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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권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9)
지난 2012년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파스텔로 판지에 그린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 하나가 1억1,990만 달러(1,351억 원)에 판매되어 역사상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해질 녘,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뭉크는 공포에 질려 다리 난간으로 다가갔다. 그는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면서 자연의 비명을 들었다. 낭만적인 붉은 노을마저 자연재해로 느낄 만큼 불안에 떨었던 인간 뭉크……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2.12 - 1944.1.23)는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인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작가 이다. 『절규(絶叫, The Scream)』는 1893년 작품으로 노르웨이 오슬로의 이케베르크 언덕에서 핏빛의 하늘을 배경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을 묘사한 그림이다. 최초의 유화 작품을 그린 뒤에 3점의 작품을 더 제작해서 총 4점의 연작(連作)이 있는데 파스텔로 채색한 네 번째 작품은 노르웨이의 억만장자(億萬長者) 피터 올슨이 소장하고 있다. 바로 이 작품이 소더비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것이다.. 또한 뭉크는 석판화(1895년)로도 제작하였다. 『절규』 연작은 1994년 4명의 괴한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의 작품을 훔쳐간 일이 있었다. 그들은 “Thank you for the poor security”라는 메모를 남겨 놓고 보안 상태를 비웃으며 유유히 사라졌으나 다행히 3개월 뒤 괴한들은 잡혔고 작품은 손상되지 않은 채 돌아와 지금까지 전시 중이다.
『절규』라는 작품하나가 이토록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 내면의 공포와 절망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뭉크 자신인 동시에 이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들 자신이기도 하다. 그러면 뭉크의 내면세계는 어때서…….
뭉크의 어린 시절 불행했던 가족사를 돌이켜 보며 그의 내면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고 열 네 살 되던 해에는 여동생마저 같은 질병으로 사망했다. 뭉크 자신도 갖가지 질병으로 고생했으며, 몇 년 후엔 다른 동생도 사망했고, 또 다른 여동생은 우울증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어머니 대신 그를 보살피던 누나마저 결핵으로 어머니 사망 9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군의관이었던 아버지는 바빴고 신경질적인 인간으로 변했으며 뭉크가 20대 때 사망했다. 30대 땐 남동생마저 잃었다. 뭉크는 어머니와 누나가 죽은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았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단 한순간도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질 못했다. 뭉크의 초기작품 『병든 아이(1885-1886)』는 폐결핵으로 죽어 가던 누나를 떠올리며 병든 소녀가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뭉크의 그림은 처음에는 독일 예술계가 쪼개질 정도로 후 폭풍을 일으켰으나 오히려 이 소동이 뭉크의 이름을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가게 했고 유럽에서만 100회가 넘는 전시회를 열었다. 뭉크는 생전에 제대로 인정을 받았고 큰돈도 벌었다. 그러나 가족이 하나 둘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고 죽음이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리라는 망상에 시달렸다. 그런 상태에서 뭉크는 절망, 절규, 질병, 늙음에 관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족을 모두 떠나 보내버린 뭉크의 영혼을 달래 줄 대상은 오직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뭉크의 생애 중 등장하는 세 연인과의 관계도 모두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뭉크는 여성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며 두려워했고 자신에게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우울증에서 온 알코올 중독은 그를 계속 따라다녔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뭉크는 마흔 살에 이미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칠 정도로 성공을 거뒀지만 그 과실을 누리기는커녕 은둔을 택했다. 오슬로 교외에 넓은 땅을 사들여 그 안에 작업실과 큰 저택을 지었다. 그곳에서 홀로 지내며 마지막까지 그림에만 몰두했다. 뭉크에게 작업실 바깥 세상은 고통, 공포, 혼란, 질병으로 가득한 생지옥이었다.
히틀러 나치정권이 협력을 요청했으나 거절하자 나치는 독일에 있는 뭉크의 그림을 모두 헐값에 팔아버렸다. 뭉크는 나치에게 그림을 뺐기지 않으려고 농가 깊숙한 창고에 숨겨둬야 했다. 1944년 나치가 망하기 직전 뭉크는 폐렴에 시달리다 80세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가 세상을 하직하며 내뱉은 말, “내 인생은 꼭 낡고 썩은 배가 폭풍우 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듯 했다”. 뭉크의 생애는 그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오래 살았는데 무엇이 그의 생명 줄을 이어가게 했을까? 그는 그림을 사랑했고 자기 그림을 스스로 소장했다. 평생 동안 2만5천여 작품을 그렸는데, 이는 그의 작가 생활 60년 동안 매일 한 점 이상을 그렸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사랑의 힘이 그가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뭉크가 떠난 후 그의 작업실을 정리하던 인부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유화, 석판화, 실크스크린 등 2만 여점의 작품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외로움 때문에 자신의 그림을 모으는데 열중했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지낸 30년 동안 세상과 소통을 단절하고 지냈지만 밤낮으로 라디오를 켜놓고 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뭉크의 작품들은 오슬로의 국립미술관, 뭉크미술관, 베르겐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고 있으나 작품량이 많아 순환 전시되고 있다.
“예술은 자연의 또 다른 면이다. 예술의 결과물은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서 온다. 즉 예술은 인간의 신경, 마음, 머리, 눈을 통해 나오는 것들의 형상이다.” 영혼이 깃든 예술 작품은 작가가 죽은 후에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