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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길들이는 방법
공주의 오만함 역시 족장의 딸 못지않다. 왕인 아버지조차 딸의 철없는 행동을 고쳐주지 못하고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마지막 장면에서 왕이 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하여 갑자기 예복을 입고 나타난 것으로 보건대 공주를 길들이기 위해 사위인 지빠귀부리왕과 함께 짜고 계획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거지로 분한 지빠귀부리왕은 가장 천한 신분이 되어 공주와 함께 길을 떠난다.
그가 공주를 길들인 방법은 가장 비천한 신분으로 만들어 사람들로부터 천시와 멸시를 받게 하는 것이었고, 매우 거친 노동을 직접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누추한 집도 그렇거니와 하인들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만 했던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하는 일, 바구니와 베를 짜는 일 등은 모두 의식주에 해당하는 것이며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이다.
어쩌면 공주로서는 아주 당연하게 누려온 것일 터이다. 그러나 지빠귀부리왕은 이 일들을 공주에게 시킴으로써 그것들이 당연하게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된 노동으로 인해 본인이 누릴 수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한다. 항아리를 팔도록 한 것 역시 스스로 경제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그 귀중함을 알게 하고, 항아리를 박살내어 언제든 그것이 깨질 수도 있음을 알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며 남편에게 달려간 것은 그동안 오만한 마음으로 모든 남성들을 폄하하던 마음을 스스로 깨고 존중하게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빠귀부리왕은 공주를 그보다도 더 하층계급으로 만든다. 접시를 나르던 하인들이 공주에게 음식찌꺼기를 던질 정도이니 이보다 더 낮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공주는 그 음식찌꺼기조차 귀하게 보관하여 집으로 가져가야만 했다. 결국 음식찌꺼기들이 사방에 흘러 모든 사람의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받고 가장 밑바닥까지 창피함을 느끼고 난 후에야 지빠귀부리왕은 공주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한다.
결국 지빠귀부리왕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이들에게 무례하게 대했던 공주를 스스로 반성하게 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귀함을 알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아내로서, 낮은 위치의 모든 백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해야만 하는 왕비가 갖추어야만 할 성품이기도 하다. 또 이는 현재에도 있는, 일부 특권의식을 가진 정치인들이나 군 장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위 두 이야기에서 콜로위시와 지빠귀부리왕이 가진 중요한 공통점 중 하나는 본인들도 역시 아내와 같은 위치에서 힘든 것을 함께 나눴다는 것이다. 콜로위시는 기꺼이 아기가 되어 자신을 낮추기를 꺼리지 않았고, 아내와 함께 가는 길에서 아내를 밀어주며 기꺼이 힘든 길을 함께 동행했다. 또 지빠귀부리왕 역시 가장 비천한 신분인 거지가 되어 누추한 집에서 아내와 함께 일을 하고 음식찌꺼기를 먹으며 아내를 길들였던 것이다.
특히 지빠귀부리왕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내에게 집안일을 가르쳤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왕이라는 신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이 할 일을 손수 해왔다는 의미이고, 그가 그 일들을 하찮게 여기기는커녕 미천한 신분의 백성들과 그들의 일을 존중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주가 바구니나 베를 짜다가 손을 베었을 때 그 일들을 그만두게 하는 것으로 보아 사랑하는 공주가 상처를 입는 것은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왕의 착하고 맘 약한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상대를 길들이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다. 그랬을 때 그 길들임은 더 큰 사랑이 되고, 상대의 부족한 곳을 채워주는 약이 되며 때로 치료자가 될 수 있다. 그저 자신의 이기적인 편의를 위해 강압적으로 배우자를 길들인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나 길들임으로 볼 수 없다.
이번에 소개한 두 이야기는 배우자를 대하는 태도와 길들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두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는 온전히 독립해야 하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상대를 존중해야 하며 두 사람 사이의 문제는 어른스럽게 스스로 풀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만이 서로를 길들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도구이며 방법이고, 그랬을 때 여우가 말한 것처럼 서로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