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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호주 등에서 아시아에 대한 인종혐오 범죄가 증가하고 있고, 이로 인해 교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뉴스를 매일 접하고 있다. 이번주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볼티모어에서 주류 매장을 운영하는 한인 자매가 벽돌을 들고 침입한 남성에서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데 이어,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아시아계 노인 2명이 대낮에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사건들을 마주할 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분노로 가득차 있는지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은 기본적으로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분노”는 최근 한국 사회의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자신의 늦은 귀가에 대해 잔소리하는 누나를 살해한 사건, 지나가던 행인에게 천 원을 달라고 구걸했는데 이를 거절당하자 흉기를 휘둘러 처음 본 사람을 살해한 사건, 자신이 게임을 할 때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기를 살해한 사건,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원아를 폭행한 사건, 이 모든 살인 사건이 이번 주에만 벌어진 일이다. 한국도 점점 흉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돼 간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서로가 서로를 싫어했었을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에 따른 신조어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꼰대 기질을 가진 나이 많은 어르신을 싫어한다는 뜻의 “실버혐오”, 아이를 키우는 무개념 엄마들을 가리키는 “맘충( ‘엄마’를 뜻하는 영어 Mom에 벌레 충(蟲)을 더해 버러지 같은 엄마라는 뜻)”, 한국 남성들을 비하하는 “한남충”, 주제에 맞지 않는 사치를 즐기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된장녀” 등 분노에 찬 한국인들은 세대 간, 젠더 간의 갈등으로 편을 갈라 서로를 헐뜯고 비방한다. 최근에는 “여자도 징병 대상에 포함해 달라”는 주장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왔다. 20대 남녀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같은 한국인의 상태와 오늘날의 세태를 반영한 영화와 드라마들도 쏟아진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고공행진 하는 요즘 드라마 “빈센조” “펜트하우스” “모범택시” “미스 몬테크리스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등장인물들이 모두 서로에게 분노해 복수를 하는 내용을 다룬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복수의 과정이 잔인하게 묘사될수록,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 더 독하게 연출될수록 시청률은 폭발한다. 한국의 미와 맛을 담았던 “대장금”과 같은 시대극은 방송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고, 예스러움과 용맹스러움을 담은 정통 사극도 어느 순간부터 방영되지 않는다. 연인끼리 달달한 사랑을 속삭이는 멜로물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렸다는 이유로 모욕죄로 국민을 고소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을 보면서 분노는 성별, 나이, 지위에 상관없이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한국에 나왔을 때와는 또 다른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며 나도 모르게 가끔 스티브 원더의 유명한 가사말 “in it, but not of it(그 곳에 있지만 그 곳에 속하지는 않는다)”을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