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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분양을 받은 다육이 들이 제법 새끼를 많이 쳐서 친구에게 분양해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신보다 더 급한 곳이 있다고 하면서 그곳에 분양을 해주라고 했다.
한의원이었다. 메튜 선생님에게 침을 맞으면서 정원 이야기가 나왔나 보다. 환자들이 많이 들락거리니까 보다 깔끔하면서도 관리하기 쉬운 정원으로서 다육이 꽃밭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메튜 선생님은 그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 친구의 권유로 우리 집 정원을 새로 만들어 준 디자이너에게 정원을 맡겼다. 나와 콜라보로 아트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로서 아이디어 뱅크가 따로 없는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커다란 바위만 덜렁 두 개가 앉아 있는 땅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잡초들을 제거하고 낮은 나무 울타리로 주차할 시멘트 공간과 흙의 경계선에 낮은 나무 울타리를 둘러칠 작업을 시작했다.
높이 7cm 정도가 되는 나무울타리 작업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땅 밑이 온통 아주 굵은 뿌리로 가득했다. 그 뿌리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보면서 새로운 변신을 위한 노고에 박수가 쳐졌다.
엣징 작업 또한 굵은 나무뿌리와의 전쟁을 피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수고를 통해 만들어진 엣징 라인은 예술이 따로 없었다.
위드 메트가 깔려졌고, 그 위로 자잘한 회색 돌들과 하얀 색 돌들이 각자의 위치로 옮겨졌다. 맨 마지막으로 기름진 검은 흙이 자리를 잡으니 환상의 그림이 되었다. 다육이 들이 그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구성을 이루기도 전에 이미 작품으로서 완벽했다.
우리가 다육이를 심기 시작할 무렵에 차 한 대가 주차를 했다.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은 아주 반가운 사람, 이민 초창기 때부터 호형호제 하면서 지냈지만 한동안 보지 못했었던 사람이다.
그녀가 진료를 받으러 한의원에 왔을 때, 디자이너 부부가 엣징을 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걸 보자마자 집으로 가서 쓸 만한 다육이 들을 챙겨 온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다육이를 키우는 지인의 집에 가서 얻어 오기까지 한 것이다.
한국에서 조소를 전공하여 돌을 다듬으며 후배양성을 해왔던 그 친구는 망치질하기를 무척 좋아했고, 한국에서는 돌을 깎는 망치질을, 뉴질랜드에 와서는 집 짓는 망치질을 하면서 살아왔다.
이민 생활 중 스시를 만드는 일부터 청소업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는 그녀로서 파미 시립도서관에서 두 번의 전시회를 가질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아티스트였다.
이민 초창기 때부터 그녀와는 아주 각별했다. 그녀의 조카가 우리 둘째의 절친한 친구 사이였기도 했지만, 순수한 그녀의 마음이 마음에 들어서 그녀와 가까이 지냈다. 바람같이 자유로운 성격으로 엉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지만, 그녀의 순수성은 크게 인정한다.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 가끔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녀. 몇 년 전에 운동하다 다친 무릎이 다시 도져서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진료를 받으러 한의원에 갔는데, 아름답게 변신한 땅을 보자마자 다육이 들을 분양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서둘러 집에 있는 다육이 들만이 아니라 지인의 집에 있는 다육이 들까지 분양 받아 온 것이다.
그녀의 오지랖은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그녀다운 오지랖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커다란 목소리로 “언니!”라고 부르면서 큰 몸동작으로 반기는 그녀. 우리는 서로 몇 번이나 얼싸안았다.
그녀의 차 안에서 나온 다육이 들과 내가 가져온 다육이 들이 검은 흙을 채우기엔 많이 부족했지만, 시작이 반이니 언젠가는 그곳이 다육이로 가득찰 것이다.
메튜 선생님 덕분에 방광염까지 다 나았다고 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란다. 오십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내 심정과 같았나 보다.
메튜 선생님이 환자들을 참 지극정성으로 잘 돌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듯 환자들이 솔선수범하여 한의원의 정원을 위해 나섰겠는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인데, 건강한 몸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는 메튜 선생님을 만나서 행복이 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우선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가 되면 그게 바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요즘의 내 생활은 행복 그 자체이다. 매사에 만족과 기쁨 그리고 흐믓함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쁨이며 만족이며 흐믓함을 내게 안겨 준다.
덕행의 기쁨을 안겨준 사모님부터 오랜 친구 그리고 새로운 젊고 멋진 친구들, 그들을 통해 알게 된 아름다운 키위 친구들이 모두 다 나에게 기쁨이며 만족이며 흐뭇함이다.
어제 디자이너와 함께 사무실에서 콜라보 작업을 하고 있는데, 한인 친구가 스시 한 팩을 들고 들렸다.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들렸단다. 그녀의 따스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는데, 디자이너의 키위 친구가 집에서 딴 포도를 들고 방문을 했다.
갑자기 맛있는 것들이 짜잔~하고 나타난 것이다.
스시도 포도도 너무 맛있었다.
“아~ 이게 바로 행복의 맛이구나!”
“행복에도 맛이 있고, 그 맛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맛이구나!.”
행복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되어 너무나도 기쁘고 흐뭇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행복의 맛을 봐야겠다.
신난다. 그리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