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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동안 매달 편지와 15달러를 받았어요.
제가 1990년에 건국대 교수가 됐는데,
그때까지도 계속 15달러를 보내주셨죠.
…
아마도 에드나 어머니는
‘너도 나처럼 남을 도우며 살아라.’ 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에요.”
- 조명환 회장의 가이드 포스트 인터뷰 中
전세계 모든 어린이가 풍성한 삶을 살아가길 꿈꾸는 한국 월드비전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습니다. 이 반가운 만남에는 우리의 꿈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증거’가 함께여서 벅찬 설렘이 가득합니다.
2021년 한국 월드비전 수장이 된 조명환 신임 회장은 미국인 후원자에게 도움을 받고 자란 후원아동이었습니다. 후원을 받던 어린이가 국제구호개발NGO 월드비전 회장이 되기까지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지금 펼쳐집니다.
“지구 반대편 후원자가 바꾼 한 아이의 일생”
전쟁을 피해 북에서 내려온 가난한 실향민 가정에서 태어난 조명환 회장과 에드나 후원자의 인연은 그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맺어졌습니다. 후원자는 분유와 장난감을 전해주었고, 매달 15달러를 사랑이 담긴 편지와 함께 보냈습니다. 같은 반 친구가 소시지 먹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았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할 만큼 힘겨운 시절을 보냈지만 에드나 후원자의 한결같은 지지는 그를 어디서고 당당한 아이로 만들어 주었죠.
만 18세가 되며 구호기관을 통한 후원은 종결되었지만 에드나 후원자는 조명환 회장과의 인연을 이어가길 원했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대학교수로 자리를 잡은 뒤에도 매달 어김없이 후원금 15달러와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2001년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륙을 넘은 사랑은 45년 동안 멈추지 않았습니다.
“후원을 받던 어린이였던 제가,
월드비전 회장으로 인사 드리는
이 순간이 정말 큰 감동입니다.”
@ 조명환 한국 월드비전 신임 회장
“에드나 어머니는 편지에서 항상 꿈이 뭐냐고 물어보셨어요. 야구를 좋아할 땐 야구선구라 했고, 소방관이 멋져 보일 때는 소방관이라 했죠. 그 때마다 어머니는 ‘넌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될 거야.’ ‘넌 세계 최고의 소방관이 될 거야.’ 라는 답장을 보내왔어요. 가난하고 특별한 재능이 없는 저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확신을 주신 거예요. 당장 눈 앞에 상황만 보면 용기를 말하는 것조차 사치인 것 같았지만 그 마음을 이겨내고 미래의 문을 열게 해주셨어요. 너는 할 수 있다는 에드나 어머니의 이야기를 꽉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미국 유학도 가게 되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월드비전까지 오게 되었어요.”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 곁에 서는 일은 나의 운명”
45년 동안 후원을 받아오며 나눔의 기적을 인생으로 체험한 그였기에 ‘후원’과 ‘어린이’에 대한 마음은 언제나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고 무엇보다 어린이를 위한 일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지요. 마음 속에 품은 꿈은 아시아∙태평양 에이즈 학회장이 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 개발되어도 비싼 약값과 치료비 때문에 진료 한번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가난한 에이즈 환자들을 보고 연구실의 연구자가 아닌 ‘발로 뛰는 연구자’로 나선 거예요. 전 세계의 정치인, 기업가 등을 직접 만나 후원금을 모으며 가난한 에이즈 환자를 돕기 위해 달려오기를 20여 년. 생명과학특성학과 교수에서 월드비전 회장이 된 것이 언뜻 의아할 수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그의 삶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약을 구할 수도 없고 치료 받을 여견도 되지 않아 딸 셋을 HIV/AIDS로 잃은 어머니의 눈물.
“에이즈 학회장을 하며 방콕에서 만난 아이가 있어요. 아빠가 에이즈 환자였고 엄마와 아이 역시 검사를 해보니 에이즈 양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아이 아빠는 처음에 가족들의 에이즈 무료 검사조차 거절했었어요. 어차피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할 텐데 검사는 받아서 뭐하냐는 거예요. 집에 찾아가보니 개천 옆 판자촌에서 근근이 사는 모습에 아버지의 말이 한편 이해가 되더라고요.
논의 끝에 부모는 에이즈 협회 본부에서 돕고 아이는 제가 돕기로 하고 치료를 시작했어요. 2년 동안 치료를 받은 아이는 완치가 되었지요. 그 모습을 보고 더 많은 후원금을 모아서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자는 결심이 가슴에 탁, 들어왔어요.”
에이즈로 죽을 수도 있던 아이 앞에 전혀 새로운 날이 펼쳐지는 것을 목격한 조명환 회장은 작은 후원이 만드는 큰 기적에 다시 한번 놀라며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더욱 단단히 굳혔습니다.
“에드나 어머니를 처음 만나던 날”
상상만으로도 두근거리던 조명환 회장의 바람과는 달리 에드나 후원자와의 만남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며 여러 차례 후원자를 찾아가려 했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방문을 매번 거절했습니다.
“당시에는 섭섭한 마음도 들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끝까지 조용히 나눔을 실천하고 싶으셨던 거 같아요.”
건국대 교수로 부임하고 바쁜 날들을 보내다 문득 후원자가 99세 정도 되셨을 거란 생각이 든 어느 날, 이 만남을 더 늦춰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섰습니다. 연락을 드리면 또 방문을 거절하실까 싶어 주소지 하나만 들고 무작정 미국의 시골 마을로 향했습니다. 현관문을 두드리고 집안에 들어갔을 때 그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2층에 계시다는 후원자는 2시간이 넘도록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찾아온 것이 미국 문화에는 무례한 일이었나, 그래도 먼 길을 날아왔는데…’ 여러 생각이 들락거리다 결국 되돌아가려는 순간, 삐끄덕-. 계단 끝에서 환한 빛이 비추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기대해 온 에드나 어머니와의 만남(사진제공. 조명환 회장)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고운 화장, 빨간 구두까지 챙겨 신은 후원자가 천천히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거동조차 힘든 99세 후원자는 한국에서 찾아온 아이를 만나기 위해 정성껏 준비를 하신 거였어요. 조명환 후원아동은 일주일 동안 에드나 후원자의 집에 머무르며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쌓았습니다.
“월드비전 회장이 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얼굴 한번 직접 본 적 없는
저에게 그토록 오랜 시간
후원을 해 온 에드나 어머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조명환 회장에게는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얼굴 한번 직접 본 적 없는 자신에게 그토록 오랜 시간 후원을 해 온 후원자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심지어 실제로 만난 후원자는 시골의 가난한 소시민이었습니다. 부유한 나라에 살고 후원을 이어갈 정도면 당연히 넉넉한 생활을 하실 거란 막연한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은퇴 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꾸려야 할 정도로 빠듯한 생활을 했지만 편지를 쓰고 후원금을 보내는 일은 결코 놓지 않았던 후원자님.
월드비전 회장이 되고 나니 에드나 후원자가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후원아동이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그 역시 다른 이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기를 에드나 후원자는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긴 세월 동안 흔들림 없는 행동으로 보여준 후원자의 마음을 깨달은 조명환 회장은 이제 월드비전과 함께 사랑을 흘려 보내는 일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나아가려 합니다.
에드나 후원자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전 세계 곳곳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내일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열심을 다하리라 다짐합니다.
“후원금 이상의 효과를 만드는 월드비전”
‘후원자’와 함께 살아온 삶이기에 그는 어느 때보다 뚜렷한 목표와 계획을 갖고 월드비전 회장으로서의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우선, 후원금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전문성 강화를 위해 집중하려 합니다. 후원금으로 만들어 내는 변화의 결과와 가치가 후원금 이상의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 정책과 역량을 개발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며, 국제 파트너십으로 이루어진 월드비전은 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들이 이미 갖추어져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지역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현지 직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후원금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조명환 한국 월드비전 신임 회장
뜨거운 눈물을 삼키기도 하고, 커다란 웃음이 터지기도 했던 조명환 회장과의 만남은 역시나 후원자님께 보내는 감사로 마무리 됩니다.
“어린 시절 저는 나를 생각해 주고 지지하는 후원자님이 계시다는 것에 큰 힘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가난했지만 후원자님의 존재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씩씩하고 당당하게 성장했어요. 지금 우리 후원자님들이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임을 꼭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은 후원자님으로 인해 든든하고 신나는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바로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후원은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쁘고 행복해지는 통로임을 힘주어 말하는 조명환 회장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