐구 할 요량으로 글쓰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