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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결정, 초중고 뉴질랜드 역사 교육 의무화 - 역사교육 시리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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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무인


자국 역사교육의 긍정적 효과와 기대


위 같은 우려 상황이 분명 있지만, 자국의 과거에 대한 ‘솔직한’ 교육은 이런 우려를 거뜬히 뛰어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자신들의 과거사에 대한 준엄하고 단호한 비판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독일의 예를 참조할 수 있는데 1995년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이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독일도 처음부터 자기의 과거에 대해 치열하게 솔직한 것은 아니었다. 서독은 2차 대전 직후 학교 역사책에서 과거에 대한 묘사는 억제되었는데 이는 이 역사책들이 과거 나치 시대의 교사들에 의해서 쓰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나 뉴질랜드 더 나아가 비슷하게 식민지에서 벗어난 신생독립국의 비슷한 행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런 은폐 시도의 기간을 거쳐 독일은 대낮 천지에 알몸을 드러내듯 자아비판에 나서게 되면서 독일의 모든 학교에서 모든 학생은 의무적으로 과거 자신의 할아버지 혹은 증조할아버지가 선거로 뽑은 나치정부가 6백만 명의 유태인을 잔인하게 학살한 역사를 배워야만 한다. 하지만 이들 학생이 배운 것은 자신의 독일인 정체성에 대한 창피함(shame)이 아니다. 물론 이 학생들이 자신의 (증)조부모에게 당시 나치 정권을 지지하였었느냐고 물어보면 그들로부터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홀로코스트란 역사적 비극은 한 개인이 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니라 당시 유럽과 독일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발생한 과거란 점도 같이 배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난 내가 책임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나는 책임을 져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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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과거 반성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면


이번 초중고에서의 ‘뉴질랜드’ 역사교육 실행은 결코 19세기와 20세기에 마오리를 상대로 한 파케하의 인종차별적 행위에 대해 ‘살아있는’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고 질타하거나 ‘개인적’ 차원의 대리 사과를 기대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이번 역사교육의 목적은 과거 파케하 조상이 당시의 사회적 시대적 상황 속에서 행했던 인종차별 행위들이 21세기인 지금도 표현 방식을 달리하지만, 여전히 존속하고 있으므로 이런 행위들을 가능하게 했던 ‘시스템’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시스템에 대해 19세기 과거사와 연계시키면서 입체적 이해를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교육의 목적은 파케하 학생들에게 평소 자랑스러워 하던 자신의 조상에 대해 ‘네 조상의 죄를 이제야 알겠니? 너와 네 가족이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마오리의 눈물과 피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라”가 ‘아니다’. 


이번 역사교육은 현 뉴질랜드 사회구성원 ‘모두’의 미래를 위한 과거 돌아보기다.  역사의 무대에 가해의 주역처럼 등장하는 파케하뿐만 아니라 가장 큰 피해자로 등장하는 마오리, 그리고 더 나아가 과거 아예 투명인간처럼 취급받았던 파케하도 마오리도 아닌 다른 에스닉 그룹들 - 가령 중국인과 인도인들 - 도 ‘그때는 그랬지!’ 공감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같이’ 보는 것이다. 가해자의 후손도 피해자의 후손도 ‘왜 우리 조상은 저렇게 행동했지? 왜 우리 조상들은 저렇게 당했어야 했지?’라는 질문을 서로 자유로이 던지며 그 답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이 같이’ 찾는 작업이다. 이렇게 같이 답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과거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존속하는 불평등과 불공평한 사회 현상에 대한 시스템적 이해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을 위해 ‘같이’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NZHTA 회장 Graeme Ball의 표현대로 역사적 뿌리를 가진 오늘날의 이슈에 대해 모든 뉴질랜더들이 ‘informed judgement(관련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내리는 제대로 된 판단)’ 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가르치지 않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가해와 피해의 실상을 아는 것은 물론 이번 역사교육의 주 목적 중 하나다. ‘과거 마오리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데’ 정도로 막연하고 중립적으로 포장된 과거 사건들이 사실은 아주 잔인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마오리 개인/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음을 ‘체감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실체폭로 위주의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또 마오리가 부당하게 피해를 당하였다는 내용이겠지’라는 선입견 속에서 역사교육은 역시 지루하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 연결된 사건이 아니라 대상(object)으로만 존재하는 사건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역사교육의 다른 그리고 어쩌면 더욱 본질적인 목적은 과거에 저질러졌던 일부 파케하와 식민정부의 행위가 평범한 뉴질랜드 파케하 대중에 의해 어떻게 수용되고 대를 이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주입식으로 각인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의 노출을 통해 2022년의 학생들은 19세기의 역사적 사건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공동체에 어떻게 여전히 살아 있는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당연히 여겨지는 자신의 지금 일상이 19세기부터 시작된 인종차별과 불공평 심지어 약탈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더 나아가 이후 이런 것들에 대해 언급을 아예 안 했거나 유체이탈 화법처럼 그저 역사의 흐름이라는 제3자적 힘을 인용하기도 했을 자신의 조부모 혹은 부모의 입장마저 헤아리는 과정이 포함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학생이라면 과거는 과거이고 가해자는 조상이고 자신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거창한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자신의 안락함이 옆자리  마오리 학우의 불우한 가족사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역사교육을 통해서 충분히 연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뉴질랜드는 파케하와 마오리 간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벌어지면서 이 갭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그룹 간 격차의 원인과 해소책에 대해 파케하와 마오리 그룹 간 인식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마오리의 지원 정책에 대해 일부 파케하는 ‘퍼주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아니, 과거에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퍼줘야 하는겨?’ 식의 반응이 그것이다. 마오리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조상이 당한 ‘객관적’ 피해와 억울함을 파케하가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피해의식이 쌓이지만 파케하가 이 문제를 대놓고 거론하지 않기에 먼저 문제 제기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꿍한 상황이다. 이렇듯 자칫 인종차별 프레임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기에 파케하는 파케하 나름대로 터부시하면서 마오리의 과거 박해 역사와 현재의 ‘마오리 특혜’를 공적 공간에서 논하는 것을 꺼리는 현실이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적 공간’에서는 ‘학문적 탐구’라는 명목으로 비록 어린이와 청소년기의 학생이지만, 아니 어쩌면 ‘학생이기에’ 객관적 증거에 기반을 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함과 동시에 이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조상을 통해 자신의 ‘에스닉 정체성’을 담담하게 조감도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역시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에스닉 정체성을 조감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반대편 에스닉 그룹 학생과 주관과 객관을 섞어가면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우리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 사회적 지위와 틀 속에서 존재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아직 잠재성과 가능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학생들은 소위 계급장 떼고 알몸으로 맞짱 토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런 토론을 통해 ‘하, 듣고 보니 네 입장도 이해가 간다’라는 말이 상대방 입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균형은 결국 사회적 그룹 간 ‘힘’의 균형이지만 이런 긴장감 높은 균형보다는 이렇게 대화를 통한 힘의 균형이 바로 위정자들이 겨냥하는 nation building을 통한 사회적 융합(social cohesion)의 이상적 형식일 것이다.


이런 공개적 민낯 토론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결과물 중 하나는 한 에스닉 그룹이 다른 에스닉 그룹을 타자(other)로 바라보지 않고 우리(we)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단초가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nation은 많은 이질적 others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we가 존재하는 것이다. 마오리에게 친절하고 동정적인 파케하라도 그 출발은 마오리를 불쌍한 other로 바라보는 온정주의(pertanalism)일 수 있는데 역사교육 시간을 통해 다양한 에스닉 그룹 - 더 나아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그룹을 포함해서 - 은 서로 조감도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서로의 존재를 숲에 존재하는 각각의 개별적 나무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조감도적 인식을 통해 파케하 학생이 자신의 ‘백색(whiteness)’이 더는 ‘살색’이라는 default가 아닌 흑색, 황색 등 여러 피부색 중의 하나로 인지하는 ‘eye-opening’의 시간을 갖게 된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진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현재도 이어지는 불평등과 불공평의 두 당사자가 이 시스템 창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자신들 조상의 행적에 대해 ‘같이’ 돌아보는 작업이 없을 때 발생할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뉴질랜드뿐만 아니다. 미국은 자신의 흑인 노예 역사에 대한 뼈를 깎는 성찰의 부재 탓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오늘날도 여전히 흑인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폭력에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흑인 문제를 통해 본 역사교육 부재의 결과


2019년의 워싱턴포스트의 취재기사는 최근의 BLM운동에서 보이는 미국 백인사회의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을 불편하다 못해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고통스러운 실체를 가진 흑인 노예 역사를 아예 외면하거나 어떻게든 합리화와 정당성으로 미화하려고 했던 백인 기득권층으로부터 그 원인을 찾는다. 시기적으로 비슷한 1863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과 1840년의 뉴질랜드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을 따르면 이후 미국 흑인과 뉴질랜드 마오리는 백인들과 평등하게까지는 아니어도 유사 동등한 사회적 경제적 삶을 살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미국의 흑인도 뉴질랜드 마오리도 과거와 질적인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 채 여전히 차별적 삶을 살고 있으며 두 그룹 다 수입과 부에서 백인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또 사법제도에서도 불균형적으로 높은 형사처분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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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티브이 미니시리즈 ‘뿌리’의 한 장면


미국은 지금까지의 뉴질랜드처럼 전국 단위의 통일된 역사교과서와 커리큘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주 혹은 학교의 재량권으로 학교에서 실시할 미국 역사교육의 내용을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미국 공립학교에서 노예제에 관한 교육은 낙제점에 가까울 정도로 교사도 꺼리고 교과서 내용도 겉핥기 식으로 구성되었을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죄책감을 유발하고 외면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불과 4년 전 미국 교과서도 성인남녀는 물론 어린이까지 쇠사슬로 묶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미국으로 강제로 끌고 온 것을 ‘노동자(workers)를 아프리카로부터 들여왔다’로 표현하고 2019년에는 노예경매(auction) 재현이 학생들이 노예제를 배울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있을 정도다. 또 1970년대 버지니아 주의 교과서는 미국 노예제가 ‘니그로(Negroes)에게 아프리카에서 부족 간 싸움하고 있을 때보다 나은 문명화된 삶을 제공해주었다고 서술할 정도였다. 미국 백인들이 흑인 노예의 실상에 대해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학교도 교과서도 아닌 한국에서도 방영되었던 1977년 티비 미니시리즈 ‘뿌리(Roots)’였다.                      <다음호에 계속>



■ 김무인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사회 초년생활을 한 후 뉴질랜드로 이민 왔다. 새계화의 조류 속에서 다인종 다문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에 관심이 많고 더불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팽개쳐진 사회적 가치의 부활을 위해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탐구 할 요량으로 글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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