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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잎줄기가 아이비처럼 장식하고 있는 부엌 창문 너머로 가는 겨울 빗줄기가 사선을 그으면서 지나간다. 남편은 커피 원두를 곱게 갈아 에스프레소 커피를 내리고 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아닌 커피. 그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었지만, 지난 몇 년 간은 잊고 지냈었다.
다시 커피를 내리는 그의 작업은 시작이 되었고, 잔잔한 재즈 음악 또한 집안에 흐르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햇볕과 비가 번갈이 가면서 재즈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커피 향이 장식을 하니 행복의 나래가 펼쳐지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만나자마자 반한 두 젊은이들이 있다. 그냥 가족처럼 익숙한, 느낌이 편안한 사람들. 그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내 생활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고갈 되어 있었던 에너지가 충전이 되고 건강 또한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다.
몸이 좋아지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을 만난 것이었으나, 병원치료와 더불어 그들의 신선한 에너지가 시너지 효과를 본 것은 확실하다. 모두 다 내 복이려니.
그들과 함께 만나는 하루하루는 기적과도 같다. 그들 중 그가 내려 주는 브루 커피는 살면서 그 어디서도 맛보지 못했었던 아름다운 맛이었다. 약간의 산미가 느껴지면서 깊고도 진한 맛이 나는데, 그 맛에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다.
몸이 좋지 않았던 이유로 즐겼던 커피 마시기를 그만 두었었는데, 그 커피를 마시고 나서부터는 커피의 유혹에 다시 빠져들고야 말았다. 다행히 몸이 커피 맛을 기억하고 있었고, 한 잔 정도의 커피는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말도 있어서 다시 커피 마시기를 시도했다.
지금은 매일 커피 한 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다시 커피 마니아가 되어버린 나. 내 코와 혀의 감각이 다시 되살아났음을 확인하게 된다. 커피 한 잔에 이렇듯 사는 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나의 감성은 그들을 통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잠자고 있었던 감성이 조금씩 눈을 뜨면서 나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 둘 흩어져 나가고 있었다. 몸에 온기가 붙으면서 추위도 덜 타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를 좋아하며, 두뇌를 쓰는 만큼 몸을 움직이면서 균형 잡힌 생활을 하는 그들을 통해 날마다 나는 많은 것을 배워나가고 있다. 조카뻘 되는 나이의 젊은 부부가 나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스승인 것이다.
수많은 영성 책을 읽고도 제대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실천력이 부족했는지 그들을 보면서 알았다. 안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실천하지 못하면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독학한 영성이 헛되지는 않았다. 그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과의 만남 역시 내 끌어당김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언젠가부터 내가 바라는 것은 빠르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지금 나는 그들을 통해 무척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다. 그들 덕분에 나의 생활이 더욱더 윤택해지고 있으니, 그들은 나의 귀인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 또한 내가 그들의 귀인이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귀인이니 그 이상의 것이 어디 있을까?
사람이 재산이다.
그 어떤 재산보다 더 귀한 재산이 사람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 나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해 준 위대한 저자들부터 편안함을 안겨 주는 모든 사람들과 가족들이 나에겐 매우 소중한 재산이다.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풍요를 누리는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이 있어서 나는 부자가 되었다. 지금 나는 의식주 해결에 문제없이 잘 살고 있으며, 어렸을 적 꿈인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보헤미안 삶을 꿈꾸었던 내가 짜증났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렸을 적의 내 꿈이 꽤 현명한 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면서 어렸을 적의 내 꿈에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쌓아 놓은 재산 중에 취할 것과 버릴 것을 하나하나 추려가면서 남은 노후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려 한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에 한 마지막 말을 이 곳에 옮기면서 내 재산인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전한다.
“저는 비즈니스에서 성공의 끝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제 인생은 성공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일을 떠난 제 삶에 즐거움은 거의 없고, 부富라는 것은 제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하나의 익숙한 시설에 불과합니다.
지금 병들어 과거를 회상하는 이 순간에서야 제가 그토록 자부심을 가졌던 사회적 인정과 부도 닥쳐올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어둠 속에서 생명 연장 장치의 녹색 빛과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들으며. 죽음의 신의 숨결이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제야 삶을 유지할 만한 정도의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다음엔 부와 상관 없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관계, 예술, 아니면 어린 시절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
끝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저와 같은 뒤틀린 사람만을 남깁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부가 주는 환상이 아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선물했습니다.
제가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제 평생을 통해 얻은 부가 아니라, 사랑이 가득한 기억들입니다. 그 기억들이야말로 당신과 항상 함께 하면서 함께 빛을 주는 진정한 부입니다.
사랑은 수천 마일을 넘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으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세요. 이 모든 것은 오로지 당신의 마음과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침대가 어떤 침대인지 아십니까? 바로 “지금 병들어 누워있는 침대”입니다.
당신의 차를 운전해줄 사람도, 돈을 벌어다 줄 사람도 구할 순 있지만, 당신 대신 아파줄 사람은 구할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물질은 다시 찾을 수 있지만 한 번 잃어버리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입니다.
우리가 지금 삶의 어느 순간에 있던, 결국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삶이란 연극의 커튼이 내려오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러니 가족에 대한 사랑, 배우자에 대한 사랑, 친구들에 대한 사랑을 소중히 하세요.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잘 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