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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밀고 나갔다가
끊어짐 없이 온전히 끌어당기는 구나
그 단순함에 생명의 싹이 움튼다
한번 내 쉰다
그리고 한번 들이 마신다
그 일에 신성이 깃든다
사랑도 밀었다 당긴다
오입은 들어가서 깨닫는일
반갑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아뇩다라 샴먁삼보리
어떤 시선으로 호흡을 할까?
청수를 마실까/ 탁주를 들이킬까?
어떤 마음으로 SEX 를!
그리고 나를 보고 밥 한술 들수 있을까?
이것이 전부 인듯 하다
하나인듯 보인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진다. 뉴튼은 이 평범한 일상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다.
그 이후 법칙은 지금까지의 문명을 주도해왔다. (적어도 기술적 분야에서는)
여기서 한번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면 그 법칙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사실 인간이 규정할수 있는범위는 여기까지이다 .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고 아마 미래도 별 기대를 안하는것이 현명할듯하다.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 애를 쓰고 답답해하고 심지어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 다르게 보면
이것은 신의 축복일수있고 선물일수 있고 우리는 이 의문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릴수도 있지는 않을까?(단 어느 지점까지 도달한 사람에 한정되기는하지만..)
그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독점할수가 없고 규정할수가 없어 보인다. 근본적 원인에 대한 시선은 자유롭다.
그것에 대한 상상과 Solution은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할수 있으며 열려있는 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무한한 상상과 순간의 통찰이 우리를 깨어 있게하는 원천일수도 있고/ 규정되지 않는 어느 미지의 지점에서 신성함을 느끼기도하고/
거룩해지는 체험을 하기도 하다.
또한 알수없는 무한의 Field 에서 인간은 겸손해질수 있어 보인다.
한 생각 달라짐에 세계는 또 전혀 다르게 보일수도 있다.
나 역시 오랜시간동안 이 질문의 테두리 속에서 서성거리고 방황을 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그 무거운 여의주를 손에 든채로 살아가고 있다.
공자가 가죽끈을 세번 갈면서 탐독을 했다는 동양의 고전 주역에서는 “도”는 일음 일양 이라고 말한다
한번 팽창했다가 한번 수축하는것을 도라 했다 . 그 음과양이 펼쳐지기전의 잠재태/가능태를 태극이라 부른다.
한번 밀고 나갔다가
끊어짐없이 온전히 끌어당기는 구나
그 단순함에 생명의 싹이 움터 나온다
만물은 한번 밀고 나갔다가 끊어짐이 없이 되돌아와서 수축한다.
주역은 이것이 근본적 힘 이라 규정했다. 그 단순한 왕복의 운동에 의해 힘이 나타나고 그 힘에 의해 열이 발생하고 그 동력의 응축으로
에너지가 발현하며 궁극에 그 알수없는 힘의 과정속에서 생명이 탄생한다.
(서양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이를 생성이라 일컫는다.)
한번 내 쉰다
그리고 한번 들이 마신다
그일에 신성이 깃 든다
나의 입장에서 가장 신비스러운것중 하나가 호흡이다.
잠을 잘때도 화를 낼때도/ 일을 할때도 /의식을 하든 하지않튼 항상 스럽고 또 스스로/ 저절로 그러하다.
내가 살면서 발견한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곳이 여기다.
호흡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좋다.
호흡이 목까지 차고 올라와서 끊어지면 목숨이 다한것이다. 생명은 호흡에 의존하고 있다.
불교 / 인도요가/ 명상의 기본은 호흡이다.
그곳에서 사마타를 이루고 위빠사나를 보는것이다
너무도 당연한것들을 너무도 하찮게 여기는 바람에 우리는 소중한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사랑도 밀었다 당긴다
오입은 들어가서 깨닫는 일
반갑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아뇩다라 샴먁삼보리
문명의 때를 벗겨내고 우리의 욕망을 본다면 자연의 본능 그대로다.
잘못됨이 없어 보인다
수행을 통해 한 소식하신분이 계신다면 번뇌가 보리임을 증득하셨다면
인간의 욕망이 무슨 허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오입을 통해 오도송이 나온들 누가 탓할수 있겠나?
남녀의 사랑은 음과양의 결합이다.
요즘 이 사랑이 천박해졌다.
프로이드의 리비도나 오이디콤플렉스 같은 낯선 관념들로 인해
사랑이란 말은 욕망을 처리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듯하다.
분리된 음과양이 하나로 만나고 그곳에서 생명을 발현하고 나의 근본인 태극의 지극한 묘함을 체득 할수도 있는것이
오입이다. 들어가서 그 현묘함을 보지 못하고 신성함을 느끼지 못하고 싸구려 포르노 흉내만 내는 것은 안타깝다
SEX 는 신성할수 있고 근본을 바라볼수도 있다.
SEX는 직접체험한는 자리이다. 그곳에서 어떤이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체험할수도 있으리라!
모든 종교는 SEX를 금기시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과도한 집착에 대한 경고일뿐 SEX 자체를 금기하는것은 내 개인적 견해로는 신성모독이다.
신은 우리에게 완벽함을 주신듯 하다.
다만 우리가 어리석어서 그 온전함을 스스로 막고 있어 두려움과 고통의 한계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은 아닌지?
맑고 고요한 숨을 쉴수있고 깨끗한 물한잔 마실여유가 있고 / 성숙한 느낌으로 SEX를 할수 있고
고요함속에서 나자신을 볼수있고 정성스러운 밥 한술 뜰수 있다면 삶은 충분하것 아닌가?
그리고 그 모두가 내 마음에서 비롯됨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