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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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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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숙자 


과수원 농지를 물색하러 다녔다. 지구는 오염돼 있고 인구 폭발로 마땅한 대지가 없어 고심하다가 너르디넓은 태평양 상공에 몇 필지를 구했다. 우선 여기서는 수경재배가 가능한 것이 이점이다. 아직 아무도 눈독을 들이지 않아 내 마음대로 좋은 필지를 구할 수 있었고 입적 신고도 간단히 마쳤다. 


농사를 짓자면 우선 거처할 곳이 필요했다. 미국 버몬트 주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은 소로우처럼 나도 오두막 한 채를 짓기로 했다. 이 집은 꼭 풀집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시멘트니 합성목이니 한국에서 옮겨와 청정한 지역에 공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다. 우선 태평양 가에 내려가 우거진 갈대숲에서 갈대를 한 마차 싣고 왔다. 갈대로 지붕을 해 덮고 한 켠은 그대로 두었다 해가 뜨면 햇빛으로 지붕을 삼고 저녁이 오면 별빛이 지붕이 되었다. 


내가 여기서 과수원을 일구자 한 첫 번째 이유는 우주적 발상에서였다. 과학은 로켓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달나라에 아니 화성에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러 안간힘을 쓰니 나로서는 이 기회에 머리를 굴려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오래전에 태평양을 건너 미국 여행을 한 일이 있었다. 까무룩 잠에 들었다. 내다보면 망망한 구름밭이었다. 그 밭은 금방 경운기가 갈아엎고 지난 밭처럼 하얀 흙들이 부드럽게 일구어져 있어 씨만 뿌리면 금세 수확을 할 것 같았다. 나는 기창으로 밖을 내다보며 신음했다. 그 좁은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어리에서 복작댈 게 아니라 이 너른 땅에 정착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나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일 거라는 상상 아닌 상상을 했다. 


집을 짓기로 했다. 풀집이다. 풀집에 살자면 우선 몸이 가벼워야 한다. 잠자리만큼 가벼워져야 풀집이 태평양에 추락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러자면 우선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 몸무게를 줄이려면 식탐을 줄이고 최소한의 식량으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갈대를 엮어 풀집을 지었다. 누워보니 천상맞춤이다. 이불도 필요 없고 전기난로는 더욱 필요 없다. 초가삼간보다 더 허름하나 마음은 이를 데 없이 편안하다. 


이제는 묘목을 구해야 한다. 전에는 왜성 대목이니 뭐니 해 가며 다수확 품종을 택했으나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 농산물은 문명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수사님이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는 아프리카의 오지 우간다로 보낼 것이니 양보다 질을 우선해야 한다. 말로는 아기 사과나무가 좋다고 하니 우선 그것들을 천 주쯤 구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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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도착했다. 비행기로 싣고 왔으니 빠르기는 최대한이다. 나는 이 사과나무를 순식간에 심었다. 대기에 맡겼다. 대기는 저들끼리 흐름이 있어 적당한 시간 적당한 때에 알맞게 불어와 알맞은 간격을 두고 식재를 했다.


그러고는 할 일이 없어 날마다 과수원에 나와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본다. 내가 태평양 상공을 제일 먼저 차지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우리 과수원 바로 옆에 먼저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술꾼이다. 이름 끝에 무슨 스키라는 글자가 붙는, 러시아 어디쯤에 살았다는 그는 술이란 술은 다 마셔버려 위가 고장이 난 사람이다. 그런데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는 날마다 태평양 물을 술로 빚을 생각에 골똘하다. 저 물에 얼마만큼 누룩을 섞어야 술이 되는지 얼굴이 노랗도록 연구를 한다. 그의 침소에 불이 꺼지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이다. 


또 왼쪽에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다. 그는 파리 짱으로 첫사랑부터 마지막 사랑까지 경험한 사내로 이제는 기력마저 소진해 거무튀튀한 얼굴로 죽어도 좋을 단 한 번의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이웃들 틈에서 농사를 지어야 별다른 수확을 얻기는 힘들지 않을까 미리 걱정도 했으나 나무를 심었으니 꽃피기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다만 여기서는 철이 정해진 게 없어 농사가 자율에 맡겨진다는 게 다행이다.


사과나무가 꽃이 피고 싶으면 피는 거다. 내가 할 일은 오직 기다리는 일이다.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노래를 불렀고 내 노래를 듣고 지나가던 기러기가 끼욱하고 답신을 준 일이 특기할 사항이다. 



꽃이 피고 나더니 열매가 맺혔다. 수경재배라서 태평양에서 올려 보내는 수증기로 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그 증기가 짭짤하다보니 따로 소독을 하지 않아도 병충해가 없고 꽃피는 기간은 배로 늘어 봄날이 일 년이다. 팔자 좋다.


그동안 지상에서는 일본 땅에 지진이 나서 야단법석이 있었고 이집트나 시리아니 쿵쾅쿵쾅 바람 잘 날 없다. 풀집에 앉아서 내려다보면 지상에는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는 성싶다.


창공을 지나는 비행기들이 뿌리고 지나간 소식은 가을이 왔다는 것이다. 여행객이 부쩍 늘어 비행기가 바빠졌다지만 내가 사는 여기는 그런 일에 상관없이 마냥 한가롭기만 하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슬슬 사과 수확을 해볼까나.


첨언하자면, 우리집 과수원 필지가 도로 신설로 반이나 잘려 나간다고 말뚝을 박았다. 맑은 하늘에 벼락을 맞고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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