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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이 지나고 있다. 매년 5월이면 최루가스 자욱한 서울이 연상되는 이 날. 반세기 전 청계천 평화시장 골목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노동법과 함께 스스로를 화형 시킨 청년 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유족이 그의 일기장 4권을 공개 했다.
“내일을 위해 산다. 절망은 없다.”
그의 일기 첫 페이지에 꾹꾹 눌려 쓰여진 문장을 대하며 한 시대를 살아간 청년의 치열한 호흡을 느낀다.
▲ 5월 1일 공개된 전태일 열사의 일기 첫 페이지 (출처: 뉴스원)
자본의 시대. 한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자본 축적의 시간은 참혹하다. 그 과정은 반드시 그들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에 속한 누군가에게 억압과 착취의 고난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급격한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지던 18 - 19세기 영국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노동의 직접적 착취의 대상이 되었고,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흑인 노예들이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농장주의 억압과 착취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햇빛 한줌, 환기조차 허락되지 않던 빼곡한 봉제공장들 속에서 채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야 했던 어린 여공이 삼켜야 했던 좌절. 하루 15시간 이상의 격한 노동시간과 허리조차 펼 수 없던 이중 다락방 공장에서 겪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고통. 그럼에도 하루 생활조차 불가능한 절망적인 임금을 손에 쥐며 닦아야 했던 서로의 눈물. 이 모두는 우리 한국 사회가 경험 해야 했던 억압과 착취의 현장 이었다.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의 초석은 1960 - 70년대 산업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으로 겹겹이 쌓여져 있다는 어느 신문의 사설은 거짓도 과장도 아닌 그대로의 사실인 것이다.
▲ 평화시장 내부 모습 재현, 청계천 박물관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 전시 ⓒ투데이신문
자유 경제 체제의 바이블이 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공산체제의 초석이 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모두 18 - 19세기 억압 받던 어린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착취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들이 제시한 관점과 방안은 각 체제 안에서 사상이 되었고 반대로 상대 체제로부터 끊임 없는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제기한 인류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어느 체제에도 더 이상 생기 있게 살아 숨쉬지 않는다. 우리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탐욕의 고리가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에선 모두를 억압하는 독재의 그늘만 남아 있는 지금.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제기한 ‘인류애’의 거대한 명제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
전태일이 꿈꾸던 내일은 50년의 시간을 흐르며 수없이 존재하던 비인간화의 고리를 끊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지와 높은 임금이라는 성취를 이루었지만 이는 여전히 비 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불안과 플랫폼 청년 노동자들의 위험한 질주를 담보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고통 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사회와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할 필연적 이유이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이루었다 생각 한 모든 것은 이처럼 누군가의 절대적 희생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음을, 그렇기에 지금 우리 이웃의 고통에 눈 감을 수 없음을 우리는 비로소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전태일의 내일은 그가 고통 당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보인 끊임 없는 자기 희생과 연대에 의해 마침내 생명력을 갖는다. 세상 무엇도 통제할 수 없는 탐욕의 고리 속에서 자신을 내려 놓을 때 그제야 절망은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절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