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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권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10)
여자의 변신(變身)이 무죄라면 여자의 변심(變心)도 무죄이던가? 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남자는 비로소 철이 들 수 있는 것이리라. 어떤 사람이 하느님한테 가서 소원을 빌었다. “하느님, 소원 하나 들어 주십시오. 하느님이 말해 보아라고하자 LA에서 하와이까지 다리하나만 놓아 달라고 주문했다. 몇 차선을 원하느냐고 하자 2차선이면 충분합니다. 다리가 놓아지면 하와이와 미국 본토의 왕래가 얼마나 편해질 것이며 관광산업 발전에도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건 좀 곤란하겠다. 말이 그렇지 LA에서 하와이까지 다리 건설하는데 얼마나 많은 철근과 시멘트가 소요될 것이며 그 많은 인력을 충원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텐데 차라리 다른 소원을 빌면 어떻겠니? 하시자 그럼 여자의 마음을 읽는 기술을 알려주십시오. 그것은 돈이 전혀 안 드는 일입니다. 하니 하느님이 대뜸 그것만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내가 LA에서 하와이까지 8차선을 놓아주겠다.”
여자가 변심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흔하지 않은 일이니 문학의 소재가 되고 있으리라. 1971년경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게재됐던 ‘Going Home’ 이라는 글이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노란 손수건’ 이라는 제목으로 오천석님이 번역하여 월간 『샘터』지에 발표한 후 한국 사람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형무소에서 3년을 보내다가 가석방돼 고향으로 돌아가는 주인공이 가석방이 결정되자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생각이면 마을 어귀 참나무에 노란손수건을 매달아 달라고 적었다. 손수건이 보이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지나쳐 가겠다는 암시였다. 그런데 버스가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버스 안에서는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참나무에는 온통 노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이런 편지 내용을 전해들은 동네사람들이 너도나도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주었다. 노란손수건이 걸려 있기를 기대하는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이 숨죽여 기다리는 중에 전개된 노란 손수건의 물결은 주인공은 물론 마을 사람들과 버스에 탄 모든 승객들에게 가슴 뭉클한 순간이 되었다.
모든 사물에는 스토리가 가미될 때 그 가치가 증폭된다. 음악만 해도 그렇다. 그냥 듣거나 연주하는 것보다 곡의 스토리를 알고 작곡가의 내면세계에 들어가 연주자의 기교를 음미하면서 감상하면 감동이 다르다. 성악(聲樂) 작품은 작사자와 작곡가, 연주자가 한 몸이 되어 탄생하는 예술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흔히 들어왔던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는 멜로디가 좋은 외국 가곡으로서만 알고 지내 왔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화요음악회에서 그 노래에 얽힌 배경을 이해하고 들으니 새로운 감흥에 젖게 되었다..
노르웨이의 작은 산골 마을에 살던 페르귄트는 같은 동네 솔베이지라는 아리따운 소녀를 사랑했고 결혼을 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했지만 가난으로 고생만 하는 아내 솔베이지를 위해 돈을 벌려고 먼 외국으로 떠났다. 부둣가에서 온갖 막일을 하면서도 고향의 아내를 그리며 열심히 일을 해서 많은 돈을 축적한 남편은 10년 만에 모든 재산을 정리해 솔베이지가 있는 그리운 고향으로 향한다. 갖은 고생 끝에 모은 돈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오다가 바다 한 가운데서 해적들을 만나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목숨만 건졌다. 고향까지 왔지만 그리웠던 아내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다시 외국으로 떠나 길거리 노숙자로 평생을 살다가 늙고 지치고 병든 몸이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죽는 게 소원이었다. 몇 달 만에 꿈에서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 온 그는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직면했다.
옛날 젊은 시절 솔베이지와 살았던 오두막집이 다 쓰러져가는 채로 있었고 그 안에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 한 노파가 바느질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토록 사랑해왔던 솔베이지였다. 마주보고 있는 백발의 노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둥켜안고 눈물만 흘렸다. 그날 밤 노인은 아내 솔베이지의 무릎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데 차갑게 식어 가는 남편을 위해 마지막으로 솔베이지 노래를 부르며 그녀도 남편을 따라간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고대하노라. 아 --아 -- 아-- 아--아-- 아--”
노르웨이의 현대사를 수놓은 보석 같은 4대 인물이 있다. 여성 해방 운동에 불을 지핀 「인형의 집」 작가 입센(Henrik Ibsen, 1828-1906), 페르퀸트 모음곡(솔베이지의 노래는 제 2 모음곡의 4번 째 곡이다)을 작곡한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 인간의 일생과 희로애락을 담아낸 조각가 비켈란(Gustav Vigeland), 표현주의 화가 뭉크(Edvard Munch)가 그들이다. 2019년에 노르웨이 여행을 갔다 왔지만 그 때는 피요르드 해안 크루즈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들 작품들과 생애 흔적들을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특히 그리그가 말년에 살았던 그의 고향 베르겐 외곽의 트롤하우겐 (Troldhaugen)은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는 성지나 다름없는 곳인데 그 곳을 놓쳤다. 노르웨이의 국민 음악가 시셀 쉬르셰뵈(Sissel Kyrkjebo)는 2019년에 한국을 다녀가기도 하였는데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한 광채가 나고 계곡 시냇물처럼 티 없이 맑은 목소리로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를 때 감상자들은 그녀의 노래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경험한다.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은 아름답다. 언어는 달라도 인간 사회는 음악의 선율을 통해 정서를 공유할 수 있으며 하나가 될 수 있다. 북 유럽의 끝자락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솔베이지의 노래는 오늘날 전 세계인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영혼의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