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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은 한적하기보다는 얼핏 을씨년스럽기조차 했습니다. 아마 진한 겨울비 냄새를 머금은 눅눅한 공기가 처량맞은 감성을 사방팔방 대류시키기 때문인지도 몰랐습니다. 듬성 듬성 구부정한 등허리들만 눈에 들어오는 테이블들 한 켠으로 약간 창백한 얼굴을 하신 그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지난 4개월동안 가르쳐 온 A의 어머님이셨습니다.
“안녕하셨어요. 오랫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죠?”
구지 건강을 여쭐만한 상황도, 그럴 입장도 아니었지만 예의 그 처량맞은 겨울 감성은 틀에 박힌 첫인사 말고는 딱히 무언가를 들먹일수 없게 했습니다.
“네. 저야 항상 똑 같지요. 선생님도 잘 계셨지요?”
막역한 친분이 없는 누군가와 친근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저처럼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에게는 기실 고역이 아닐수 없습니다. 억지로 지어 올리는 입가의 미소가 눈 밑 근육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이니.. 그 모양을 보고있는 상대에게도 분명 맘 편한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어쩔까요.. 아무리 사람 대하기가 편하지 않더라도 알릴 것은 알려야하고 정할 것은 정해야 하니까요.
“오늘 뵙자고 한 이유가..”
늦은 저녁 롱블랙 한잔이 얼마나 후회스러울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무어라도 더운것이 입에 들어가야 앞으로 뱉아 낼 차가운 말의 냉기를 중화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롱블랙은 이름처럼 길게 늘어지는 쓴맛을 남겼습니다.
A의 어머님은 어느정도 체념하신듯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셨고 저는 그 얼굴에 실린 무게에 눌려 또 한 모금의 롱블랙을 들이켜야 했습니다.
“실은 A가 계속 이 과정을 공부한다는게.. 솔직한 저의 입장으로는 가망성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사실 시간 낭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눈에서 광선을 뿜을듯 노려보며 ‘그게 무슨말이냐. 아직 반년도 더 남지 않았느냐’며 분노를 뿜어내시는게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람 선하신 A의 어머님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커피가 담긴 종이컵만 천천히 돌리고 계실 뿐이었습니다. 이미 예상했던 답을 말하고 듣는 두 사람 사이엔 후회, 반성, 슬픔, 회한, 염려.. 등등이 수북히 쌓아놓은 프렌치프라이처럼 얽히고 설켜 둥둥 떠다니는 듯 했습니다.
종이컵이 열 몇바퀴를 돌고나서야 A의 어머님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더 이상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겠습니다. 어렵고 어렵다고 미리 듣기는 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다 제 탓이지요. 그 동안 애는 애대로 단념하지 못한체 속앓이를 했고 저는 저대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는데요.. 차라리 잘 됐네요. 그래도 선생님께서 가르쳐보시고 판단해 주신거니까 제가 오히려 여기서 중지해야 할 이유를 찾은거 같습니다. 그 동안 많이 애 쓰신것 A한테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뵐 수 있겠지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해야 할 말이라서 꾸준히 연습이라도 하셨던 듯 A의 어머님은 툭툭 털어내듯 ‘체념의 변’을 말씀하시고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아마 지난 몇 개월간의 지겨운 고민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이 크신건 아니었을까... 생각됐습니다. A의 대학생활이 그 정도로 애처로웠고, 그걸 지켜보시는 어머님의 마음 또한 그 정도로 힘들었다는 반증이었겠지요.
남은 롱블랙을 털어넣듯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무언지 모를 좌절감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서 혼자서 책이나 좀 읽어볼까 했던 생각을 접고야 말았습니다.
묵직한 유리문을 밀고 주차장으로 나서니 목 언저리로 찬 바람이 선뜻했습니다. 한동안 목을 따뜻하게 하라던 한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나 가벼운 스카프를 꺼내 둘렀습니다. A가 할아버지 같다며 놀리던 그 스카프입니다. 불과 몇 개월 전의 A는 그렇게 말도 많고 명랑하고 적극적이고 스스럼이 없는 스물 언저리의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엔.. 축 쳐진 어깨로 책상에 앉아 공허한 눈빛으로 낯선 글자들을 공략하는 ‘패장’의 형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잘 될 턱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말고는 세상 어느곳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그렇게 예정된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희박해져가는 가망성에 막막해 하던 저는 어머님께 만남을 요청했고 그러잖아도 고통받는 딸의 모습에 힘겨워하시던 어머님은 흔쾌히 약속을 잡으신 겁니다. 어찌보면 스스로를 사그러트리고 있는 청춘을 구제해야만 한다는 공통의 사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A는 참으로 명민한 아이였습니다.
오클랜드 대학교 Biomed에 입학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A를 만났을 때, 우선 그의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에 기분이 좋았고 쉼없이 재잘대는 목소리에 웃음이 났습니다. 살림꾼 떼까치마냥 어디서 그런 재미난 얘기거리들을 물어오는지 수업을 시작하고 십분이 넘도록 친구얘기, 고등학교때 사건, 수업하러 오다가 본 일 등등.. 쉼없이 떠들어대는 친구가 바로 A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몰랐습니다. A가 너무도 부담스러운 공부내용 때문에 수업에 오기를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두려움을 나름 떨쳐내 보겠다고 짐짓 밝은체하며 깔깔댔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A의 심리상태를 짐작하지 못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비단 그의 행동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A는 총명했고 논리력이 뛰어났습니다. 오늘 가르쳐 준 내용으로 다음 수업의 줄거리를 가늠할 줄 알았고 한번 가르쳐준 내용으로 주변 지식과의 관계를 유추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머리가 이 정도니까 부모님께서 그냥 시골에서 자유롭게 키우면서도 걱정을 안하셨구나!’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지능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미리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비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지 결국 굴복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처음 학기의 중간을 지나며 치르었던 Mid semester exam(중간고사)에서 전 과목에 걸쳐 겨우 평균에 근접하는 점수를 받았을 때 A의 실망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 또한 제가 가르치는 ‘의료화학’ 점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많이 속상했지요. 하지만 숫자로 적혀진 점수보다 더 크게 A를 놀래킨 것은 그 평균점수라는 것이 본인의 예상에 비해 너무 높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문제를 검토해가며 가늠해 본 평균점수가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었으니.. 자신은 최선을 다 해 보았자 결국 다른 친구들의 들러리가 되고 말 것이라는 절망감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A는 스스로의 고등학교 시절을 후회했습니다. 아니 그것은 후회라는 단어로는 적절히 표현하기 힘든.. 어떠한 ‘한탄’과도 같았습니다.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을 너무 안일하게 보낸것 같다며 시작한 그의 넋두리는 그런 자신에게 박수를 쳐 주고 칭찬을 해 주었던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원망으로까지 번져갔습니다. 자기가 자란 시골 동네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이 대학에 들어가 공부가 힘에 부치게 될 것이라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그저 엄청나게 똑똑한 천재 동양소녀였고 그래서 동네의 명물이었다 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놀러다니기 바빴고 학원이나 과외, 온라인 수업 등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중간고사 점수를 받은 이후.. 이제 A는 더 이상 수업시간에 신나게 떠들어대지 않았습니다. 즐거운 사건들로 가득했던 그녀의 학창시절은 인생의 초반전을 힘겹게하는 원수같은 기억들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어두워져갔고 그러잖아도 가녀리던 체구는 말라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불어 수업도 점점 활력을 잃게되어 수업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가는 듯 했습니다.
A의 공부가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첫 수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NCEA Y12 내용을 질문했을 때 눈만 껌뻑거리며 어리둥절해 하던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하늘이 내린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라고 이미 단정을 지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Y13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뉴질랜드의 명문인 오클랜드대학교에, 그것도 가장 어렵다는 Biomed에 입학한 학생이 Y12 내용을 보고 금시초문이라 한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NCEA 과정은 Y11에서 Y13까지 올라가는 동안 같은 이름의 챕터를 반복해가며 수준을 올려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Y12를 모른다는 것은 결국 Y13 내용 또한 하나도 모른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Biomed Chemistry는 의대진학을 위한 4개의 core paper 중 하나이고 그 수준이 Y13을 상회하는 것은 물론이요 스칼라수준까지 훌쩍 넘어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문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시간으로 따져본다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최소 2년 이상 뒤쳐져 있다고 말할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참으로 의아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상태에서 고등학교 학점은 어떻게 취득했을까요? A의 재기발랄한 설명은 이랬습니다. 오클랜드에 있는 대부분의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시골의 학교들은 각 학년에서 이수해야 할 필수학점에 맞추어 과목을 신청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여유분이 없는거지요. 그래서 한 페이퍼라도 낙제를 하게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문제를 걱정하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학교 선생님들이 복잡하고 점수취득이 어려운 External paper가 아니라 학교 내에서 채점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손쉬운 Internal paper들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A의 경우에도 3년간 거의 Internal paper만 공부를 해서 학점을 받았고 따라서 External paper에 관여된 내용들은 거의 모른다고 했습니다. 매년 External 시험이라곤 과목당 달랑 하나밖에 치른적이 없었고 그것도 ‘Achieved’가 목표라서 기본중의 기본 내용만 대충 암기해서 시험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Internal 이건 External 이건 무슨 관계가 있는냐.. 화학이면 같은 화학이고 생물이면 같은 생물이지 어차피 같은 학년의 같은 과목에서 큰 차이가 있겠느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Internal paper는 정식 교과내용이라기 보다는 ‘교과활동평가’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준이 함께 상향되는 교과 학습 내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내용들에 관련된 활동을 하거나, 실험을 해서 보고서를 쓰거나, 관련된 자료를 읽고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거나 하는 등등의 활동평가라는 것이지요. 예를들어 어떤 학생이 구구단을 배웠다면 External은 숙지한 구구단을 활용해 주어진 수학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고 Internal은 곱셈이 발견되고 발전하게 된 과정에 대해 지시된 방향으로 조사한 후 리포트를 쓰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있듯 NCEA 과정이 대학 공부를 위한 과정으로서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용어라도 듣고 배울수 있었던 External 시험은 거의 건너뛰고 Internal 시험만으로 대부분의 학점을 취득했으니... 대학교 입학 당시 A의 학력 수준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학력의 굴레는 A의 지능과 노력, 부모님의 헌신과 지원으로도 끊어내지 못하는 올가미가 되고 만 것이었지요.
입학 후 처음 몇개월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셨던 A의 부모님은 참 많이 후회하셨다 했습니다. 제 짐작이긴 합니다만 그 후회는 아마도 미진함이나 게으름에 대한 후회등과는 달랐었을듯 합니다. 열심히, 성실히, 당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시고 또 그렇게 살아오셨지만 그 결과 소중한 자녀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아픔을 겪는다는 것은 ‘후회’라는 달랑 두 글자로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복잡한 심리상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들어 두 번째였던 짧은 Lock down을 거치며 우리 모두는 언제 또 다시 lock down이 되풀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법한 평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고없이 찾아오는 두통과도 같아서 언제 불쑥 감염자가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파나돌 두 알’ 같은 일주일 격리만 거치면 곧 원상복귀 되리라는 대중적 믿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하루분량의 업무만 처리하면 그것으로 마감이 되는 사회생활과는 다르게 이 Lock down이라는 것이 교육계에 미치는 영향은 사뭇 심각합니다.
작년 말 학생들 사이에서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졌던 변명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Lock down 때 on line으로 배웠던거라서 잘 이해를 못했어요’가 그것입니다. 자신의 낮은 점수를 변호하는 변명이기도 했고 학습에 관련된 내용을 잘 인지하고 있지 않음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변명은 참으로 강력해서 학생들뿐 아니라 부모님, 학교 선생님, 심지어는 성질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저에게서 까지도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왈가왈부할수 없는 진실이라 받아들여진 것이지요.
사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변명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변명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난관에 봉착했다는 신호인 것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이 기정 사실화 된 난관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사회적인 변화가 수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각 학교의 2021년 연간 학습계획에 고스란히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NCEA 시행 학교들은 Internal 시험의 확대적용으로, 캠브리지 시행학교들은 매우 빠른 학습진도로, IB 시행학교들은 하필 올해부터 적용되는 새로 바뀐 시험구조에 맞물려 갈팡질팡하는 구도로... 그리고 이 중에 우리의 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화는 아무래도 가장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는 NCEA 운영상의 변화일 것입니다. 각급 학교들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봉쇄에 대비해 학교의 교과과정을 Internal 중심으로 편제하는 모습은 아주 현실적이고도 당연한 대응입니다.
Internal paper들이 온라인 수업을 통한 교육에 더 적합하고 과제의 제출이나 평가에도 더 용이하기 때문에 언제 Lock down이 닥치더라도 큰 무리없이 수업을 이어갈 수 있으니 현명한 대응책이라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목마다 선택 가능한 Internal paper들이 몇 가지가 되어서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학교의 형편에 맞추어 선택할 수 있다는 운영의 유연함도 Internal 중심의 NCEA 교육이 Covid19 시대에 맞춘 적응이라 평가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근거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즈음의 Internal paper 중심 정책을 접하며 A를 떠 올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골학교에서 정서적으로 풍요한 10대를 지낸다는 것은, 물론, A와 그녀의 가족들이 선택한 일이었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그 3년의 시간이 남긴 지식의 박약은 한창 꿈을 품고 날아보고 싶었던 A의 청년기에 큰 걸림돌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았고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좌절의 시간은 기어코 다다랐고 이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양이 천성적인 성실함이나 끈질긴 노력에 우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바탕으로 현실을 조망해보자면 깊은 우려가 드는 것을 피할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2021년의 Internal 중심 학습정책이 수 많은 우리의 아이들을 2022년판 혹은 2023년판 A로 이끌어가는 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또 다시 Lock down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겠지만 혹시나 우리 학생들이 자기방 책상에 앉아서 조막만한 스크린을 통해 소통하며 학습 해야하는 시절이 다시 찾아온다면,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손쉬운 Internal이 실력을 망치고 괴로운 External이 대학학점을 살립니다.
External 공부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할애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