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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권역은 둘레길 ①구간주천-운봉(14.7km), ②구간운봉-인월(9.9km), ③구간 인월-금계(20.5km)를 포함한다.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며 걷는 길이다. ②구간에 황산대첩비, 국악의 성지, 송흥록 생가 등 둘러보면 좋을 곳들이 많다. ③구간 중간쯤에 백장암, 더 가면 금대암이 있다. 드넓은 다랑논과 산촌마을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진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조(宗祖)는 도의선사다. 간화선의 선종이다. 부처님이 영산회에서 말없이 꽃을 들어 보였을 때 오직 한 사람,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지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 불교사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이심전심(以心轉心)’이다. 선종의 기원은 거기서 찾는다. 선종은 달마로, 여섯 조사로 내려온다. 784년 당에 유학갔던 신라의 두 승려가 법을 받아 귀국한다. 도의선사는 장흥 가지산에 보림사를 열었고, 또 한 사람 홍척대사는 지리산에 실상사를 창건했다. 통일신라 후기 ‘왕즉불(王卽佛)’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깨고 노비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민즉불(民卽佛)’의 혁명적 깃발을 펄럭이며 이 땅에 구산선문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실상사 앞마당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옛 석탑과 석등, 극락전 옆 수철화상(홍척의제자)의 탑과 탑비, 국보인 백장암의 삼층석탑 등 당시의 유적이 산재한 것, 백성들이 다니기 좋은 평지에 위치하며 절 앞에 논밭이 펼쳐진 것들이 다 부처를 민중의 높이로 끌어 내린데서 연유한다.
▲ 실상사 입구의 석장승
실상사는 7암자 순례 길의 시작이다.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 지리산 북부 삼정능선을 오르는 약 16km의 숲길이다. 이른 아침부터 빠듯하게 걸어야 다 돌 수 있다. 약수암은 실상사 산내암자로 비로소 산사에 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불교 박물관장을 지낸 흥선스님이 혼자 산다. 워낙 까칠한 분이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야 물이라도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다. 삼불사는 단아한 암자다. 근처에 ‘견성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다. ‘까마귀도 경(經)을 외며난다’는 구전이 내려오는 곳이다. 500m 쯤 오르면 초록색 지붕의 문수암이 나온다. 풍광이 북으로 탁 트여 있다. 토굴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는 맛이 제대로 난다. 돌층계를 오르면 천인굴이 나오고 바위에 흐르는 물소리가 동굴을 울린다. 곧 얼어 봄까지 고드름이 달려 있을 것이다. 문수암에서 상무주암을 거쳐 영원사로 가는 길이 이 코스의 백미다.
▲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길목마다 말라 죽은 고사목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군락, 바위를 덮은 검푸른 이끼들, 고사리나 부처 손같은 양치식물들이 어떤 시원(始原)의 느낌을 준다. 상무주암(1,162m)은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800년 전 보조 지눌이 깨달음을 얻은 뒤 보림(保任)하면서 돈오점수과 정혜결사의 기초를 닦은 곳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因地而倒者 因地而起)’정혜결사문의 첫 문장이 여기서 탄생했다. 현기스님이 30년 넘게 외따로이 살고 있다. 그 긴 세월을 어찌 홀로 사셨느냐고 물었더니 “한 사나흘 지난 것 같아”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고개 넘어 영원사는 수 많은 고승들이 머물다간 천년가람이다. 절에 내려오는 『조실안록』에는 부용영관, 청허휴정, 사명유정, 청매인오 등 조사 109명의 법호와 행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산기슭을 건너 서산대사의 제자 청매스님이 창건한 도솔암이 있다. 7암자 길은 거기서 끝난다. 많이들 도솔암에서 실상사로 내려가기도 한다.
■ 실상사는 신라 말 흥덕왕 3년(828년)에 홍척국사가 개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가람이다. 1,2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실상사는 신라시대 석탑, 석등, 철불 등 국보 1점, 보물 11점과 다수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으며 유서 깊은 암자도 있다. 실상사는 천년 선종가풍을 온고지신하는 새로운 전통을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행과 삶이 하나 되는 사부대중 공동체를 가꾸기 위해 생명공동체 운동, 인드라망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유기농업, 대안교육, 마을공동체를 가꾸기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불교를 쉽게 공부할 수 있는 ‘꿈 깨는 인생학교’, 지리산 둘레길을 스님과 함께 걷는 ‘길 위의 인생공부’ 등의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실상사 템플스테이는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실상사│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063-636-3191 l www.silsang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