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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접한 뉴스 중에서 가장 흥미롭기도 하고 놀라운 장면이 미국에 의해 피살된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솔레이마니의 사망이었다.
그는 군부실세이며 이란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영웅적 삶을 살았었다.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쟁으로 인해 이라크 내전에 직접 참여 했던 솔레이마니는 혼돈의 중동질서를 이란위주로 재편하기위해 이라크내 친이란 무장조직의 지원을 담당하고 지휘를 주도 했었다.
그는 이란국민과 시리아 레바논에서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차기 이란대통령으로 서방언론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반면 중동내에서 영향력이 감소함을 우려하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같았던 존재였다.
그를 제거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의 무인기 공습은 오랫동안 준비되었고 마침내 바그다드 공항 근내에서 기습적인 드론 미사일공격으로 솔레이마니의 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국제정세의 변화나 먼나라의 사정에 그리 밝지 못한 나로서는 이 사건자체에 대한 논평이나 견해를 드러내는 일은 나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 본다.
그러나 나에게 흥미로운 장면은 그 공습을 직접 수행한 병사들의 모습이다
두평남짓한 벙크에서 며칠을 보내며 사이버 게임하듯이 원거리에서 정보를 수집하여 버튼을 눌러가면서 미사일 공격을 성공시켰다
그들은 수천킬로 떨어진 곳에 앉아서 오로지 화면만 보고 정확히 타겟을 제거했고 심지어 성공을 화면으로 확인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도 TV 로 보여졌다.
사람이 죽는다든지 폭팔이 일어난다는 느낌을 전혀 가지지 않고 가상의 세계에서 사이버 게임하듯이 작전을 수행한것이다.
이제 전쟁도 과거처름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해서 돌격앞으로 ! 를 외치던 시대에서 서로 전혀 얼굴도 보지않고 누가 누구를 공격하는지도 알수없고 어디서 미사일이 날아올지도 전혀 짐작할수조차 없는 가상의 컴퓨터 게임같은 무자비한 살육이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비단 군사적인 분야에 국한되는 일은 아닌듯 보인다.
이미 경제 / 과학 /기술 /예술 등 사회전반에 걸쳐 이런 변화는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 일상자체가 가상의 현실속에 깊숙히 들어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리함에 취해서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뿐이다.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 시절을 몸으로 겪어왔으니 양쪽의 비교가 가능하고 그 차이가 우리삶에 미친 변화를 포착할
경험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
그러나 지금 세대들은 그 변화의 흐름조차 느낄수 없는 입장이고 그 가상의 세계가 인간을 삶을 환상과 이미지의 세계로 빠뜨릴수 있다는 위험성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 하다.
현대자본주의는 대량생산속에서 경제가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대량소비가 필요한것이다.
생산은 언제나 과잉상태로 향한다.
그 악영향을 알면서도 달리는 말에서 내릴수가 없듯이 새로운 상품과 더 많은 생산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대량소비는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는 그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광고를 만들고 광고는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진다.
보르드야르는 그의 명저 시뮬라시옹에서 말한다.
밖을 나가보면 우리는 이미지의 세계에 포위되어 있다.
도시빌딩의 광고판 / 버스정류장 / 지하철 /휴대폰 / TV 광고 거리의 플랜카드 ...
이들이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기호가 되어버렸다.
처음에 광고는 실제 상품의 모습이나 사용가치를 표현했으나 지금은 실재의 모습을 모방하지 않는다.
원본이 필요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광고 스스로 만들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이미지와 현실의 경계는 사라지고 우리는 가상의 이미지가 더 실재라 생각한다.
소비를 할때 현대대중들은 실재의 세계가 필요가 없어져 버린듯 하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
이제 휴대폰은 눈을 뜨면서 손에 쥐게 되고 그를 통해 대부분의 관계가 시작되고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일정을 처리하고 심지어 휴식을 취할때도 휴대폰을 통해 영화/드라마 / 스포츠 / 뉴스를 접한다.
이들 대부분은 이미지화 된 가상의 세계이다.
뉴스는 현실을 표현한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질수도 있으나 그 구조를 들여다 본다면 꼭 그렇치도 않은듯 하다.
뉴스한편을 제작하기 위한 비용자체가 이미 수많은 광고의 수입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 광고수입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제작은 불가능하다.
뉴스자체가 100프로 REALITY 를 전달하는것이 아니라 해석된 2차적 실제를 전달하는 것이라 본다.
자본주의는 점점 더 치밀하게 그의 힘을 강화시켜 나가고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그 가상의 세계 속에서 옴짝 달싹 못하는 상황속으로 점점 더 빠져드는 느낌이다.
한발 빼고 조금은 벗어난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새로운 과학 기술/ 발달하는 정보 통신/ 4 차산업 이 모두가 자본주의를 확산하고 그 지배를 더욱더 공고히하는 충실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가 실재를 지배하는 힘이며 이미지세계가 실재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이미지는 더이상 실제세계를 모방하지도 않고 반영하기도 않고 그럴 필요가 없어져 버린것은 아닐까?
실재와 무관해지면서 현실을 넘어서버리고 권력화되어 우리의 무의식을 점점더 장악해 가는 사회가 되어가는것은 아닐까?
(나의 염려가 지나친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는마음 간절하다)
사람들을 만날때 우리의 본래 모습보다는 이미지가 훨씬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의 내면의모습 / 실재의 모습보다는 나의 역할,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전부 일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들 / 행위들 속에서 실재는 찾기 힘들다.
그 속에서 소외되어가는 나를 본다.
나자신은 언제나 부분이 되어야하고 조화속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타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타인의 시선/ 대중매체의 지배/ 광고의 이미지/ 사이버 가상세계는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가고 우리의 삶을 가두어 버리려한다.
주말에 그누구도 만나지 않고 새소리/ 시냇물 흐르는 숲을 거닐지 않아도
감자칩과 치킨한마리만 있으면 TV 앞에서 / 게임의 세계에서 하루종일을 보낼수 있는 현실에 살고있다.
점점 더 우리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기 어렵다.
돌아보면 느껴지는 무의공간의 싸늘한 냉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춤을 춘다
그리고 나를 본다
산들바람에
솜털 구르듯
흘러간다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
맡겨 버린다
나를 묶은 사슬들
순식간에 끊어버리고
던져버린다
나의 무게들
먼지속으로
춤을 춘다
저 바다 가는 길
그 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