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
파카 만년필로 손 편지를 써 보내고 싶고
아저씨용 삼천리자전거로 동네를 돌고 싶고
엿장수 가위소리에 병 하나 들고 나가 엿 한 가락과 바꾸고 싶고
지갑에 넣은 마지막 비상금 지폐 한 장을 사용해 보고 싶고
볼펜의 잉크가 다 떨어진 순간을 만나고 싶고
홑청 새로 입힌 이불 덮어쓰고 냄새 맡고 싶고
주번 나와서 칠판지우개 털어오라는 선생님 말씀 듣고 싶고
바지 뒤가 터져 윗도리 벗어 감싸고는 스릴을 느끼며 걷고 싶은 날
학교 나서는 길에 아궁이에서 데워진
운동화를 신겨주고 목도리 단단하게
둘러 주는 어머니가 내 곁에 있는 날
전기도 없는 산골 집에서
해 질 녘 잠들었다가
아침에 눈 떠 비가 오면
할 일 없어 다시 돌아눕는 날
집 둘레 너도바람꽃, 구슬댕댕이, 꽝꽝나무
재밌게 풀꽃나무 이름 알아가며
먼지 낀 내 이름은 잊히고 싶은 날
먹이 찾아 내려온 겨울 산 짐승에게
감자 고구마 던져주고 내년에는
그 녀석들 위해 더 많이 심고 싶은 날
장날에 텃밭 푸성귀 갖고 나가
후하게 쳐서 팔아
고등어 한 손 사서
만찬을 생각하며 돌아오고 싶은 날
올 사람 없는 산골에
아주 작은 마루깔린 예배당 짓고
매 주일 교인은 아내와 나뿐
콩기름 칠한 예배당 마루 냄새 맡으며
풍금소리 듣고 싶은 날
이런 기쁨 잊고 살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