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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는 ‘쑥’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식물이 40여 종이나 있단다. 쑥떡을 해 먹는 일반 쑥(princeps)을 중심으로 개똥쑥(annua), 인진쑥(사철쑥 capillaris), 참쑥(dubia), 황해쑥(argyi) 등이 있다. 단군신화에 보면 인간이 되고 싶은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로 100일을 견뎌야 하는 과제를 받는다. 은근과 끈기로 견딘 곰은 여인으로 변태해 우리의 조상, 어머니가 되었다. 우리는 쑥을 먹은 곰 할머니의 자손인 것이다.
시골에 나서 자란 나는 쑥과 친숙하다. 봄 도다리에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는데 이른 봄에 먼저 나는 쑥에 알 밴 도다리 한 토막이 들어간 도다리 쑥국은 남도의 별미다. 귀하기도 하거니와 입맛이 살아나는 보양식이다. 약간의 들깨가루를 넣은 국물 한 방울도 남기기에는 아깝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쑥으로 털터리를 해서 먹었다. 쑥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묻혀 찐 것인데 그것도 맛있었다. 쑥밥은 곤드레나물밥 같은 것이다. 쌀이 귀해 밥에 넣어 먹은 것은 보리, 콩, 팥, 조 등의 곡식이다. 또 감자와 고구마 등을 넣어 먹었고 심지어 무를 채로 썰어 넣어 먹었으며 쑥밥은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그만큼 쑥이 많이 나고 잘 자라기 때문이다.
봄에 쑥을 캐서 삶아 말리면 아주 보관이 쉽다. 이걸로 구정에 쑥떡을 만들어 먹는다. 쑥은 조개를 넣어 국을 끓이기도 하였다. 배탈이 났을 때 쑥 즙을 내어 먹으면 나았다. 쑥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는 일은 없었으니 약으로 쓰일 만하다. 약재로 쓰는 약쑥은 음력 5월 단오에 채취해 말린 것이 가장 효능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올해는 양력으로 6월 14일)이며 수릿날이라고도 하는데 더운 여름의 시작에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모내기가 끝났으니 허리 좀 펴고 그네를 뛰거나 창포로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다. 단옷날 오시(午時)에 뜯는 쑥이 약효가 좋다고 해, 이때 쑥을 뜯는 풍속이 있었고 쑥의 강한 향이 부정을 막아 준다고 믿었기에 쑥을 사립문에 걸어두기도 하였다.
그동안 쑥떡을 사다 먹었다. 해풍을 맞은 쑥과 찹쌀에 팥 앙금을 넣고 콩가루를 입힌 쑥떡이 하나씩 먹기 좋게 포장되어있어서 샀다. 맛도 좋다. 엊그제 교외에 사는 지인이 점심을 초대해서 갔다가 주위에 무성한 쑥을 뜯어왔다. 떡방앗간에서 찹쌀 2되를 더해 쑥떡을 만들었다. 냉동시켜두고 하나씩 꺼내어 먹으려 한다. 한 끼 식사로는 그만이다. 약간의 과일과 요거트를 넣어 발효시킨 우유에 샐러드 조금이면 우수한 한 끼 식사다. 사람들이 칼로리 높은 단백질 중심으로 살 안찌고 건강하게 먹을 줄을 안다. 나는 어쩌다 보니 밥통이 줄어들었는지, 힘 드는 일을 안 해선지 많이 먹지 않아도 되니 1일 2식으로도 가능하겠다.
음식에 관해서 들은 이야기는 3식이다. 은퇴 후에 집에 틀어박혀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달라해서 챙겨먹는, 얄미운 남편이 삼식이란다. 반찬타령에다 어디를 쏘다니냐고 잔소리하는 남편은 간이 배보다 큰, 천지 분간을 못하는 사람이란다. 나의 삼식은 절식(節食), 험식(險食), 조식(粗食)이다. 배를 적게 채우고, 가공하지 않은 채로 먹고, 기름지지 않은 음식을 먹으라는 말이다. 절식이란 절약하듯이 적게 먹되 배고프면 간식을 하면 된다. 적게 먹되 오래오래 씹으면 몸이 가뿐하고 소화불량이 있을 리가 없다. 험식이란 쌈을 싸서 먹거나 과일을 입으로 베어 먹거나 질긴 오징어라도 질겅질겅 씹어 먹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턱 근육이 발달하고 영양소의 파괴도 적다는 것. 믹서에 갈아서 먹으면 우선은 먹기 좋겠지만 씹어가며 맛을 느끼고 침과 음식이 충분히 섞이는 것이 얼마나 소화에 좋은 일인가? 조식이란 영양가가 적은 식품을 먹는 것이니 배부르게 먹는 다해도 살찔 일이 없다. 그러나 골고루 먹어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음식의 2/3는 싱싱한 식물성으로 섭취하고 발효식품을 즐겨먹도록 권한다. 특히, 유산균을 매일같이 챙겨 드시면 뱃속이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것처럼, 일도 3사를 권한다. 절사(節事), 험사(險事), 조사(粗事)다. 은퇴 후에는 일을 적게 하라는 것이다. 나는 오지랖 넓게 살았다. 거절이 쉽지 않아 남의 일로 부대끼며 살았다. 이제, 일을 줄이니 실수도 줄고 여유가 생긴다. 험사(險事)란 땀 흘려 몸을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란 말이다. 이열치열이고 매일 만보는 걷되 천보는 달리면 좋다. 그러면 밥맛이 있다. 조사(粗事)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일도 챙겨서 하자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거드는 일, 이웃을 챙기는,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도움을 받은 그들은 진정으로 고마워할 것이다.
오랜만에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났더니 쑥떡을 한 보따리 내어 놓는다. 너무 좋아서 너도 먹어보라고 챙겨온 것.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이드니 좋은 친구가 제일이다. 그런데 쑥떡에 또 쑥떡이니 딤채는 쑥떡으로 가득하다. 혹여나 쑥떡으로 세상이 ‘쑥덕쑥덕’할까 걱정이다. 한 동안 쑥떡을 즐겨먹었으니 면역력이 강화되었으리라 싶다. 있는 쑥떡으로 곰처럼 백날을 먹으면 인간에서 신선이라도 되려나? 그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쑥대머리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