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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딜 가나, 누구를 만나나 모두 올림픽 얘기뿐이다. 나 역시도 밤마다 감자칩과 맥주를 끼고 텔레비전 앞에서 올림픽을 관전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해서 동료들과 별생각 없이 어떤 선수가 잘했고, 누구는 좀 아쉬웠으며, 어떤 나라는 순전히 운빨(?)이었고, 특정 종목은 어떤 나라에게 특히 유리했으며, 어떤 심판이 불공정했다는 사담을 늘어놓는다.
물론 선수들의 5년간의 노력을 메달 색으로만 판단하는 올림픽 시스템이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지만, 메달 획득과 상관없이, 그리고 승패와 상관없이 올림픽 경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본 올림픽 경기 중 내게 최고의 감동을 준 건 역도 경기였다. 김연경 선수가 이끄는 배구도, 금메달을 세 개나 딴 양궁의 안산 선수의 경기도, 금은동 메달 모두를 거머 쥔 한국 펜싱 사브르 대표팀의 경기도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그러나 30세의 적지 않은 나이로 필리핀에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안겨준 역도 선수 하이딜린 디아스가 인상 97㎏, 용상 127㎏으로 합계 224㎏을 들어 올리고 금메달을 확정지은 순간은 정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필리핀 스포츠 역사가 바뀐 순간이었다. 필리핀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1924년 이후 무려 97년 만이라고 한다. 그녀의 경기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올림픽 선수들 간의 실력 차이는 그리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기본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은 당연히 갖췄을 테니 말이다. 메달 획득을 결정짓는 요소는 단순히 실력만이 아니다. 대회 당일 선수의 컨디션, 운, 실전에 강한 타입인지 아닌지, 팀워크 등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는 많다. 그런데 그중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결국 절실함인 거 같다. 적어도 디아스 선수의 경우는 그렇게 보였다.
디아스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다. 선수촌에서 맞춤형 식단을 제공 받고, 최고의 훈련을 받는 다른 올림픽 선수들과 달리, 그녀는 훈련 경비도 늘 부족해서 대기업과 스포츠 후원가들을 찾아다니며 금전적인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더 나은 곳에 가서 훈련을 받으라는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로 전지 훈련을 떠났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지면서 체육관 출입마저 통제당했다. 나였으면 12번도 더 포기했을 거 같은데 그녀의 절실함은 모든 역경을 이겨내게 했다.
금메달을 딴 직후 그녀는 수상 소감 역시 완벽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신이 준 모든 역경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신은 위대하다.”
짧은 이 소감에는 그녀의 겸손함이 묻어났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내용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대견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모든 공을 신에게 돌렸다.
나였으면 아마 마이크를 뺏어서 내 스스로가 대견하다며 길고, 장황하게 실컷 잘난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올림픽 무대에서 역대 처음으로 필리핀 국가가 울려 퍼졌고, 나도 난생처음 듣는 다른 나라의 국가를 들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